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연기인생 60년 이호재, ‘노 빠꾸’는 나의 힘

등록 2022-05-24 08:59수정 2022-05-24 09:11

81살 배우 이호재 기념공연 ‘질투’
극작가 이만희가 맞춤형으로 쓰고
척하면 척인 남명렬·남기애와 무대

1962년 얼떨결에 연극판 입문
스크린·드라마도 섭렵한 대가
“어차피 생계 안되니 그냥 가는 거죠”
연극 <질투>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배우 이호재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연극 <질투>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배우 이호재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연기의 교과서’ ‘대사의 달인’ 같은 수식어는 이제 거추장스러울 터, 팔순을 넘긴 그에겐 ‘청바지 입은 방장 스님’이나 ‘빨간 소주’ 같은 별명이 더 어울린다. 연기력은 물론 인간적 풍모로도 연극판을 평정한 배우 이호재(81). 꿋꿋이 서울 대학로를 지켜온 그가 연기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무대에 오른다. 오는 27일 대학로 소극장 ‘학전블루’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질투>다. 이만희 작, 최용훈 연출의 연극은 6월5일까지 이어진다. 지난 13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선 초탈한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뒤돌아보면 뭐 해요. 그냥 가는 겁니다. 뒤돌아보는 게 가는 길을 방해하기도 해요.” 배우 인생 60년을 회고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독특한 배우론을 펼쳤다. “배우에겐 점프나 도약이 없어요. 어떤 작품에선 연기가 좋다가도 다른 작품에선 또 내려와요. 그냥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거지요.” 이번엔 ‘가난한 연극동네’에서 60년을 버텨낸 힘이 뭐냐고 물었다. “다들 힘들어도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버티잖아요. 그런데 연극으로는 어차피 생계가 안 돼요. 앞뒤 재지 않고 그냥 가는 수밖에 없었지요. 내가 ‘노 빠꾸’(후진 없음)거든요. 하하.” 그는 ‘그냥’이란 단어를 애용했다. 이호재는 다른 수식가 불필요한, 그냥 ‘천생 배우’였다.

황혼의 인생에도 사랑과 열정, 로맨스가 있으니, <질투>는 ‘황혼 예찬’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완규(이호재)는 친구 춘산(남명렬)과 화분 사업을 한다. 동네 약사 수정(남기애)이 느닷없이 완규에게 둘만의 해외여행을 제안하면서 셋은 삼각관계로 얽혀든다. 이호재는 “누구에게나 있는 건전한 질투를 다룬 작품”이라며 “젊은 세대에겐 부모들 얘기이자 미래의 자기들 모습이니 세대 불문하고 재미있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남명렬·남기애는 수없이 같은 무대에 오른 사이니, 척하면 척이다. 이호재·남기애는 드라마 <비밀의 숲>(tvN)에서도 부부를 연기했다.

연극 &lt;질투&gt; 포스터. 극단 컬티즌 제공
연극 <질투> 포스터. 극단 컬티즌 제공

<질투>는 ‘이호재 맞춤형’ 작품이다. 극작가 이만희가 처음부터 이호재를 염두에 두고 써 내려갔다고 한다. 작품에서 ‘노 빠꾸’인 완규는 통풍이 있고 ‘(뚜껑이) 빨간 소주’를 즐겨 마시는데, 실제 이호재가 그렇다. 그의 팬클럽 이름도 ‘빨간 소주’다. “리허설만으론 부족해요. 연습이 늘 술자리로 이어지죠. 연극이 끝나도 그냥 갈 수 없잖아요.” 그는 “두병 주량이던 빨간 소주를 요즘 한병으로 줄였다”며 웃었다.

이호재는 1963년 연극 <생쥐와 인간>으로 데뷔했다. 이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이해랑연극상 등 수많은 연극상을 휩쓸었다. 간혹 스크린과 드라마에도 얼굴을 비치고,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도 했지만 본업인 연극 무대를 뜬 적은 없다.

연극판엔 그를 ‘추앙’하듯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이번 작품에도 연극인 20명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김재건·이남희·이대연·장연익·정동환 등 배우 후배들뿐만 아니라 연출가 박정희, 성우 송도순 등이 회차별로 2~3명씩 나눠 출연한다. 2010년 그의 칠순 기념 공연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연극 관련 단체가 아닌 동료·후배들의 자발적 헌정 공연은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극작가 이만희는 ‘세월 가는 게 아까운, 보물 같은 배우’라고 그에게 존경의 염을 표하기도 했다.

연극 &lt;질투&gt;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배우 이호재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연극 <질투>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배우 이호재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연극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고 했더니, “어쩌다 보니 얼떨결에”라고 했다. 서울 휘문고 시절엔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곧 그만둬야 했다. “입학만 했을 뿐이지 강의실 한번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난 사건이 있었어요.” 무슨 사건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60년 전 얘기를 지금 해서 뭐 하겠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1960년 봄, 대학가는 어수선했다. 발음 좋고 목소리 우렁찬 그가 ‘얼떨결에’ 4·19 혁명 선언문을 낭독하게 됐다. 더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방황하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동랑 유치진 선생이 만든 서울연극아카데미(서울예대 전신)에 들어갔다. 1962년이었다. 그와 함께 연극판을 휘저었던 배우 신구, 전무송, 반효정 등이 입학 동기생이다.

이호재를 얘기할 때 전무송을 빼놓을 수 없다. 둘도 없는 벗이자 수많은 무대에 함께 오른 명콤비인데, 사람들은 둘을 라이벌로 보기도 했다. “전무송이 무대에 서면 텐션(긴장)이 생겨요. 아주 멋있죠. 근데 나는 좀 릴랙스(이완)돼요. 그런 우리 둘이 만나면 콤비가 잘 이뤄지는 거죠.” 이호재의 이완이 ‘유연함과 순발력’으로 빛을 발한다면, 전무송의 긴장은 ‘묵직하고 사색적인 연기’를 빚어낸다는 게 연극판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연극 끝나면 무송이 앞에는 꽃다발 든 여자들이 줄을 서는데, 나한테는 시커먼 애들만 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해요.(웃음) 요즘도 우리 둘은 가끔 만나 술도 마시고 건강 얘기도 한답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