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사이드 갤러리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한애규 작가의 여인상 행렬. 실크로드 기행에서 영감을 받아 미지의 세계를 향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강인한 여인들을 형상화했다. 노형석 기자
한 무리의 여인들이 행렬을 이루며 떠난다. 행색이 가지각색이다. 달을 안거나 푸른 병을 들고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유목민의 장식 보검을 품에 지닌 이도 있으며 알몸이 되어 묵묵히 행렬을 지켜보며 따르는 이도 있다. 그들 곁엔 풍성한 몸체를 지닌 네발 달린 짐승과 수많은 가슴이 달린 수호신이 함께하는 모습도 보인다.
흙을 초벌구이 한 테라코타 조형물로 강인하면서도 속 깊은 여인상을 형상화해온 한애규(69) 도예가의 신작들은 실크로드의 문화유산 기행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다.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 지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설치작품 스타일의 신작들은 바람·구름처럼 둘러친 휘장 아래서 중국 고대 무덤의 도용 행렬도를 연상시키는 갖가지 여인 군상을 일렬로 배치한 얼개를 띤다. 지금 여성들 앞에 놓인 현실의 장벽을 넘어선 미지의 세계로 가는 여정을, 과거 실크로드 교류의 역사와 현실을 교직하는 상상력을 통해 드러냈다.
1층에는 구상적이던 그간의 도예 인물상과 완전히 다른 푸른빛의 물그림자 형상들이 등장했다. 베네치아 여행 중 만난 물 빛깔의 강렬한 인상과 기억들이 푸른 빛깔을 머금은 추상적인 덩어리들의 흩어짐과 모임으로 나타난 작업들이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작가의 작업 이력에 상당한 변화가 밀어닥칠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9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