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하는 오페라 <아틸라> 연출가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 베이스 가수의 단단하고 묵직한 저음이 둔중하게 울렸다. ‘오페라의 제왕’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초기 걸작 <아틸라>의 국내 초연을 앞둔 리허설 현장이었다. 5세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의 정복자 아틸라는 ‘신의 채찍’을 자처한 인물이다. 강인한 여성 전사 오다벨라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며 목숨 걸고 항전해 아틸라의 로마 침공을 막아낸다는 게 오페라의 줄기다. 베르디는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 염원을 담아낸 이 작품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하는 오페라 <아틸라> 연출가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단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연출을 맡은 이탈리아 출신 잔카를로 델 모나코(79)는 일흔을 훌쩍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넘쳤다. 다부진 체격으로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성악가들에게 주문을 쏟아냈다. 아리아를 흥얼거리며 몸 연기를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57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120편 넘는 오페라를 진두지휘한 이 관록의 연출가는 ‘드라마틱 테너의 최고봉’ 마리오 델 모나코(1915~1982)의 아들이다. 22살이던 1965년 <삼손과 데릴라>의 연출을 맡으며 데뷔했는데, 이때 아버지가 삼손 역을 맡았다. “아버지가 저를 극장에 추천하면서 그러더군요. ‘이번에 연출 제대로 못 하면 넌 그걸로 끝이야’라고요.” 그는 “아버지가 워낙 거목이라 그늘도 컸다”며 “아버지의 그늘을 피해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다”고 했다. 이후 그는 섬세하고 개성 있는 무대로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만든 그의 작품들은 영상으로 제작돼 전세계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2004년 서울 올림픽경기장에 100m가 넘는 초대형 무대를 설치해 <카르멘>을 공연하기도 했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하는 오페라 <아틸라>의 단원들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에게 <아틸라> 연출은 이번이 두번째다. 197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 이후 50년 만이다. “그땐 숲이 있는 야외에서 한 축제 공연이라서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극장이란 무대에서 하는 아틸라는 저도 이번이 처음이군요.” 그는 “이탈리아에서도 자주 공연하는 작품은 아닌데, 라스칼라(밀라노에 있는, 역사가 오래된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면서 최근 유행하기 시작했다”며 “이 작품에 어울리는 가수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성악가들의 역량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중국, 일본에서도 자주 공연했는데, 한국 성악가들이 단연코 최고죠.” 그는 “한국인에겐 노래 잘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하는 오페라 <아틸라> 연출가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세기 오페라에선 연출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연출가는 전체적인 극을 해석하고 무대와 의상, 연기 지도를 담당한다. 잔카를로는 원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이로 명성이 높다. 그는 <아이다>의 무대를 주식시장으로 꾸미기도 했다. 이번 무대는 어떨까? 그는 이번 무대를 ‘리노베이션 클래식’이라고 표현했다. 과거를 재현하되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다는 것이었다. “무대는 붕괴하는 로마를 상징합니다.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지만 무너져내려 폐허가 된 로마죠.” 의상에서도 ‘판타지’적인 분위기가 풍길 거라고 했다. 강렬한 시각 효과도 예고했다. “불과 먼지가 난무하고 형형색색의 거대한 천이 드리워질 겁니다.” 영상을 동원해 하늘과 구름의 움직임으로 극의 흐름을 표현한다고 했다.
지휘를 맡은 발레리오 갈리 역시 이탈리아 출신이다. 그는 “청중을 들썩이게 하는 베르디의 전형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며 “극이 웅대하고 캐릭터들의 개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오페라는 아틸라라는 인물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발레리오는 “아틸라는 나름의 고귀한 가치관을 지닌 인물로 표현된다”며 “세상을 선과 악, 이분법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게 이 작품의 미덕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이 작품은 베이스와 바리톤의 중후한 저음 대결이 핵심 감상 포인트다. 특히 아틸라 역의 베이스 가수는 장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장대한 아리아를 소화해야 한다. 황지원 음악평론가는 “아틸라는 모든 이탈리아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베이스가 주인공”이라고 했다. 아틸라 역의 전승현(49)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에서 ‘궁정 가수’의 직위를 받은 정상급 베이스다. 거대한 체구에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으로 유럽에선 ‘아틸라 전’으로 불렸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하는 오페라 <아틸라> 연출가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60돌을 기념해 <아틸라> 초연 무대를 마련했다. 다음달 7일부터 10일까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과 함께 공연한다. 6월에도 베르디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를 초연 무대에 올린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