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프라하의 봄 콩쿠르’ 우승팀인 아레테 콰르텟 멤버들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에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성현, 전채안, 장윤선, 김동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9년에 창단한 아레테 콰르텟이 오는 23일 처음 서는 서울 예술의전당 단독 무대에 ‘그랑 데뷔’(위대한 데뷔)란 대담한 타이틀을 내걸었다. 팀 이름도 ‘특출한 재능’이란 뜻의 그리스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나 현악사중주단으로 뭉친 20대 남녀 4명은 팀명에서부터 패기와 자신감이 넘친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지난해 6월 체코에서 이들에 대한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제72회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것이었다. 처음 출전한 국제 콩쿠르여서 이들의 우승을 점치는 이들이 국내 전문가를 포함해 거의 없었다. 여기에 심사위원상, 청중상 등 5개 특별상까지 석권했다. 우승자 다음으로 2위 없이 3위 이하만 시상했으니 이들의 실력이 압도적이었다는 얘기다. 결성 1년8개월 만의 쾌거였다. 1946년 지휘자 라파엘 쿠벨리크와 체코 필하모닉 멤버들에 의해 창설된 이 콩쿠르는 해마다 두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데, 현악사중주 부문은 16년 만이었다. 16년 전 우승팀은 현재 세계 최정상급인 파벨 하스 콰르텟이다.
“넷이서 아침 식사를 같이하고 연습을 시작해요. 그리고 점심, 저녁에다 야식까지 함께 먹으며 온종일 매달리는 거죠.” 지난 6일 만난 아레테 콰르텟이 꼽은 우승 비결은 ‘조식부터 야식까지’ 함께하며 몰두한 지독한 연습이었다. 첼리스트 박성현(29)은 “경험 부족을 연습량으로 보충했다”며 “누가 봐도 인정할 정도로 정말 죽어라 열심히 준비했다”고 돌이켰다. 무엇이 그리도 절박했을까. “예선을 통과한 콩쿠르들이 코로나로 잇따라 취소됐어요.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비올리스트 장윤선(27)은 “어렵게 열린 콩쿠르라 더 절실하게 준비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프라하의 봄 콩쿠르’ 우승팀인 아레테 콰르텟 멤버들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에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맨 아래부터 왼쪽 시계방향으로 김동휘, 전채안, 박성현, 장윤선.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현악사중주에서 2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는 악기마다 다른 섬세한 소리의 결을 마치 대화하는 식으로 주고받는다. 하지만 4명이 켜는 활은 때론 4개의 검이 되어 격정적인 소리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각각의 개성을 살리되 세밀하게 조율하지 않으면 금세 소리가 이상해진다. 한명이라도 도드라지려고 하면 연주는 이내 불협화음이 된다. “초반 1년은 싸운 적도 많아요. 우리 4명 모두 개성과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거든요.”(전채안) 해법은 각자의 주장대로 연주를 해보는 거였다. 제1 바이올린을 맡은 전채안(25)은 “실제로 해봤더니 어떤 게 좋은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범답안이 나왔다”고 했다. “1년 정도 지나니까 서로 자연스럽게 맞춰지더라고요. 이젠 싸울 일이 없어요.” 제2 바이올린 김동휘(27)가 맞장구쳤다.
이들에겐 꿈이 많다. 실내악 연주의 명소인 영국 런던의 위그모어홀 공연, 바로크시대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회, 그리고 사중주부터 오중주, 육중주, 팔중주가 함께하는 ‘현악 앙상블 축제’ 등등. 팀의 리더인 박성현은 “실내악은 여러 악기의 장점을 모아 들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경험이 쌓이고 준비가 되면 언젠가 현악 앙상블 축제를 꼭 추진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레테 콰르텟은 공연기획사 ‘목프로덕션’에 소속된 실내악단들의 막내 격이다. 국내 실내악의 역사를 새로 써온 노부스 콰르텟, 아벨 콰르텟, 트리오 제이드가 모두 이 기획사 소속이다. 오는 20일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노부스·아벨·아레테 콰르텟이 함께 출연하는 ‘콰르텟 플러스’를 연다. 목프로덕션 창립 15돌 기념공연이다. 2015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아벨 콰르텟이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2번을, 아레테 콰르텟이 슈만의 현악사중주 2번을 연주한다. 멘델스존의 현악팔중주를 함께 연주하는 노부스 콰르텟과 아레테 콰르텟은 사제지간이기도 하다. 노부스 콰르텟의 리더 김재영이 아레테 콰르텟 창단 때부터 지도해왔다.
지난해 ‘프라하의 봄 콩쿠르’ 우승팀인 아레테 콰르텟 멤버들과 소속사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에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 박성현, 전채안, 장윤선, 김동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격자들의 수준 높은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죠.” 목프로덕션 이샘(49) 대표가 꼽은 현악사중주의 매력이다. 그는 항공사 승무원 출신이다. 8년간 비행기를 타다 현악사중주에 빠져 공연기획자로 변신했다. 공연기획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겸하니 연주자가 연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연주자와 계약을 맺는 건 결혼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공연기획의 뒷얘기를 다룬 책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에서는 “한 예술가의 인생 전체가 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매니지먼트를 맡아달라는 연주자들의 제안서가 수북이 쌓여 있다”며 “연주자 선택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꼽은 아티스트 선정 기준은 ‘젊고 음악성과 전달력이 좋은 성장형 연주자’다. 목프로덕션이 ‘실내악의 산실’로 통하는 걸 보면 그의 ‘선구안’이 보통은 아니다. 그는 “원래 15년만 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작년에 만난 젊은 연주자들 공연을 보면서 조금 더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며 웃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