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데뷔 20돌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피아노계의 악동’에게도 연륜이 스며든 걸까. 반항아적 면모를 보여온 피아니스트 임동혁(38)은 한층 여유롭고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1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데뷔 20돌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쓸쓸함이 묻어나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연주로 행사를 시작했다.
“더 나은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음악이 깊어지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는 “10대·20대엔 콩쿠르에서 뭔가를 보여주는 성과주의에 집착했다면, 이제는 이런 쪽으로 나 자신을 채찍질하려 한다”고 말했다.
쇼팽, 차이콥스키, 퀸 엘리자베스 등 이른바 ‘3대 국제 콩쿠르’에서 모두 수상한 국내 유일한 연주자가 그다. 클래식계에선 드물게 팬덤을 형성한 ‘원조 클래식 아이돌’이었다.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직설적 언행 등으로 구설에 자주 오르며 ‘악동’별명을 얻었다.
세계 무대에서도 곡절이 많았다. 19살이던 2003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지만, 그는 편파 심사에 항의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그 일로 꼬리표를 달게 됐고, 제 커리어에도 도움이 안 됐어요. 여왕이 주는 상을 거부한 게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더군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수상 거부를 안 하는 게 맞았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예민하고 무대공포증도 심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걸 극복할 수는 없어요. 그냥 꾸역꾸역 하는 거죠. 연습해도 두려움은 있어요. 그저 실패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연습이라도 하는 거죠.” 그는 “만약 나한테 있는 실력보다 더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 아니 실력만큼 발휘할 수 있게만 해준다고 해도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 것”이라며 “무대에 한번 설 때마다 수명이 50일씩은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15일 데뷔 20돌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그는 최근 슈베르트의 후기 소나타 20번(D.959)과 21번(D.960)을 연주한 6집 음반을 발매했다. 오는 18일부터 성남, 울산, 서울 등지에서 음반 수록곡을 연주하는 독주회도 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절제된 방식으로 연주할 필요가 있어요. 낭만적 기질을 지닌 제겐 큰 도전이었는데, 이 녹음에서 절제된 형태를 부여하며 노래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나름대로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음반이라고 자부한다”며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이 음반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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