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마카오 예술박물관에서 열린 중견작가 이용덕씨의 개인전 개막식. 마카오 행정자치부 부주석 등 현지 당국자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아래 작은 사진은 크리스티 홍콩 지사에서 만난 스페셜리스트 에릭 창. 아시아 현대미술을 총괄하는 그는 연초 방한해 강연을 하기도 했다.
국내 화랑들 아시아 경매시장 진출 활발…한국 현대미술에 관심 고조
미술판도 사극 <대장금>처럼 ‘한류 대박’이 가능할까. <대장금> 열풍에 휩싸인 자유무역항 홍콩으로 이런 꿈을 품은 화랑업자들이 달려가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국제 경매사 크리스티 홍콩지사의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에 국내 젊은 작가들 작품이 예상 밖의 낙찰가를 잇달아 올린 것이 신호탄. 미술품 경매 활성화로 국내 시장에서 설 자리가 좁아진 중견 화랑들은 거꾸로 홍콩의 국제 경매에서 젊은 작품들에 기대어 숨통을 찾으려는 눈치다. 올봄 크리스티에 30여점 출품
“검증 없는 도전 위험” 경계도 지난 3일 홍콩섬 중심부 센트럴가의 크리스티지사를 찾았다. 홍콩상하이 은행 부근의 알렉산드라 하우스 22층 사무실에서는 스페셜리스트(작품 전문가)들이 각국 컬렉터들과 화랑주들의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5월28~30일 열리는 지사 창립 20돌 경매를 앞두고 작품 선정과 홍보 작업이 한창이다. 거래 영역은 도자기, 회화 등의 중국 고미술과 아시아 현대미술, 보석 등 10가지로 담당자가 따로 있다. 아시아 현대미술을 맡은 에릭 창은 시장조사, 구매상담을 위해 아시아 각국 도시들로 숱하게 출장을 다닌다고 한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억 홍콩달러(미화 2억6700만 달러)를 넘어섰다. 2004년 처음 10억 달러선을 넘은 뒤 한해만에 다시 10억 달러 이상 뛰었다. 매년 매출신장률 17%의 고속 성장을 유지한 데는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현대미술의 관심도 상승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홍보 담당인 빅토리아 창은 “중국 본토 시장과 달리 세금 부담이 없고, 동서양 미술품을 구매하는 데다 해외 컬렉터와의 폭넓은 정보망, 객관적인 가격 평가 시스템 등이 강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11월27~30일 열린 가을 경매에서는 10억 홍콩달러(미화 1억3900만 달러)의 매출액을 올려 아시아 단일 경매 신기록을 세웠고, 아시아 현대 미술 분야도 7억8200만 홍콩달러(미화 1억 달러)를 올려 역시 최고 기록을 깨뜨렸다. 블루칩 상품은 100~200%의 가격 급등세를 기록한 유에민진, 얀 페이밍 등의 중국 현대 작가들. 한국작가들은 2004년 경매에서 배준성, 최소영씨 등 6명의 작품 8점이 낙찰됐으며 지난해 봄, 가을 경매에서도 17, 25점이 각각 나와 대부분 팔렸다. 에릭 창은 “동양 공통의 메시지나 풍경을 오직 한국만의 재료 선택이나 표현으로 나타낸다는 점”을 우리 작가들의 강점으로 꼽으며 “한국에 가면 인사동의 60~70년대 잡동사니 상점도 뒤질 정도로 정체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홍콩 경매시장 진출은 최근 몇몇 화랑들이 지점을 설치한 중국 베이징처럼 중국 현대미술의 세계적 지명도를 업고 현지 시장을 발판 삼아 국제시장에 얼굴을 알리려는 전략이다. 특히 올해 크리스티 봄 경매에 역대 최대인 10여개 화랑의 작품 30여점이 나가는 데다, 3월31일에는 맞수인 소더비쪽이 미국 뉴욕에서 한·중·일 3국 현대미술작가 경매를 열 예정이어서 성과가 주목된다. 현지 전시를 통한 작가 알리기도 시도하고 있다. 3일 홍콩에 이웃한 마카오의 마카오예술박물관에서는 중견작가 이용덕씨의 작품전(5월28일까지)이 개막됐다. 음각으로 파들어간 인간군상 조각을 해온 그의 전시는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작가와 후원 화랑쪽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찜찜한 구석도 있다. 크리스티 홍콩쪽은 최근 5군데 이상의 국내 화랑이 작품을 들고 찾아와 출품을 부탁해왔다고 밝혔다. 보통 경매 출품은 팔릴 작품들을 경매사가 사전에 찍어 작가나 화랑에 제안하는 절차를 밟게 마련인데, 화랑이 먼저 출품을 사정하는 건 “체면을 구기는 창피”라는 게 국내 미술계의 지적이다. 게다가 작가에 대한 시장 검증없이 덜컥 출품부터 했다가 값이 떨어지거나 유찰되면 작가 생명을 단축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화랑가에서는 ㅈ, ㅇ씨 등 중견 작가들이 국제 경매에서 초반부터 외면당했다는 후문이 돌고 있고, 홍콩 경매에 낀 젊은 작가들도 절반 가까이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홍콩·마카오/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