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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몸과 대본이 접속” 100분간 16개 역할…멜로 꿈꾸는 ‘센캐’

등록 2022-07-25 08:00수정 2022-07-25 08:27

[1인극 도전 연기파 배우 김신록]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뇌사자 장기 이식 24시간 그려내
화제 드라마 '지옥' '방법'서 열연
19년차 배우, 2년전에야 전업 삼아
1인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16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 김신록.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1인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16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 김신록.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지옥행을 고지받은 두 아이의 어머니 박정자, 귀신 들린 딸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젊은 무당. 배우 김신록(41)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 티브이엔(tvN) 드라마 <방법>에서 연기한 배역은 죽음과 맞닥뜨린 인물들이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기 위해 파멸로 치닫는 운명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강하고 괴이쩍은 캐릭터를 신들린 듯 연기했다. 소름 돋게 하는 ‘메소드 연기’로 압도적 존재감을 보이며 ‘연기파 배우’ 목록의 앞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메시지가 강렬하고 초자연적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번에 그가 도전하는 1인 연극도 앞선 두 작품의 연장선에 있다. 26일 개막하는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청년의 장기가 타인에게 이식되기까지의 24시간을 다룬다. 서술자가 심장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독특한 설정의 이 연극에서 그는 100분 동안 혼자 무대를 책임지며 16가지 배역을 소화한다. 지난 20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김신록을 만났다.

1인 연극 &lt;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gt;에서 16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 김신록.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1인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16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 김신록.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먼저 도착한 그는 대본을 펼쳐놓고 있었다. 약속한 시각이 될 때까지 한참 동안 그가 ‘대본 연구’라고 부르는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그는 입을 오물거리며 나직이 대사를 읊거나 다양한 몸동작을 취했다. 눈동자가 풀어진 채 멍한 표정을 짓거나, 미간을 찌푸리며 가만히 먼 곳을 응시하기도 했다. 대본에 연필로 메모했다가 지우개로 지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대본의 행간과 이면에 스며 있는 수많은 뉘앙스와 디테일을 찾아내 자연스러운 연기로 녹여내기까지 이렇듯 몰입과 집중의 과정이 있었던 것. “대본을 외운다기보다 제가 대본이랑 만나는 과정이죠. 제 몸과 대본이 접속하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하하.” 그는 “대본을 볼 때 ‘왜 꼭 이 단어, 이 말이어야 하는지’에 천착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번 1인극은 대본이 A4용지 36장 분량에 이른다. ‘집중과 몰입의 배우’ 김신록은 ‘열린 집중’을 얘기했다. “예전엔 포커스하는 집중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열린 집중을 하려고 합니다. 밖으로 열리고 뻗어서 연결되는, 그래서 깨어 있는 감각이 열린 집중이죠.”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프랑스 소설가 멜리스 드 케랑갈이 2014년 펴낸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국내에서 2019년 연극으로 초연됐다. “심장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거기에 답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에요. 생명과 부딪히고 충돌하고 목격하는 짧은 찰나들만 나열할 수 있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생명의 전이가 일어난다고 얘기합니다.” 그가 보기에 이 연극은 ‘생명의 역동성과 전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개별을 조합하면 전체가 된다고 보는 게 구성적 방법론이죠.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건 부족해요. 저는 새로운 방법론의 키워드가 접속이라고 봅니다. 심장 이식이란 것도 사실은 어떤 접속의 이야기거든요.” 그에게 이 연극은 ‘접속의 방법론’을 탐색해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초연이 너무 잘됐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았어요. 이번에 함께하게 돼 영광이지만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lt;지옥&gt;에서 지옥행을 고지받은 두 아이의 어머니 박정자를 연기한 배우 김신록.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지옥행을 고지받은 두 아이의 어머니 박정자를 연기한 배우 김신록. 넷플릭스 제공

그는 <지옥>의 최대 수혜자로 불린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TV 부문) 여우조연상, 청룡시리즈어워즈(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을 탔다. 현직 영화감독들이 선정하는 디렉터스컷어워즈의 ‘새로운 여자배우상’도 받았다. “마흔을 넘어서면서 제 인생의 2막을 열어준 작품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힘들여 만들었는데 제가 대표로 얼굴을 들이밀고 상을 받은 셈이죠.” 그는 “<지옥>은 현장 세트가 강렬하게 구축돼 있어서 오히려 힘을 빼고 연기할 수 있었다. 현장의 덕을 좀 본 것 같다”며 웃었다. <지옥>의 감독 연상호가 드라마 <방법>의 각본을 썼으니, 두 작품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옥>으로 떴지만, 그 이전부터 연극판에서는 연기 잘하는 배우로 소문이 자자했다. 2004년 연극 <서바이벌 캘린더>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19년차 배우다. 서울대 지리학과에 다닐 때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이후 한양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2013년엔 미국 뉴욕의 극단 ‘시티 컴퍼니’가 운용했던 실기학교에서도 활동했다. 2019년까지는 무대보다 강단에 자주 섰으니 배우보다 ‘연기 교사’에 가까웠다. 전업 배우가 된 건 2020년에야 이르러서다. “드라마와 영화 등 매체 연기는 재현 연기의 정수죠. 연극은 연기의 형식 자체를 더 탐색할 수 있고요. 둘 다 흥미로워서 앞으로 병행하고 싶어요.” 그는 조만간 공개할 예정인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과 <스위트홈> 시즌2,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무빙>에도 출연한다.

1인 연극 &lt;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gt;에서 16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 김신록. 저스트엔터테인먼트 이승희 제공
1인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16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 김신록. 저스트엔터테인먼트 이승희 제공

그는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연극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사유하게 돼요. 다양한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판타지성에 세계관이 강렬한 작품을 좋아합니다.” 이른바 ‘센캐’(센 캐릭터)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배우지만 이제는 ‘결이 고운’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단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멜로드라마가 체질’이라고 말하곤 해요. 아직 발견되거나 읽히지 않은 제 에너지와 표정을 누군가 사용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그런데 멜로 배역이 들어와야 하는 거죠. 하하.”

배우 4명이 번갈아가며 펼치는 1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민새롬 연출과 배우 손상규, 윤나무는 초연부터 참여했다. 여기에 김신록과 김지현이 새로 합류한다. 9월4일까지 서울 장충동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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