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고, 작곡하는 재즈 음악가 배장은이 마포아트센터 재개관을 기념해 열리는 무대에 재즈 가수 웅산과 함께 오른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안녕하세요, 배장은입니다. 주부고요, 음악도 합니다.” 피아노 치고, 작곡도 하는 재즈 음악가 배장은(48)은 무대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의 오랜 ‘음악 동지’인 가수 현진영은 그에게 ‘주부션’이란 타이틀을 붙여줬다. 주부이면서 동시에 뮤지션이란 뜻이다. “코로나 시기엔 오로지 가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들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초등학교 2학년·6학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음악은 ‘형편 되는 대로, 여건 허락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작은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1주일 앞으로 다가온 큰 무대에 살짝 설레는 듯했다.
23일 공연은 그가 재즈 가수 웅산과 함께 서는 무대. 마포아트센터 재개관을 기념해 열리는 ‘재즈 리부트’(JAZZ REBOOT) 시리즈의 첫 공연이다. “그냥 웅산 언니라고 불러요. 둘이 함께하는 공식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1살 차이인 둘은 20대 초반부터 재즈클럽 ‘야누스’를 들락거리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다양한 음악의 자양분을 흡수해 독특한 개성을 뿜어내지만, 이들의 음악 색채는 조금 다르다. 웅산은 늘 대중과의 접점을 놓지 않은 반면, 배장은은 끝없이 실험하면서 새 형식을 탐색한다. 재즈 평론가 남무성은 “웅산의 감성과 배장은의 실험성이 절충되면 멋진 하모니를 이룰 것”이라며 “언뜻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의 하모니가 무척 궁금하다”고 말했다.
배장은은 국내에서 많은 팬을 거느린 재즈 음악인이다. 그가 연주하는 곳엔 늘 그를 ‘추앙’하는 재즈 애호가들로 넘친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재즈 세례’를 받았다.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가 재즈를 좋아했다. 집에서 늘 에롤 가너, 윈턴 켈리, 칙 코리아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음악이 흘렀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한 배장은은 1997년엔 미국의 재즈 명문 노스텍사스대로 건너가 학사·석사를 마친다. ‘돈트 노 와이’(Don’t know why)로 유명한 재즈 가수 노라 존스가 이 학교에서 함께 피아노를 전공한 동기생이다.
배장은이 이끄는 4인조 밴드가 ‘배장은 & 리버에이션 아말가메이션’(JB liberation Amalgamation)이다. 2020년 한국대중음악상(재즈·크로스오버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번 공연에선 이 밴드에 색소폰과 트럼펫, 트롬본이 더해진다. 클럽이나 재즈바가 아닌 전문 공연장이라 사운드를 풍성하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이 어디로 튈지 몰라요. 웅산 언니와 여러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거든요. 원래 재즈의 본질이 즉흥성이잖아요. 하하~”
재즈 피아니스트 배장은과 재즈 보컬 웅산이 서울 마포문화센터 재개관을 기념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재즈클럽 ‘야누스’를 들락거리며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이지만 함게 공식 무대에 함께 오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그는 클래식에 대한 끈을 놓은 적이 없다. 대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도 클래식 피아노를 꾸준히 연마했다. “클래식에는 좋은 피아노곡들이 아주 많잖아요. 훌륭한 연주자들도 계속 배출되었고요. 제겐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게 있어요.” 2007년엔 모차르트 음악을 재즈로 해석한 <모차르트 & 재즈>를 발매했는데, 국내에 그의 이름을 알린 음반이 됐다. 록음악도 그에겐 중요한 요소다. “재즈 음악가에게도 록 스피릿, 록의 정신이 있어야 해요. 록음악에서 샤우팅(록음악에서 포효하듯 소리를 내지르는 창법) 하듯, 저도 샤우팅 하듯 건반을 누르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의 음악엔 클래식과 록의 요소들도 두루 섞여 있다.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주부 뮤지션’, ‘아줌마 재즈 밴드’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그에게도 일종의 ‘경력 단절’ 기간이 있었다. 2019년 발매한 음반은 2013년 이후 무려 6년 만에 나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음악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에 진출했을 땐 임신 32주의 몸으로 투어에 나서야 했다. 만삭에 비행기 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배장은은 “가족과 동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며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다음달이면 새 음반을 발매한다. 오로지 피아노에 집중한 그의 첫 솔로 피아노 앨범이다. “많이 쳐내고 덜어냈어요. 누가 들어도 편한 음악이죠. 재즈가 아닐 수도 있겠죠. 그런데, 쉬운 음악 만들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더군요.” 그는 새 음반 이후에도 매달 1곡씩 싱글을 발표할 계획이다. 물론, 음반이 아닌 음원을 통해서다. 그는 “틈나는 대로 곡을 많이 썼고, 녹음도 많이 했다. 이제 쌓아놓은 녹음 보따리를 대방출할 것”이라며 웃었다. ‘배장은표 음악 대방출’이 시작되는 거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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