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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트림 참고 성악, 게임하듯 연주…유튜브 ‘클래식 예능’에 빵 터졌다

등록 2022-01-03 04:59수정 2022-01-03 09:17

엄숙주의 깬 ‘클래식 유튜브 채널’ 인기
구독자 56만 ‘또모’ 등 예능코드 장착
스타 연주자도 출연…출연자 공연 매진도
“관객 주도 시대에 소통 위한 혁신” 평가
쇼팽 콩쿠르 입상자인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또모’에 출연해 음대생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쇼팽 콩쿠르 입상자인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또모’에 출연해 음대생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예능 코드’를 장착해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유튜브 채널이 인기몰이를 하며 클래식계 특유의 ‘엄숙주의 문화’에 균열을 내고 있다. ‘지루하지 않은 클래식’을 체험한 젊은이들이 클래식 공연장을 즐겨 찾으면서 청중 연령대도 낮아지는 추세다. 스타 연주자들도 관객 동원력이 강해진 클래식 유튜브 채널에 거리낌 없이 출연하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에 자극받은 보수적인 클래식계도 ‘근엄·딱딱·불친절’이란 이미지를 탈피해 새롭게 변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입상자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클래식 유튜브 채널 ‘또모’에 출연해 음대 재학생에게 레슨을 하고 있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입상자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클래식 유튜브 채널 ‘또모’에 출연해 음대 재학생에게 레슨을 하고 있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예능 코드’에 젊은층 환호

‘클래식 예능 유튜브’의 대표주자는 구독자 56만명에 이르는 ‘또모’다. 음대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는데, 공연 기획도 겸하고 있다. 몰래카메라, 연주 배틀, 레슨 실황 등 호기심을 유발하며 음악 지식에 ‘B급 감성’을 곁들인 콘텐츠가 많다. ‘세계 탑 피아니스트와 원격 피아노로 교수님을 속여봤습니다ㅋㅋ’란 14분짜리 영상의 조회수는 1280만건을 웃돈다. 정상급 연주자들이 음대생들과 연주 배틀을 벌이거나 레슨 하는 영상들도 인기를 끈다. ‘피아니스트들은 얼마나 어려운 곡까지 초견으로 칠 수 있을까’ ‘피아니스트들의 손은 얼마나 빠를까’ 등 궁금증을 풀어주는 콘텐츠도 있다. 피아니스트 임동민·임동혁 형제와 신창용, 러시아 출신 드미트리 쉬시킨 외에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등 국제 콩쿠르 입상 경력이 있는 유명 연주자들이 단골 출연진이다.

서울대 피아노과 전공생들이 만든 구독자 18만명의 채널 ‘뮤라벨’도 피아노에 특화하되, 예능 요소를 가미했다. ‘음대생의 절대 음감은 어느 정도일까’ ‘1초 듣고 피아노 연주하기’ ‘빠른 곡 더 빠르게 연주하기’ 등의 영상은 전문적인 음악 지식에 게임을 하는 듯한 재미를 더해준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이 50만원짜리와 수십억원대 과다니니 바이올린을 바꿔가며 비교 연주하는 영상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이 ‘뮤라벨’에 출연해 악기를 바꿔가며 비교 연주를 하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이 ‘뮤라벨’에 출연해 악기를 바꿔가며 비교 연주를 하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알기쉬운 클래식 해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정보와 지식, 뒷얘기 등을 쉽게 전달하며 ‘클알못’(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주력하는 채널도 있다. 구독자 16만명인 ‘알기 쉬운 클래식 사전’의 모토는 ‘딱딱하고 어렵기만 한 클래식은 이제 그만’이다. 조성진, 조수미, 정경화를 다룬 ‘○○○이 대단한 이유’ 시리즈가 유명하다. ‘가장 긴 음악 탑7’ ‘음악축제 베스트9’ 등 분야별로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성악가들은 콜라를 마시고 트림을 참으며 노래할 수 있을까’ 등의 기발한 내용을 실험을 통해 판별해주는 ‘알클사 실험실’도 흥미를 돋운다. 구독자 17만명인 ‘클래식타벅스’는 ‘10분 안에 누구나 악보 읽는 법’ ‘프레스토와 비바체는 뭐가 다를까’ 등 음악과 음악 이론에 관한 여러 궁금증을 풀어헤친다. 설명을 곁들인 추천 음악 코너도 인기 콘텐츠다. 토크쇼 형식의 ‘유못쇼’(유명하면 못 나오는 쇼)는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새해에 ‘시즌5’를 선보인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랑랑,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연주하는 쇼팽 발라드 1번을 비교하며 분석해주는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 채널 ‘알기쉬운 클래식 사전’에서 성악가가 콜라를 마시고 트림을 참으며 노래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알기쉬운 클래식 사전’에서 성악가가 콜라를 마시고 트림을 참으며 노래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전문 연주자들의 클래식 해설

전문 연주인들이 음악과 예능을 섞어 만드는 콘텐츠들도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소소한 클래식’은 2년 남짓 만에 구독자를 13만명으로 늘렸다. 가끔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며 음악에 관한 정보와 뒷얘기를 친근하게 설명해준다. 올해 열린 쇼팽 콩쿠르를 생중계에 가깝게 집중 분석하는 순발력으로 구독자를 가파르게 늘렸다. 첼리스트 조윤경의 ‘첼로댁’은 다양한 커버 영상을 올리며 눈길을 끌더니 첼로 연주법, ‘신랑에게 생애 첫 첼로 가르치기’ 등으로 13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구독자로부터 신청 음악을 받아 연주하는 등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피아니스트 안인모의 ‘클래식이 알고 싶다’는 튀는 패션으로 종종 논란이 되는 피아니스트 유자왕과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를 다루거나 ‘20세기 최고 여성 피아나니스트 탑5’ 등으로 인기를 끈다.

