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체성은 목소리입니다. 목소리만으로 녹음하고 최소한의 소리를 가져다 붙이는 식으로 만들었죠.”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가 솔로 가수로 돌아왔다. 장기하는 솔로 음반 <공중부양> 발매를 기념해 23일 열린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솔로 음반은 지난 3년의 결과물이자 솔로 장기하의 출발점”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음반은 2018년 밴드 활동을 졸업한 뒤 3년여 만에 내놓는 신보다. ‘뭘 잘못한 걸까요’ ‘얼마나 가겠어’ ‘부럽지가 않어’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다’ 등 5곡이 실려 있다. 모두 장기하가 작사·작곡하고 연주한 곡이다. 이번엔 녹음과 믹싱도 직접 했다.
기타·베이스·드럼 등 악기 연주가 중요한 밴드와는 달리 이번에는 목소리에 가장 신경 썼다. “밴드를 할 때와 비슷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밴드 때와 다르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다섯곡 모두 베이스가 빠졌다는 걸 한참 후에 알게 됐다.”
타이틀곡 ‘부럽지가 않어’는 시대를 관통하는 노래를 불러온 장기하가 ‘부러움’이라는 감정에 질문을 던지는 노래다. 그는 래퍼처럼 특유의 읊조리는 창법으로 가사를 소화한다. “힙합을 듣다 보니, 자랑이 많이 나왔다. 돈, 실력, 성공을 놓고 자랑을 한다. 이런 자랑을 이기는 자랑이 뭔가를 생각해봤다. 모든 자랑에 대해 전혀 부럽지 않다는 걸 자랑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수 장기하의 뮤직비디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제공
하지만 장기하가 누군가. 밋밋한 ‘정신 승리’만 보여주고 끝낼 리 없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부러워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만 부러워하게 되는 상황을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두 손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눈은 부러움의 대상에서 떼지 못하는 모습을 직접 연기했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에는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대목이 들어가 있다. “가장 익숙하지 않은 장르로 공을 많이 들인 곡이다.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이자람 누나에게 받은 <심청가> 풀버전 시디(CD)를 군 복무 시절 들으면서 우리말의 운율과 판소리의 대단함을 새롭게 느꼈다. 국악의 확장 가능성을 알게 됐다. 그때 느낀 대단함에서 영향을 받았다.”
장기하는 “이 음반이 지난 3년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솔로 장기하의 기본값을 보여준 거라고 생각한다”며 “솔로 장기하의 출발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이번 앨범의 의미를 설명했다.
솔로 장기하로서 협업해보고 싶은 뮤지션도 얘기했다. “제 앨범 발매 전날 재즈 뮤지션 윤석철 트리오의 앨범이 나왔더라. 들어봤는데 기가 막혔다. 예전에도 한번 같이 작업하려다 안 됐는데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또 지난해에 <쇼미더머니>를 열심히 봤는데, 래퍼 머드 더 스튜던트가 제 ‘최애’였다. 언제 한번 같이 작업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롤모델을 묻는 말에 그는 “예전에는 배철수 선배님, 김창완 선배님이 롤모델이었다. 그런데 이젠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게 없다. 누구처럼 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도 않고, 시대와 상황이 달라 내 길을 가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0대 이후에는 롤모델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장기하는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로 데뷔해 ‘달이 차오른다, 가자’ ‘풍문으로 들었소’ 등 히트곡을 발표하며 독특한 음악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 2020년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출간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기다려온 팬들과의 만남도 예정돼 있다. 장기하는 다음달 열리는 공연에서 안무가·디제이·무대미술가 등과 함께 꾸린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밴드 음악이 아니라 솔로 장기하의 음악을 들려줄 계획이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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