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두번째 음반을 발매하는 테너 존 노는 다음달 서울과 구리에서 이를 기념하는 리사이틀 공연도 연다. 크레디아 제공
31살 테너 존 노(한국명 노종윤)에게선 진중함이 묻어난다. 느릿한 말투엔 사려와 겸손이 배어 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삶에 깃든 경계인의 자의식 때문일까. 불쑥 찾아온 성대결절과 재기, 그리고 갑작스러운 성공이 그를 조숙하게 했을 수도 있다. 여리지만 호소력 짙은 그의 미성은 그 자체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의 카페에서 만난 그는 눈빛이 순했다. 그의 정체성은 다층적이다. 오케스트라 음량을 뚫어내는 고음의 테너이자, 마이크 들고 노래하는 크로스오버 가수다. 두 장의 독집 앨범을 낸 솔로 가수이면서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3>(JTBC) 준우승팀 ‘라비던스’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그저 ‘노래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다. “여러 정체성으로 다양한 삶을 사는 거죠.” 그는 “저 같은 엠제트(MZ)세대는 이런 삶에 익숙하다”며 웃었다.
테너 존 노의 두번째 앨범 <디 아더 사이드>는 10곡 가운데 7곡을 신곡으로 채웠다. 가요와 팝페라, 시티팝 등 다채로운 음악이 담겨 있다. 크레디아 제공
21일 발매하는 2집 음반은 사전 주문만 2만장에 이르렀다. 1집에 이어 ‘멀티플래티넘’을 예약한 셈이다. 첫 음반은 정통 클래식인데, 이번엔 랩을 섞은 발라드를 비롯해 팝페라, 시티팝 등 크로스오버다. 10곡 가운데 7곡이 신곡이다. 4월엔 음반 발매를 기념해 서울 세종문화회관(2일)과 구리아트홀(9일)에서 공연도 한다. 소리꾼 고영렬과 카운터테너 최성훈, 뮤지컬 배우 고은성이 음반 참여에 이어 공연에도 함께 나선다.
어려서부터 굴곡이 많았다. 태어난 직후 신학을 전공한 아버지와 함께 미국 켄터키주로 건너갔다가 일곱살 때 돌아온다.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홀로 미국으로 떠나 메릴랜드의 고교에서 신학 공부에 매달렸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성악을 공부했으니 음악은 늦게 시작한 편이다. 이후 피바디, 줄리아드, 예일대에서 공부하며 정통 클래식 테너의 길을 걷는데, 그사이 한국에서 탱크병으로 군 복무도 마친다. “음대를 같이 다닌 미국 친구들이 에스엔에스를 통해 축하를 많이 해줘요. 제가 이렇게 색다른 길을 가게 될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18년 성대결절 수술 전날이라고 했다. 성대에 물혹과 굳은살이 생겨 고음을 잃을 수도 있다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됐어요. 수술 뒤 3개월 동안 묵언을 했죠.” 그리고 2년 뒤 어느 날 방송국 오디션에 응모했고, 인기가 치솟으면서 곧 새로운 인생이 찾아왔다.
“성악에선 흉성을 쓰니까 힘이 들어가면서 몸집이 커져요. 마이크를 쓰는 크로스오버에선 몸의 팽팽함이 풀리면서 힘도 빠지고요.” 노래에 맞춰 몸이 자동변속기처럼 스스로 조절한다는 게 신기하다. 그가 가요와 힙합, 월드뮤직과 전자음악까지 편식하지 않고 고루 즐겼기에 이런 자유로운 변용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에게 크로스오버는 ‘장르의 교차에서 생성되는 융합 에너지’를 뜻한다고 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서정적인 ‘리릭 테너’다.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은 베르디나 푸치니보다 모차르트나 바로크 성악곡이 제겐 더 잘 어울려요.” 그의 본보기는 리릭 테너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탈리아 성악가 ‘베니아미노 질리’라고 했다. 그에겐 열성 팬들이 따른다. 팬클럽 ‘힐링존’ 회원들은 40대를 웃도는 여성층이 주축이다. 공연장에서 일제히 준비한 전등을 켜 들거나 주황 빛깔로 복장을 맞추기도 한다. “노래할 때 감정과 뉘앙스 전달에 집중하려 합니다. 팬들이 그걸 금세 알아채시더라고요.”
‘클래식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그에게선 사명감 같은 게 엿보였다. 자신의 뿌리가 클래식임을 거듭 강조한다. 1집 음반을 순수 클래식으로 채운 것도, 클래식 전문 기획사인 ‘크레디아’를 선택한 것도 이 뿌리와 연관이 있다. “저를 통해 클래식에 친숙해진 분들이 꽤 있어요.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앞으로 꼭 서보고 싶은 무대가 뭐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 창작 오페라를 꼽았다. “한국어로 된 창작 오페라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이들이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잖아요. 창작 오페라도 머지않아 뮤지컬처럼 높은 인기를 얻을 거라고 봅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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