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서울예술대 제자들은 그를 친구처럼 따른다. 정년 퇴임 기념 헌정 공연을 연습 중인 제자들이 1일 대학로 아룽구지 극장 무대에 모였다.
‘배운대로’ 만든 4편 3일부터 대학로서
서울예술대 극작과 학생들에게 지난달 27일 정년 퇴임한 오태석(66·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그저그런 ‘교수님’이 아니었다. 끼니를 걱정해 주는 어머니였고, 택시비를 챙겨주는 아버지였다. 무엇보다 연극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준 진정한 예술적 스승이었다. 제자들은 그의 정년 퇴임을 그냥 지나치기가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3~5일 사흘동안, 그의 체취가 짙게 배인 대학로 아룽구지 극장에서 퇴임 기념 헌정 공연을 하기로 했다. <청국장> <비포 앤 애프터> <플랫폼> <월피동 연인들> 등 4편의 극작과 졸업작품을 다듬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모두 스승 오태석이 밤을 새며 고쳐주고 지도해준 작품들이다. “퇴임에 맞춰 제자로서 뭔가를 해드리고 싶은데, 돈을 걷어서 선물하는 것보다는 선생님께 배운 재주로 ‘재롱잔치’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제작비는 졸업생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뒀구요.”(김한길·98학번) 제자들이 기억하는 오태석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학교에서 받는 그의 월급은 모두 학생들에게 쓸 정도였다. “학교에서 밤새 공연 준비하고 있는데, 새벽에 오셔서 돈을 던지고 막 도망가시는 거에요. 택시비나 하라구요. 그냥 주면 안 받을 것 같으니까 그러시는 거죠.”(임훈·00학번) “졸업하고 난 뒤에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부르셔서 사무실에 갔더니 밥 하고 반찬 다 꺼내주고는 자리를 피해주세요. 편하게 먹으라구요. 사무실에 밥통, 냉장고 다 있거든요. 집에 잘 안들어가시니까요.”(주혁준·98학번) 오태석은 서울예대 졸업생으로 이뤄진 극단(목화레퍼토리컴퍼니)과 학교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느라 집에 못 들어갈 때가 많았다. 낮에는 극단에서 연습을 하다가, 밤 11시쯤 학교로 가 새벽 3~4시까지 학생들의 작품을 봐 줬다. “한 명이 아닐 것”이라거나 “마약을 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체력과 열정이었다.
“처음엔 열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삶 자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교수님에게는 연극이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아닐까 생각해요.”(김한길) 극작가 겸 연출가로서 그는 학생들에게 멀티플레이어가 될 것을 요구했다. 극단 목화는 배우들이 직접 재료를 구해 소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극작과 졸업하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넓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남자는 목수, 여자는 도배 기능사가 될 수 있을 정도에요.”(박복안·04학번) 군림하지 않고 친구처럼 툭툭 장난을 거는 그의 곁에는 언제나 학생들이 붙어다녔다. 이런 친화력은 30년이 넘도록 극단을 끌어올 수 있는 원천이 됐다. 진정한 사제관계를 보기 힘든 요즘, 이들의 헌정 공연 소식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02)745-3966.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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