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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화랑가, 봄바람 부는데 꽃은 언제 피려나

등록 2006-03-01 21:35

와 전경씨의 과슈 회화 <둥그런 꽃>
와 전경씨의 과슈 회화 <둥그런 꽃>
청년작가 기획전 풍성 불구 독창성 빈곤
리움, 16명 40여점 주제없이 장르만 나열
권오상 조각·최원준 사진전도 ‘진부’ 논란
2006년 봄을 맞는 한국 화랑가는 유례없는 젊은 작가 바람에 휩쓸리고 있다. 최근 국제 전시나 경매에서 두각을 드러낸 일부 청년 작가들은 각광받는 ‘미술 블루칩’(우량상품)으로 떠올랐다. 상당수 화랑주들은 유망주들의 전시장에 몰려 다니며 눈도장 찍기에 여념이 없다. 불과 1~2년전까지도 비엔날레 출품이나 대안공간 전시가 유일한 낙이었던 작가들에게 상전벽해와 같은 시장 환경의 변화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한국 현대미술의 저변은 이제 정말 넓어지고 있는 중일까.

최근 잇따라 뚜껑을 연 젊은 작가 근작 기획전들의 면면은 이런 물음에 대해 낙관은 금물이라고 답하는 듯하다. 올해 한국 청년미술의 흐름을 예시하는 시금석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되었던 상당수 전시들은 양적인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진부한 매너리즘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우리 현대미술의 특징인 냉소적 개념미술이나 편집증적인 일상 소재 탐구, 탈 근대적 키치, 엽기적인 상황 설정 따위의 틀을 진부하게 변주하거나 부풀리는 차원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트스펙트럼 전에 출품된 송상희씨의 광개토대왕 조형물 <신기루>
아트스펙트럼 전에 출품된 송상희씨의 광개토대왕 조형물 <신기루>
삼성미술관 리움의 유망작가 소개전인 ‘아트스펙트럼 2006’전(5월14일까지·02-2014-6901)은 이런 비판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청년작가 16명의 회화, 영상, 설치, 디자인, 사진 작업들을 특정 주제 없이 독립 전시공간을 주고 전시하는 얼개의 이 기획전은 장르간 경계 해체라는 서구 미술의 판박힌 이슈와 유행에 별다른 고민없이 ‘적응’해온 한국 미술판의 한계를 거울처럼 투영한다. 무엇보다도 40여점에 이르는 출품작들의 다기한 흐름에 걸맞는 담론이 보이지 않는다. 여성의 인분이 담긴 상자를 케익처럼 치장한 유학파 작가 김성환씨의 엽기 영상, 우리 시대의 남성패권적 역사관을 조롱하는 송상희씨의 비닐 껍데기 광개토왕비, 인간의 악마적이고 괴기스러운 심성을 숨겨놓은 전경씨의 앙징맞은 인물 드로잉 등 여러 작가들의 스펙트럼은 고급 학예회 같은 분위기 속에 고립되어 있을 뿐이다.

리움쪽은 기획자의 다양한 시각과 선정 작가들의 독창성 부각에 역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객·작가들의 담론,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는 수사적 표현 외에 전시 자체에서 기획자의 시선을 읽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출품작가가 이전보다 크게 늘어난 탓도 있지만, 작품들은 가상과 실제, 정체성, 예술의 경계넘기 같은 최근 현대미술의 화두를 색다르게 변주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화석화한 뼈조각 모형을 내놓은 이형구씨의 ‘아니마투스’나 건축모형의 내부를 감시카메라가 비춰주는 정정주씨의 설치작업들은 2~3년전부터 선보여온 작업개념을 스케일만 확대한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전시 개막일에 작가들을 줄세워 인사시키고 정연하게 관객 브리핑을 맡도록 한 모습도 개운치 않은 인상을 남겼다. 작가 오상길씨는 최근 네오룩 웹진에 기고한 관람후기에서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저런 서구미술의 전형적인 이슈들만 제시한 채 막연한 기대와 혼돈으로 전시가 버무려졌다”며 “리움이 밝힌 한국현대미술의 다양한 현상과 문제의식들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등을 구체적으로 밝혔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경주용 차를 청동조각으로 재현한 권오상씨의 근작 <더 스컬프처 2>
경주용 차를 청동조각으로 재현한 권오상씨의 근작 <더 스컬프처 2>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와 파격적인 전속작가 계약을 맺은 작가 권오상씨의 개인전(4월9일까지·041-551-5100)도 논쟁적인 화두를 던진다. 사진조각으로 시선을 모았던 작가는 청동으로 길이 4미터가 넘는 수톤짜리 청동제 경주용 차와 모터사이클을 직접 떠서 선보이고 있다. 로댕이 이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조각을 만들었을까란 화두 아래 작가의 원래 전공인 전통 조각가의 처지로 돌아가 수제차를 만든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하지만, 왜 전통조각의 부활을 화두로 내걸었는지, 산업사회의 대량 생산품을 조각품으로 재현한 역설이 서구 현대미술의 개념뒤집기 작업과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비디오·설치 등과 결합된 회화의 확장된 영역을 보여주는 스페이스씨의 ‘회화의 경계를 넘어’전과 지하철의 빈 작업공간, 사창가 공간을 포착한 두아트 갤러리의 최원준 사진전 등도 청년작가들의 색다른 감성을 대변하고 있지만 소재주의나 서구 트렌드와의 차별성 등에서 성찰의 여지를 남기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진부한 소재주의나 이미지 차용 등의 매너리즘적 징후는 연초에 팝아트적 요소를 한국화와 접목시킨 손동현전이나 전통화와 가톨릭 도상을 변주한 써니킴과 김은진씨의 2인전 등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현재 국내 청년작가들은 집요한 일상적 소재의 수공업적 묘사나 독특한 현실인식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체계적인 작가 투자를 시도하는 화랑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더욱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다양한 작업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게 미술계의 중론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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