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소속 임규수, 황세원씨 부부가 오는 10일 국악원 우면당에서 피리 2중주 연주회를 연다. 5곡 가운데 3곡이 직접 작곡을 위촉한 창작곡이다. 임규수 제공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에 ‘피리 부는 부부’가 있다. 악단에 피리 연주자는 총 6명인데, 남편이 악장, 아내가 수석 연주자다. 대학 선후배이자 창작악단 동기인 임규수(44)·황세원(42)씨 부부. 두 사람이 오는 10일 서울 서초구 국악원 우면당에서 여는 피리 2중주 연주회가 눈길을 끈다. 5곡 가운데 3곡이 직접 작곡을 위촉한 초연 창작곡이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름이지만 피리가 어떤 악기인지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세로로 부는 국악기 중에서도 퉁소, 단소와 달리 피리는 리드를 떨어 소리를 낸다. 몸집은 가늘고 작지만 불기 어려운 악기로 손꼽힌다. 국악 관현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며, 음량도 큰 편이다. 지난 5일 국악원에서 만난 부부는 피리 불기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호흡이 척척 맞았다. 남편이 “피리는 오보에나 클라리넷보다 호흡량이 많아야 한다”고 하자, 아내는 “5분만 불어도 온몸에 땀이 번진다”고 맞장구친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소속 임규수, 황세원씨 부부가 오는 10일 국악원 우면당에서 피리 2중주 연주회를 연다. 5곡 가운데 3곡이 직접 작곡을 위촉한 창작곡이다. 임규수 제공
“두대의 피리가 각각 독립된 선율을 내도록 했어요. 그러면서 앙상블을 이루고 싶었거든요.” 기존 피리 앙상블은 대개 소리의 높낮이만 다를 뿐 선율은 같았다. 임씨가 전문 작곡가 3명에게 창작곡을 위촉하면서 특별히 강조한 것도 ‘독립된 선율’이었다. 작곡 위촉 비용도 그가 지급했다. 황씨도 “선율이 다른 피리 2중주는 조금 새로운 시도”라며 “음역이 좁은 피리의 표현을 넓히고 새로운 음색을 구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국악은 보존의 대상인 동시에 이 시대 사람들의 ‘동시대 음악’이어야 한다. 국립국악원이 2004년 ‘오늘의 창작이 내일의 전통’이란 구호를 내걸고 창작악단을 설립한 것도 국악 창작곡의 필요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서양 클래식 음악이 부단히 창작곡을 만들어 연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위촉 초연곡 ‘무르익는 봄’과 ‘검은 꽃’은 피리 연주자 출신 작곡가 김해진과 고만석이 각각 작곡했다. 김기범의 ‘숨’은 독주곡을 이중주로 개작한 곡이다. 작곡가들이 부부가 연주한 해석에 맞춰 악보를 수정하기도 했다. 임씨는 “창작곡 초연은 악보에 숨결을 불어넣는 듯한 희열을 준다”고 했다.
연주회는 코로나로 1년이 늦어졌다. 부부가 퇴근 뒤에 서너시간씩 연습했는데, 피리의 음량이 너무 커 따로 연습실을 빌려야 했다. 황씨는 “둘이 내는 피리 소리가 부딪치지 않아 앙상블이 괜찮은 편”이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피리의 매력이 뭐냐고 물었더니 둘의 결이 살짝 달랐다. 남편은 “대나무 특유의 음색이 살아 있는 날것의 느낌이 좋다”고 했고, 아내는 “사람 목소리와 음역이 비슷해 노래 부르듯 피리를 부는 게 즐겁다”고 답했다.
언젠가부터 임씨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주역 문구가 있다.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 변하지 않는 가치로 모든 변화에 대응한다는 뜻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고국으로 향하면서 상해 임시정부에 남긴 휘호이기도 하다. “연주할 창작곡은 서양의 12음계로 돼 있어요. 리듬과 템포가 자유로워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죠. 하지만 제 피리 소리는 전통의 정체성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그는 “서양 옷을 입어도 몸은 바꿀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시시각각 천변만화하는 음악의 흐름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되 국악의 본질은 잃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들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