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민과 시각장애·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주축인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가 지난 2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2번을 협연하고 있다. 단원들 가까이 다가가 지휘를 한 이원숙 지휘자에겐 포디엄(지휘대)이 없었다. 국립극장 제공
지휘자에겐 발 딛고 설 포디엄(지휘대)이 없었다. 악보도, 악보대도 놓여있지 않은 연주자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뷰티플마인드 오케스라와 피아니스트 임동민의 협연. 지휘자는 이곳저곳 무대를 움직이며 지휘했다.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는 시각장애, 발달장애 등 장애가 있거나 소외계층 청소년인 단원들로 구성돼 있다. 이날 공연에도 시각장애인 6명, 발달장애인 27명이 참여했다. “연주자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지휘대가 있으면 걸려 넘어질 수도 있거든요.” 공연 직후 만난 지휘자 이원숙(54)은 “일단 공연을 무사히 잘 끝마쳐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이 공연을 위해 4개월 동안 매달렸다. 단원들이 모두 연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곡을 대편성으로 편곡했고, 연습 진척 정도에 맞춰 공연 전날까지 단원 개인별 악보도 수정해야 했다. “중요 리듬만 치도록 하거나 음역을 고쳤어요. 단원 모두가 참여해 연주를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봤죠.” 독일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오케스트라가 창단한 2010년부터 13년째 상임 지휘를 맡아 재능기부로 헌신해왔다.
시각장애·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주축인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가 지난 2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시각장애가 있는 클라리넷 연주자 앞엔 악보도, 악보대도 놓여 있지 않았다. 국립극장 제공
단원들에게도 임동민과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12번’은 커다란 도전이었다. 장시간 집중이 어려운 이들에게 연주시간이 30분에 육박하는 이 곡을 완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날 공연에서도 1악장, 3악장은 단원들 모두 연주에 참여했지만, 2악장은 이
들을 지도해온 음대 교수와 보조교사 등 10명만 연주했다. “연습을 하다 보니 느리고 섬세한 2악장은 무리라고 판단했어요. 아쉽지만 전곡 완주는 다음에 도전할 과제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이 지휘자는 “아이들의 특기는 템포가 빠르고 씩씩한 곡”이라며 “로시니의 윌리엄텔 서곡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날도 빠르고 힘찬 이 서곡의 피날레 부분을 연주할 때 단원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신이 나서 연주했다.
동생 임동혁과 함께 2005년 쇼팽콩쿠르 3위에 입상한 관록의 피아니스트 임동민에게도 이날 협연은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고, 기타 등 원곡에 없는 악기가 추가된 편성이라 통상적 협연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연주할 때 굉장히 긴장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평온했다”며 “아이들과 4차례 리허설을 하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원숙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마음의 템포’ ‘마음의 소리’다. 그가 “니 마음에 그 소리 있지?”라고 수업 중 학생들에게 툭툭 건넨 말은 류장하(2019년 작고) 감독의 마음을 울렸다.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음악 영화 <뷰티플 마인드>는 2018년 제천 국제음악영화제에 출품됐다. 이 지휘자는 “오로지 청각에만 의지해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각장애 친구들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그만의 특별한 교육법인 셈이다.
‘함께, 봄’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이날 공연은 장애인들의 문화 향유권 확대 차원에서 국립극장이 기획한 ‘무장애(배리어프리) 공연’이었다.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출신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공연에 앞서 인사말을 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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