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서 희망찾는 ‘우리이웃’
입소문에 ‘재공연 요청’ 봇물
탄탄하고 흥겨워져 돌아왔다
입소문에 ‘재공연 요청’ 봇물
탄탄하고 흥겨워져 돌아왔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어서!” 대학로 상명아트홀 1관 지하 2층 공연장 문을 열자 나지막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무대 위에서 세 여자가 빨래를 꾹꾹 밟아 누르며 오랫동안 감추어왔던 슬픔들을 서로 다독거리고 있다. 제일서점 여직원 서나영(김영옥 분)은 이날 직장에서 선배가 부당해고되자 사장에게 항의하다 창고지기로 좌천을 당했다. 객석 한 폭판에서는 추민주(31) 연출가와 장유경(30) 무대감독, 여신동(29) 무대·조명 감독이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전환 음악이 미처 준비되지 않아 누군가가 목소리로 반주를 맞춰주고 있다. 17일 공연을 앞두고 스태프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신경도 곤두서 있다. 드디어 추민주 연출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추 연출가는 “올해는 창작곡 4곡이 추가되었고, 지난해는 1층 무대였으나 올해는 2층에 옥탑방과 옥상을 꾸며 달동네다운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굴다리, 전봇대, 각종 생활소음 등 좀더 골목 분위기에 입체감을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하늘과 가까운 서울 달동네의 허름한 다세대 주택에서 저마다 사연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가난하지만 건강한 삶을 담았다. 대학진학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지만 자취생활 6년 동안 꿈을 잃어버린 20대 직장여성,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강제추방될까 꾹 참아야 하는 몽골 출신 불법이주 노동자, 장애인 딸을 방 안에 가두고 살아가는 주인 할머니 등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직장내 부당해고, 장애자에 대한 편견 등 기존 작품에서 쉽게 다뤄지지 않았던 어두운 주제들이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고 상쾌하게 그려진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대형뮤지컬에 비해 비록 초라하지만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하늘과 가까운 옥상, 허름한 단칸방 풍경, 서점 등으로 깔끔하게 변신하는 무대와 1인 3역에서 1인 6역까지 쉴새 없이 역할을 바꿔가는 조연들의 연기, 아기자기한 춤, 야무진 노래가 매우 인상적이다. 추 연출가는 “<빨래>는 서울살이 6년 동안 자취방 골목에서,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을 통해 세상은 살아갈수록 따뜻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한다. 그는 7년 전에 살았던 자양동 노륜산 시장 근처를 배경으로 <빨래>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가 대본과 가사를 쓰고 민찬홍·신경미씨가 곡을 만들어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와 후배들과 힘을 합쳐 2003년 12월 연극원 연출과 졸업작품으로 첫선을 보였다. 지난해 그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 모여 톡톡 튀는 창작 공연을 목적으로 극단 ‘명랑씨어터 수박’을 만들어 <빨래>를 창단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극단의 이름이 재미있다. ‘명랑’은 밝고 즐겁다는 뜻으로, 공연을 보고 난 관객들의 마음이 명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고, ‘수박’은 한 덩이를 쪼개 모두가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이 과일처럼 잘 익은 공연을 모두가 나누어 먹자는 뜻을 담았다. 올해는 가극 <금강>과 <노래하듯이, 햄릿>의 음악감독 한정림씨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기존의 7개 창작곡에 서정적인 분위기이면서 밟고 경쾌한 리듬과 유머러스하고 극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4곡을 추가했다. 또 지난해에 이어 서나영 역을 맡은 김영옥씨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공연부터 국립극장 공연까지 함께한 오미영씨 등 기존 배우에 지난해 11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박은영 최진영 임진웅 박성일 김중기 백미라 등이 새로 무대에 오른다. 5인조 챔버 앙상블의 연주녹음에 기타와 하모니카의 라이브 연주가 담백하다. (02)762-9190. 글·사진/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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