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KBS 교향악단 제공
늘 얘깃거리를 몰고 다니는 화제 만발의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33)가 오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과 협연한다. 2006년, 2014년에도 내한해 독주회를 열었지만 오케스트라와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독창적이고 기이한 면모를 보여왔다. ‘맨발 연주’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2010년 런던 심포니와 협연하며 맨발로 피아노 페달을 밟은 이후부터다. 그는 “맨발로 밟는 금속 페달은 피아노와 더 가까워지는 나만의 방법”이라며 “맨발로 차가운 페달을 밟는 게 기분이 좋고 더 편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독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라 오트는 4살 때 피아노 연주를 시작해 다섯살에 뮌헨에서 2000여명의 관객을 상대로 첫 연주회를 열었다. 이후 유럽과 일본의 수많은 콩쿠르를 휩쓸며 10대엔 ‘신동’, 20대엔 ‘젊은 천재’로 회자되며 ‘스타급 연주자’로 인기를 누려왔다.
2019년 1월 그는 다시 한 번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독주회를 앞두고 갑자기 왼손이 굳어지는 증세로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병은 중추신경계의 신경섬유가 자가면역 때문에 손상당하는 질환이다. 신체 마비와 현기증, 시력장애 등 다양한 증상들을 수반한다. 영국이 낳은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1945~1987)를 죽음으로 몰아넣어 널리 알려진 바로 그 병이다. 26살에 이 병을 진단받은 뒤프레는 2년 뒤 은퇴했으나 증세가 악화해 42살에 세상을 떴다.
오트는 당시 인스타그램에 발병 사실을 알리면서 “처음엔 마치 세상이 소멸하는 듯한 느낌이어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지냈다”면서도 ”이 병을 완치하긴 어렵지만 의학의 발전 덕분에 환자 대부분이 충분한 수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가끔 예상하지 못한 인생을 살게 되고, 나는 그런 길에 막 들어섰다. 최선을 다하면 끝에서 만나는 결과는 달라진다고 굳게 믿는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엔 연주회를 이전보다 줄였지만 최근에도 새 음반 <삶의 메아리>(Echos of Life)를 발표하는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 음반은 쇼팽의 ‘스물네 개의 전주곡’ 사이사이에 자신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곡들을 삽입한 형식이다.
이번에 협연하는 곡이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왼손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사라 오트가 이번에 그 왼손으로, 왼손으로만 쳐야 하는 곡을 연주하는 셈이다. 이 곡도 사연이 있으니, 라벨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1887~1961)을 위해 만든 작품이다. 이 피아니스트가 저명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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