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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전설이 돌아왔다…27년 만에 뭉친 ‘서울재즈쿼텟’

등록 2022-10-18 14:40수정 2022-10-19 02:32

21일 재결성 앙코르 공연…첫 정규앨범도 제작
1990년대 중반 한국 재즈의 중흥을 이끈 서울재즈쿼텟 원년 멤버들이 27년 만에 다시 뭉쳐 활동을 재개했다. 왼쪽부터 이정식(색소폰), 장응규(베이스), 김희현(드럼), 양준호(피아노). 노상현 작가 제공
1990년대 중반 한국 재즈의 중흥을 이끈 서울재즈쿼텟 원년 멤버들이 27년 만에 다시 뭉쳐 활동을 재개했다. 왼쪽부터 이정식(색소폰), 장응규(베이스), 김희현(드럼), 양준호(피아노). 노상현 작가 제공
일회성 클럽 연주가 기적처럼 원로 재즈인들의 인생을 바꾸고 있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 재즈의 중흥을 이끈 ‘서울재즈쿼텟’ 원년 멤버 4명의 이야기다. 어느덧 60~70대가 되어 27년 만에 작은 재즈바에서 손을 맞춰본 단발성 연주가 두차례의 대규모 공연과 밴드 재결성, 음반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는 12월에도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 공연이 잡혔다.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을 ‘돌아온 재즈의 전설’들이 몸으로 입증하고 있다.

“공연장 열기가 너무 뜨거워 우리가 감동했어요. 그저 추억을 되새기는 차원이었는데 공연 끝나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예 밴드를 재결성해 상시 활동을 하고, 음반도 내기로 했어요.”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국내 대표적 재즈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61)은 살짝 설레는 표정이었다. 그는 “우리를 좋아하며 기다려주신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 놀랐다”며 “단순히 밴드 재결성 차원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뭔가 동기를 제공하고 희망을 불어넣는 활동을 해보자고 멤버 4명이 다짐했다”고 전했다.

계기는 지난 6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재즈바 ‘가우초’ 공연이었다. 1995년 서울재즈쿼텟 해산 이후 원년 멤버 4명이 한자리에서 연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소식은 골수 재즈팬들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했다.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아 지난 8월 1천석 규모의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다시 연주를 했다. 입소문을 탄 이날 공연은 전석 매진됐고, 힘이 난 연주자들도 혼을 쏟아부었다. 커튼콜에선 모든 관객이 뜨거운 기립 박수로 ‘노장들의 귀환’에 경의를 표했다. 이날 공연을 보지 못한 재즈팬들이 재공연을 요청했고, 오는 21일 800석 규모의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앙코르 공연을 한다.

서울재즈쿼텟 원년 멤버 4명이 지난 8월 1천석 규모의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연주하는 모습. 이들은 오는 21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노상현 작가 제공
서울재즈쿼텟 원년 멤버 4명이 지난 8월 1천석 규모의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연주하는 모습. 이들은 오는 21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노상현 작가 제공
자신감을 되찾은 멤버들은 밴드 재결성에 그치지 않았다. 마포아트센터 공연 실황을 담은 엘피(LP) 음반을 제작 중이다. 정규 앨범도 내기로 하고 곡을 새로 쓰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당시 최고 기량의 연주자들이 모인 재즈계의 ‘슈퍼밴드’였지만 음반은 남기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첫번째 정규 앨범을 내게 된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건 아니다. 이정식과 피아니스트 양준호(59)는 계속 재즈를 연주해왔지만 다른 2명은 재즈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멤버로 활동하던 드러머 김희현(70)은 1996년부터 케이비에스(KBS) 관현악단에 몸담았다. <재즈 베이스 교본>의 저자 장응규(69) 역시 같은 악단에서 오래 일했다. ‘드럼의 신’으로 통했던 김희현도, ‘한국 재즈 베이스의 대부’로 일컬어진 장응규도 가요 연주에 전념하다 보니 재즈 감성이 잘 돌아오지 않았다. “김희현, 장응규 두 형님 모두 ‘재즈를 떠난 지가 언제인데 잘되겠느냐’며 처음엔 자신 없어 하셨어요. 연습 초반엔 자꾸 ‘가요 필’이 나면서 삐거덕거리기도 했고요. 두달 넘게 연습하고 호흡을 맞췄더니 점차 예전의 실력이 돌아오더군요.”

오히려 젊은 시절엔 버거웠던 곡들까지 척척 연주해낼 수 있게 되었다. 마포아트센터에서 이들이 연주한 미국 색소폰 연주자 마이클 브레커의 ‘웁스’(Oops)는 리듬이 복잡하고 박자가 까다로워 재즈 밴드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난곡으로 꼽힌다. “예전에 연주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어려워 포기했던 곡인데, 이번엔 성공했어요. 그사이 연륜이 쌓인 거겠지요.” 이번 앙코르 공연에서도 이 곡을 다시 연주한다. 이정식은 “우리 같은 세대가 이런 곡들을 이렇게 연주하고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어려운 여건의 국내 재즈계에 우리 활동이 희미하게나마 등불 같은 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 그가 색소폰 연주를 맡은 가요 음반이 1천장을 웃돈다. 노상현 작가 제공
국내 대표적인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 그가 색소폰 연주를 맡은 가요 음반이 1천장을 웃돈다. 노상현 작가 제공
그는 재즈팬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서울재즈쿼텟에 향수를 지닌 분들이 우리 활동을 보고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우리 자신부터 나이에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겠지요?”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재즈팬들의 열정에 다시 불을 지피고 싶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지난 8월 마포아트센터 공연에서 지켜본 노장들의 솜씨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김희현의 드럼은 여전히 단단했고, 장응규의 베이스도 변함없이 묵직했다. 양준호의 세련된 리듬 터치는 무뎌지지 않았고, 이정식은 테너와 소프라노 색소폰을 번갈아가며 신들린 듯 불어 재꼈다.

이정식은 국내 재즈계에서 일찍부터 두각을 보였다. 1980년대 이후 국내에서 발매된 가요 음반에 들어간 색소폰 연주의 90% 정도가 그의 연주다. 음반으로 치면 1천장을 넘는다고 했다. “재즈의 본질이야말로 자유와 저항의 정신이죠. 귀에 착착 감기는 말랑말랑한 소리에만 집착하면 재즈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요. 그러면 오래가지 못하게 됩니다.” 전남 함평농고 3학년에 다니다 색소폰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상경’해 오늘에 이른 이정식은 후배 재즈 뮤지션들에게 ‘자유와 저항’을 설파하고 있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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