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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아들 뒷바라지 어머니 짐 덜려고 쉼 없이 피아노 쳤죠”

등록 2022-02-06 19:05수정 2022-02-07 02:01

[짬] 본 베토벤 콩쿠르 우승 피아니스트 서형민씨

지난해 12월 독일 본 베토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서형민(32). 스테이지원 제공
지난해 12월 독일 본 베토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서형민(32). 스테이지원 제공

음악가가 되려면 교육비 등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름난 교수에게 레슨받고 외국 유명 학교에 유학이라도 할라치면 비용은 더 든다. 그렇다고 ‘부잣집 도련님’만 뛰어난 음악가가 되는 건 아니다. 지난해 12월 독일 본 베토벤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서형민(32)은 누구보다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은 심플했다. ‘서형민 피아니스트’. 단 여덟 글자만 적혀 있었다. ‘직업이 피아니스트라니 얼마나 좋을까.’ 부러운 마음을 전했더니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직업으로 따지면 피곤한 직업이에요. 끝없이 연습해야 하고 경쟁도 치열합니다. 특히 한국은 시장은 좁은데,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하하.”

그의 이력을 보면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5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곧 오선지에 음표를 끄적이며 작곡까지 했다. ‘영재’로 불리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작곡 공부를 병행했다. 1998년 남다른 재능이 알려져 <주병진의 데이트라인>(SBS) 등 공중파 방송 3사에 내리 출연했다. 금호 영재 콘서트에서 연주한 것도 8살이던 그해였다. 10살이 되자 미국으로 건너간다. 초중고교를 거쳐 컬럼비아대 역사학과와 줄리아드 음대를 복수학위로 졸업했다. 그사이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성공 스토리의 이면엔 어머니의 지극한 노력이 있었다. 전남 신안 섬 출신으로, 16살에 상경해 미싱 공장과 야간학교에 다니며 주경야독했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재능 있는 아들을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풍족한 살림이 아니었다. 미국행을 위해 서울 영등포 신길동의 지하방 전세 보증금을 뺐다. 서씨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박성용(2005년 작고) 전 금호그룹 회장과 방송인 주병진(62)씨 등이 도움을 줬다. 어머니는 의지가 강한 이였다. 네일(손톱)숍에서 쉼 없이 일하며 아들을 뒷바라지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6일 내내, 어쩔 땐 7일 동안 가게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어요. 공부든 피아노든 죽으라고 열심히 해 학비든 기숙사비든 지원받을 건 다 받으려고 했죠.” 서형민은 “어머니의 가시밭길이 나를 강하게 단련시킨 것 같다”고 했다.

2020년 미국 뉴욕 케네디공항에서 사진을 찍은 피아니스트 서형민(32)씨와 어머니 한양순(57)씨.
2020년 미국 뉴욕 케네디공항에서 사진을 찍은 피아니스트 서형민(32)씨와 어머니 한양순(57)씨.

모친 한양순씨 지하방 보증금 빼
‘피아노 영재’ 10살 아들과 미국행
네일숍서 휴일도 없이 일하며 지원
“어머니 가시밭길 보며 강해졌죠”

우승 뒤 내년까지 연주일정 잡혀
15일 예술의 전당 단독 리사이틀

인터뷰 중 서형민이 불쑥 손가락을 내밀었다. 손톱에 살짝 파이고 비틀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피아니스트로는 치명적인 결점일 터였다. “손가락 끝에서 고름이 차오르고 진물이 나오는 거예요. 들뜬 손톱을 잘라내고 뒤틀린 부분을 뽑아내는 수술까지 받았는데, 의사들도 그 원인을 모르겠다는 겁니다.” 양쪽 가운뎃 손가락과 왼손 엄지가 특히 심했다. 콩쿠르에 한창 나가던 2013년 무렵부터 시작된 고통이었다. 2016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출전해야 했다. “스테로이드 주사는 부작용이 심해 계속 맞을 수도 없어요. 주사도 안 맞고 하루 7~8시간씩 연습을 하니 증세가 악화해 건반을 누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더군요.” 다행히도 지금은 90% 정도 나아졌지만, 완치는 안 된다고 한다.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지난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다. 무력감이 엄습했다. “원하는 만큼 무대에 자주 오를 수 없었어요. 이쪽 세계가 그렇게 녹록지 않아요.” 수많은 콩쿠르 입상 경력이 있는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무대가 없다니 뜻밖이었다. “피아노만 잘 친다고 연주할 기회가 많은 게 아니에요. 수요와 공급 문제도 있고, 인맥과 네트워크도 작용하고요. 유럽과 미국에서도 클래식 음악 시장 자체가 사장돼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저런 생각이 겹치면서 피아노 연주가 아닌 다른 일을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본 베토벤 콩쿠르 참석 직전까지도 고민을 거듭했다. 31살, 사실상 마지막 콩쿠르였다. 결선에 진출해 자작곡 피아노 소품 3곡도 연주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3만 유로(4천만원 안팎)의 상금을 주는 우승과 함께, 슈만 특별상, 실내악 특별상, 청중상을 동시에 받았다.

이 우승은 그에게 많은 변화를 줬다. 무엇보다 내년까지 연주 일정이 잡히는 등 무대에 오를 기회가 부쩍 많아졌다. 지난달 26일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앙상블 노이에’를 꾸려 지휘자로도 데뷔했다. 오는 15일에도 예술의전당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한다. 하반기엔 유럽 연주 투어가 잡혀 있다. 9월엔 독일 본에서 열리는 베토벤페스티벌에 참가하는데, 베토벤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며 지휘도 하기로 했다. 여기에 본 베토벤 콩쿠르를 후원하는 도이치텔레콤 쪽이 위촉한 피아노 작품도 작곡해 출품해야 한다. 연주, 지휘, 작곡의 1인3역을 해내야 하는 셈이다.

인터뷰 뒤 문득 그 어머니의 얘기가 듣고 싶어졌다. 뉴욕에서 세탁소를 운영 중인 한양순(57)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년 말 형민이가 독일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공항에서 통화했어요. 아들이 ‘연습도 안 돼 있고 너무 힘들다’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어요. ‘나이도 있고 이번이 마지막이니 아무 부담 갖지 말고 치고 오라’고 했죠. 전화기 붙들고 둘이 같이 눈물 바람을 했어요.” 아들 얘기, 교육 얘기, 음악 얘기로 통화는 30분 넘게 이어졌다. “몇 년 전 한국에 홀로 아들을 보내고 걱정돼서 전화를 걸었어요. 괜찮냐고 했더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 나라잖아요’ 하더라고요. ‘내 나라’란 그 말이 그렇게 안도감을 주더군요.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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