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풍년’이다. 실연으로 듣기 어려웠던 오스트리아 음악가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대작 교향곡들이 속속 연주되고 있다. 독특한 음색에 규모가 장대한 브루크너 교향곡은 구조가 쉽게 이해되지 않아 대중적 인기는 적은 편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국내외 오케스트라들의 연주 목록에 오르는 빈도가 부쩍 많아졌다. 2000년대 초반 ‘말러 붐’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찾는 관객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오는 26, 27일 내한하는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는 그의 교향곡 5번을 골랐다. 국외 오케스트라가 내한해 이 곡을 연주하는 건 처음이다. 80여분 길이의 이 대곡은 브루크너 9개 교향곡 가운데 가장 드물게 연주되었다. 처음 내한하는 이 오스트리아 악단은 브루크너 이름을 앞에 붙일 정도로 그의 음악에 특장점을 지닌 오케스트라. 린츠는 브루크너가 태어나고 묻힌 도시이기도 하다.
지휘자 마르쿠스 포슈너(51)는 지난 19일 온라인 영상 인터뷰에서 “브루크너 5번 교향곡은 베토벤 교향곡 7번의 리듬과 여러 음악적 요소를 구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4번과 7번, 8번, 9번을 자주 연주하지만 5번도 아주 특별하다. 기쁨과 파워, 테크닉이 넘치는 곡으로 브루크너가 작곡할 당시의 긍정적 사고와 열정이 묻어 있는 걸작”이라고 말했다. 이어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브루크너 교향곡은 없다.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 들어야 한다”면서도 “교향곡 듣는 데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도 했다. 26일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다음날엔 롯데콘서트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7번과 피아노협주곡 1번을 각각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협연자로 나선다.
브루크너 교향곡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저명한 지휘자 브루노 발터(1876~1962)는 ‘신을 찾는 음악’이라고 평했다. 음악평론가 최은규는 저서 <교향곡>에서 “특유의 우주적인 소리는 종교적 신비와 신을 향한 경외감으로 인도한다”며 “전무후무한 장엄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고 썼다.
‘브루크너 교향곡 풍년’은 서울시향과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이 주도하고 있다. 서울시향은 지난해 1번에 이어 올해엔 바실리 페트렌코의 지휘로 2번을, 유카페카 사라스테 지휘로 3번을 연주했다. 케이비에스교향악단도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로 4번, 코르넬리우스 마이스터 지휘로 7번을 들려줬다. 7번은 최근 런던 심포니를 이끌고 내한한 사이먼 래틀도 연주했다. 6번은 스페인 출신 후안호 메나가 이끄는 고잉홈프로젝트 오케스트라가, 9번은 이병욱이 지휘하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이 연주했다. 잦은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는 클래식 저변 확대와 레퍼토리 확장이란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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