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무용단의 <일무>(佾舞) 후반부는 종묘제례악에 쓰이던 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절제되던 초반 춤사위는 갈수록 움직임이 빨라졌다. 절도 있게 꺾이던 몸동작은 공연 후반에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며 유연해졌다. 서울시무용단이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부분적으로 선보인 <일무>는 정적이고 간결한 전통춤에서 역동적이고 화려한 현대춤으로 이어지며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일무(佾舞)는 ‘줄지어 추는 춤’이란 뜻이다. 종묘제례악의 특별한 의식에 쓰이던 지극히 고전적이고 유교적인 의식무다. 서울시무용단이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 <일무>를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국내 최대 규모 무대에서 펼치는 55인 무용수들의 칼군무가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화제의 공연이다.
수십명이 열을 지어 자로 잰 듯 정확한 동작으로 추는 일무는 움직임이 적고 단순하지만 절제와 균형의 미학이 어우러져 눈부신 춤사위를 선사한다.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 묻혀 있던 일무를 무대 한가운데로 끌어내 현대적인 색채를 입히는 작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60)가 주도했다. 패션디자이너로 출발해 영화의 미술감독, 공연의 무대감독으로 점차 영토를 확장하며 독보적인 미학을 펼쳐온 인물이다. 그는 “일무를 처음 접했을 때 그 요소와 구성이 매우 현대적이었다”며 “현대무용과 접목하면 어떨까 싶어 서울시무용단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전반부는 절제되고 간결한 전통춤을 비교적 온전히 구현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안무는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과 김재덕, 김성훈이 맡았다. 안무가 김성훈은 “직선의 강한 움직임은 곡선으로 구부렸고, 느린 템포는 빠르게 변용했다”고 설명했다. 음악을 담당한 김재덕은 전통악기와 서양악기를 적절하게 뒤섞어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묘하게 현대적인 사운드를 뽑아냈다. 김재덕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을 깎아내 아쟁 비슷하지만 아쟁은 아닌 소리를 만들었고, 피리와 태평소의 고음을 빼서 무거운 느낌을 덜어냈다”며 “분명히 전통악기인데 서양악기처럼 들리는 모호함으로 동시대성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종묘제례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울시 무용단 <일무> 공연 포스터 앞에 포즈를 취한 안무가 김재덕(왼쪽 두번째),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 연출 정구호, 안무가 김성훈. 세종문화회관 제공
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의 의식무를 굳이 이런 식으로 변용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한 정구호의 답변은 “새로운 전통”이었다. “전통을 전통대로 유지하고 보존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전통에서 끄집어낸 요소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닌가.”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도 “이번 <일무> 공연을 통해 전통이 현대로 이어지고, 다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1~3막으로 구분된다. 1~2막은 전통춤의 형태와 구성을 비교적 온전히 구현하되, 3막은 새롭게 창작한 ‘신일무’로 채운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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