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그래미상 5개 부문을 휩쓴 U2와 머라이어 캐리, 노장 버트 바카락(사진 위부터 차례로)
48회 그래미 시상에 대한 쓴소리
슬슬 자리잡아 가고 있는 한국대중음악상 빼곤 이제까지 내세울 상조차 없었던 한국 대중음악계 처지에서 그래미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미에서 상 탔다 하면 그 가수는 영예는 물론, 앨범 판매 증가로 짭짤한 수익까지 얻었다. 그런데 권위를 쉽사리 거부하기 어려운 그래미에 대해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가 쓴소리를 내놨다. 그의 논리는 뭔지 들어봤다.
수상자 선정 기준 의문 그래미가 다른 시상식보다 높은 권위를 인정받아온 것은 ‘음악적 가치’를 평가한다는 명목에 있었다. 그래미와 함께 미국 3대 음악상으로 꼽히는 빌보드 음악상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가 기계적인 차트 순위 집계와 인기 투표 결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에 비해, 음반업계 종사(경력)자들로 구성된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에 의해 상의 향배가 결정되는 전문성을 샀던 것이다. 그러나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가 갈수록 심화하면서 그 전문성이라는 것이 근래 들어서는 수구적 태도로 현격히 퇴색해가고 있다. 이에 대한 영국 쪽의 분석이 흥미롭다. 16일 오전(현지시각으로는 15일 밤) 개최되는 영국 최고권위의 브릿 어워드를 앞두고, 거대 음반 유통업체 ‘에이치엠브이’의 제나로 카스탈도는 “그래미는 유투나 머라이어 캐리 같은 업계의 거물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주류 음악계를 축하하고 기뻐하는 데 반해 영국은 새로운 재능의 출현에 축하하기를 고대한다”는 말로 브릿 어워드와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브릿 어워드의 주요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주류와 인디를 막론하고 역동적 신인들과 새로운 경향에 커다란 애정과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 집착하느라 미래를 보지 못하는 그래미의 편견에 비해 브릿 어워드의 상대적으로 열린 시각은 다가올 음악계의 경향에 대한 전망의 단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롤링 스톤> <엔엠이> <스핀> <큐> 등 영미의 대표적 음악전문지들이 내놓은 2005년 결산자료들을 분석해보면 그런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좀더 진보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비평가들의 분석을 거친 그들의 결론에서 몇 가지 확연한 공통분모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1980년대 뉴웨이브를 연상시키는 모던 록 밴드들의 약진과 포크·컨트리에 바탕을 둔 싱어-송라이터와 밴드들의 세력 확산, 그리고 실험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친화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테크노 계열과 미국 주류와는 달리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영국 힙합의 도약 등이 그것이다. 신인엔 ‘냉랭’…흐름 뒤처져
맹목적 그래미 신뢰 거둬야 아직은 음악산업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지만, 대중음악계의 혁신이 거의 언제나 인디를 통해 주류로 분출해 나왔었다는 전례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저변의 움직임은 2006년 음악계 기상도의 예측 가능 범위에서 가장 유력한 경향이라고 할 것들이다. 물론 그래미는 그 중 어느 것도 포용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래미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거두어들일 때다. 대중음악의 본향이자 최대 시장으로서 미국의 저력은 인정하되, 그들 음악산업의 세계 지배를 의도하는 서커스에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대중음악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보다 냉정하고 넓은 시각으로 음악계의 흐름을 살피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필연적 요청이기 때문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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