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록의 느낌이 나는 ‘겨울여자’ 이화의 초상 <겨울여자> 사운드트랙음반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41) 영화음악의 산파, 재즈 록의 ‘메신저’
경아, 영자, 이화를 아시는지. 1970년대를 살았던 이들(특히 남자)이라면 그들을 연인처럼 추억하며 각각 안인숙, 염복순, 장미희라는 여배우들과 중첩시킬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 병리를 표상하는 문제적 여성상이자 청년의 자화상이 오버랩된 1970년대 영화의 분신들이다. 그들이 등장하는 영화 중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은 29회에 소개했으니 이번에는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와 <겨울여자>(1977)를 살펴보자. 당시 유행한 것처럼 이 작품들도 문제적 연재소설을 영화화해 흥행했는데, 특히 58만 관객을 동원한 <겨울여자>의 기록이 <장군의 아들>(1990)까지 20년 이상 깨지지 않았다는 것도 기억할 만한 일이다.
이런 초상들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이는 누구일까. 그 주인공 정성조를 지금 소개하려면 전직 한국방송 관현악단장, 혹은 현직 서울예대의 교수, 아니면 재즈 팬들에게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라는 직함이 더 접근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시절 그는 대표적인 영화음악가였으며, 1970년대 초반 김민기, 양희은, 한대수 등의 앨범 작업에서 색소폰, 플루트 연주자 및 편곡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관심은 재즈에 있었다. ‘고고클럽, 생음악살롱의 왕자’라 불린 ‘정성조와 메신저스’도 그러한 관심이 투영된 그룹이었다. 그(들)가 만든 <어제 내린 비>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의 영화음악은, 산업적으로 적확히 간파된 사운드트랙 음반이었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 현대적으로 일렉트릭한 사운드를 담은 것이었다.
음반 발매 직후 판금되기도 했던 <영자의 전성시대>에는 임희숙의 ‘너무 많아요’와 최병걸의 ‘이젠 가야지’가 있다면, 제목 그대로 겨울을 콘셉트로 한 음악들이 수록된 <겨울여자>에는 김세화의 ‘눈물로 쓴 편지’가 있다. 봉고나 무그, 색소폰이나 트럼펫이 일렉트릭 기타와 머무는 ‘메신저스’의 연주음악들과 더불어. 연상하기 어렵다면 음악팬들은 이 시절 유행하던 ‘시카고’나 ‘블러드 스웻 앤드 티어스’ 등의 음악을 생각하면 된다.
강근식(과 동방의 빛)이나 정성조(와 메신저스)의 영화음악 음반이 중요한 이유는, 이전 시기처럼 한두 곡의 주제가가 다른 곡들 사이에 관련없이 끼워진 편집 형태가 아닌, 주제가 이외에 배경음악용 연주음악까지 실은 ‘본격적인’ 사운드트랙 음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현악단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도하던 이전 영화음악과 달리, 그룹(밴드)이 주도하는 일렉트릭한 모던 사운드의 영화음악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1970년대 말 ‘청년영화’로 분류되는 새로운 영화들의 음악을 통해 영화음악계의 비중은 젊은 대중음악인들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영화계에 이장호, 김호선, 하길종 등이 있다면, 영화음악계에는 강근식과 동방의 빛, 정성조와 메신저스가 있던 셈이다.
한편 1970년대 후반 영화음악의 양상은 어땠을까. 어느 정도 장르별로 전문화되었다는 말로 일단 요약하기로 하자. 악단을 이끌며 작편곡가로 활약한 김희갑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주로 액션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수많은 영화음악을 맡은 것으로 유명한 정민섭이나 최창권은 <로버트 태권 브이> 등 만화영화 음악의 대표자가 되었는데, 정민섭은 로큰롤, 트위스트 등 스타일의 음악, 혹은 심우섭 감독과 짝을 이루어 코믹영화의 음악을 맡기도 했던 인물. 그밖에 <별들의 고향>은 시리즈로 계속 발표되었는데 속편(하길종 감독, 1978)에서는 송창식이, 3편(이경태 감독, 1981)에서는 1편의 강근식이 다시 영화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후 정성조의 영화음악가로서의 행보는 유학 후에도 독보적이었다. <깊고 푸른 밤>(배창호, 1985)을 비롯, 특히 정수라의 ‘난 너에게’라는 인기곡과 대종상 음악상을 안겨준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이 대표적. 또한 배창호 감독의 2기 영화들인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대표적인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이력을 이어갔다.
최지선/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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