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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고선웅 “막 무친 겉절이 같은…진짜 날것의 연극 보여줄게요”

등록 2022-02-16 18:07수정 2022-02-17 11:37

[‘회란기’로 돌아온 연출가 고선웅]

평창패럴림픽 개·폐막식 총연출
공연판 종횡무진 스타 연출가
중국고전 천착해 세번째 작품
내달 5~20일 예술의전당 공연

“배우와 관객 함께 숨쉬는 연극
원형 그대로의 맛 살리고 싶어
조미료 빼고 조금 거칠게 연출
부조리 법정극…법조인들 보길”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한 연극 <회란기>를 각색·연출하는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가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 붙은 연극 포스터 앞에 서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한 연극 <회란기>를 각색·연출하는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가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 붙은 연극 포스터 앞에 서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건 허명이에요. 그냥 쉬운 연극,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 뿐이죠.”

연극계의 블루칩, 각색의 귀재, 흥행과 작품성을 놓치지 않는 스타 연출가…. 연출가 고선웅(54)은 자신에게 붙는 이런 수식어들을 쑥스러워했다. 연극과 뮤지컬, 창극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공연판을 종횡무진해온 그다.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 개·폐막식 총연출, 202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돌 기념 창작 뮤지컬 <광주> 연출도 그의 몫이었다. 각본과 각색, 구성에서도 재능을 발휘하며 희곡상, 연출상을 수없이 받았으니 분명 헛된 명성은 아니다. 작품마다 대중의 관심과 이슈를 만들어내며 흥행에도 성공해온 그가 새 연극 <회란기>를 선보인다.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한 연극 <회란기>를 각색·연출하는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가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연기 연출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한 연극 <회란기>를 각색·연출하는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가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연기 연출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0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정동의 한 건물 2층. 벽은 검고 바닥에서 냉기가 솟는 연습실에 빨강 목도리를 두른 고선웅이 들어섰다. “혀부터 풀고, 동선 다시 한번 해봐.” 그의 신호가 떨어지자 10명의 등장인물이 자리를 잡았고, 연습실엔 활기가 돌았다. “아이고, 불쌍해라 우리 남편.” “미천한 쇤네 말씀 좀 들어보소서.” 누명을 쓰고 아이를 빼앗기게 된 어미는 두 여인 가운데 누구인가. 리허설은 법정 장면이었다. “법조계 분들이 와서 좀 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판관 포청천이 등장하는 일종의 법정극이거든요. 700년 전 재판 얘기인데 편파와 야합이 있고 부조리와 부도덕이 있어요. 증인 매수와 위증에, 말도 안 되는 판결도 있고요.”

<회란기>는 중국 원나라 때인 1200년대 이잠부가 썼는데,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코카서스의 백묵원>으로 각색해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솔로몬의 재판’과도 유사하다. “브레히트가 각색한 작품은 잘 아는데, 정작 원작은 모르는 거예요. 동양적 정서가 있는 원작이 몰입감도 좋고 더 편하게 볼 수 있어요.”

연극 <회란기> 출연진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연극 <회란기> 출연진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는 연출 의도를 ‘막 무친 겉절이’에 비유했다. “진짜 날것의 느낌이 나도록 할 겁니다. 좀 거칠었으면 좋겠고요. 연극을 할수록 조미료를 빼고 싶은 욕망이 생겨요. 원래의 맛을 살리고 싶은 거죠.” 그는 ‘연극의 원형’ 또는 ‘연극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우리 연극 한번 해볼까’ 하고 사람들이 모여서 연극을 하면 이런 식으로 하지 않을까 하는 작품이에요. 연극의 원형에 가까운 거죠.” 그 연장선에서 무대나 조명 같은 치장을 최소화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넷플릭스 안방극장 시대에 연극은 과연 무엇인가’란 본질적 물음과 맥이 닿아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연극은 계속 낙후돼가는 느낌이 있잖아요.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세상이 변해도 소중한 것들이 많은데, 연극도 그중 하나인 거죠. 연극은 텔레비전 드라마·영화가 아니라 연극이잖아요.” 그는 ‘연극만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제 작품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연극이 이렇게 매력 있는 거여서 계속되는구나, 넷플릭스도 좋지만 연극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거죠. 그게 이 작품을 하게 된 동기예요.”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한 연극 <회란기>를 각색·연출하는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가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연기 연출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한 연극 <회란기>를 각색·연출하는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가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연기 연출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럼 연극만의 매력이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그는 먼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얘기했다. “연극을 하면 사람과 만나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극복하는 방법을 분석하고 이해하거나 분노하죠. 30년 넘게 이걸 하다 보니까 어떤 안목 같은 게 생겼어요. 그러면서 세상이 조금 보이는 거죠.” 그는 연극의 비교우위를 공간에서도 찾았다. “연극은 같은 천장 아래서 배우와 관객이 함께 숨 쉬며 에너지를 주고받게 돼요. 영화와 다른 거죠. 연극에선 배우의 연기가 이상하거나 납득이 되지 않으면 관객의 몰입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요. 그러다가 마음에 들면 밀물처럼 밀려오고요. 이런 게 보여요.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같이 만들어갑니다. 그때, 그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리얼 타임으로 맞닥뜨리는 거지요. 그 순간에 같이 늙어갑니다.”

작품 설명 자료에 나온 ‘연희적 양식의 확대’는 무슨 뜻일까? “그러니까 연극배우는 연극을 하고 있다는 걸 관객들에게 좀 들켜야 합니다. 저는 배우들에게 늘 ‘자연스러움을 경계하라’고 해요. 연극은 자연스러움 이후의 문제니까요. 꽃을 정말로 똑같이 그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화가가 그 꽃을 다르게 그리고서 ‘이건 분명히 꽃이야’라고 해야 감정을 일으키는 거죠. 그게 미술인 거죠. 연극에서도 일상을 너무 자연스럽게만 보여줄 게 아니라 조금 다르게 드러내야 볼 맛이 나고 형식미가 생기는 거죠. 이런 게 연희의 양식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봅니다. 배우한테 ‘자연스럽게 해봐’, 그러면 더는 연출을 할 게 없는 거죠.”

연출가 고선웅이 중국 고전을 각색하고 연출한 연극 <회란기>가 3월5~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연출가 고선웅이 중국 고전을 각색하고 연출한 연극 <회란기>가 3월5~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이번 작품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낙타상자>에 이어 고선웅이 연출을 맡은 세번째 중국 고전 원작 연극이다. 앞선 두 작품 모두 주요 연극상을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는 왜 거듭 중국 고전에 천착하는 걸까? “지문에 ‘죽은 사람 퇴장’ 이런 게 나와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퇴장해요? 그런데 그냥 그렇게 합니다. 연극의 형식에 충실한 거죠. 내용에서도 소재와 주제가 이 시대와 딱 들어맞아요. 지금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흥행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관객들이 좋아하실 거예요. 제 연극은 쉬워요. 되감기도 없고, 슬로비디오도 없는 연극은 바로 이야기를 알아들어야 해서 쉬워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회란기>는 고선웅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극공작소 마방진’과 함께한다. 다음달 5~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의 참맛’을 맛볼 수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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