피아니스트 김윤경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소소한 클래식’. 유튜브 화면 갈무리
피아니스트 김윤경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소소한 클래식’. 유튜브 화면 갈무리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바순 수석 출신인 유성권이 운영하는 ‘성권적 하루’는 브이로그 방식으로 자신의 일상을 담아낸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선우예권을 집으로 초대해 대화하는 장면 등 흔히 보기 어려운 영상들을 만날 수 있다. 플루트 연주자 안일구의 ‘일구쌤’은 플루트에 관심이 있거나 음악을 조금 깊이 아는 이들이 들으면 내용이 알찬 콘텐츠들이 많다. 음악평론가 유정우와 함께 유명 지휘자들과 오페라, 유럽의 음악도시 여행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내용이 풍부하다.

편곡·커버곡 연주

구독자 64만명을 넘긴 ‘벨라앤루카스’는 두 사람이 한 대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포핸즈 피아노 음악으로 인기를 얻었다. 클래식 연주뿐 아니라 가요와 팝송, 뉴에이지, 드라마·영화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포핸즈 방식으로 편곡해 선보인다. ‘레이어스 클래식’은 피아노(강대명), 바이올린(김재영), 첼로(김대연) 구성의 트리오로 장르를 넘나들며 전문적 연주를 선보인다. 어느새 구독자 37만명의 파워 유튜버로 올라섰는데, 이들이 연주한 캐논 변주곡은 617만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바흐의 ‘샤콘느’와 비발디의 ‘사계’ 또는 베토벤의 ‘월광’과 쇼팽의 ‘녹턴’을 뒤섞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3~4분 분량의 연주로 만들어낸 ‘스튜디오 라이브’ 시리즈가 눈에 띈다.

트리오로 구성된 ‘레이어스’가 운영하는 ‘레이어스 클래식’ 연주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트리오로 구성된 ‘레이어스’가 운영하는 ‘레이어스 클래식’ 연주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클래식계도 새로운 변신 움직임

최근 1~2년 사이에 급속히 늘어난 국내 클래식 유튜브 채널은 클래식계의 새로운 ‘유통 강자’로 떠올랐다. ‘또모’에 출연한 연주자들 공연은 곧바로 매진될 정도다. 노년층이 대다수를 점하는 유럽, 미국과 달리 국내 클래식 공연장에 젊은층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유튜브 채널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물론, 클래식계 안에선 예능 위주로 클래식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도 일부 나오고 있다. ‘또모’는 최근 영상 피디를 채용하면서 출근 전날 갑자기 연봉 500만원을 낮추겠다고 통보했다가 ‘채용 갑질’ 논란에 휩싸여 사과하는 영상을 올려야 했다. 그럼에도 클래식 유튜브 채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박선희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대표는 “클래식계의 중요 과제인 대중과의 소통이란 관점에서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들은 매우 혁신적”이라며 “이제 연주자나 연주단체, 기획사 등 공연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인 관객들이 공연 정보와 연주자 평판을 주도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 클래식계도 이런 흐름에 자극받은 듯 ‘예능 코드’를 살짝 덧붙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의 ‘보면돼TV’, 경기필하모닉의 ‘경기필포유’가 대표적이다.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이 올해 송년음악회 프로그램 북의 해설을 클래식 유튜버로 출발한 ‘뮤직엔터테이너’ 송사비씨에게 의뢰한 것도 대중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조병근 케이비에스교향악단 공연팀장은 “젊은 청중에 다가서도록 프로그램 해설부터 다르게 접근해봤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작곡을 전공하고 최근 클래식 해설서 <음악야화>를 낸 송사비씨는 “클래식 음악은 고리타분하다는 분들에게 클래식을 전도하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클래식 공연기획사가 직접 유튜브 채널 운영에 뛰어들기도 한다. ‘유못쇼’ 채널을 운영하는 박진학 ‘스테이지원’ 대표는 “젊은층에겐 클래식을 접하는 주요한 통로가 유튜브 채널”이라며 “이제 유명 연주자들도 섭외하면 출연을 꺼리지 않는다”고 했다. 박 대표는 2019년 네덜란드 클래식 공연기획자 회의에 참석했다가 겪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경험’을 전했다. 당시 강연자로 나온 유니버설사의 팝 음악 분야 디렉터가 했다는 얘기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공연장에서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다. 연주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팝 가수들은 휴대전화 영상 등으로 수시로 소통하며 어떻게든 팬들과 고리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데 클래식 연주자들은 너무나 불친절하다.” 박 대표가 클래식 채널을 운영하게 된 계기였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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