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셋집보다 비싼 돈 주고…하얀 판때기 산 친구 둘러싼
남자들의 아웅다웅 우정…송승환 트리오냐, 김석훈 트리오냐
남자들의 아웅다웅 우정…송승환 트리오냐, 김석훈 트리오냐
당신의 친구가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의 전세값보다 비싼 그림을 샀다면, 그런데 그 그림이라는 것이, 하얀 바탕에 하얀 색 줄이 쳐 있는 하얀 색 ‘판때기’라면, 당신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더구나 지금까지 당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던 그 친구가 예술을 모른다며 당신을 무시한다면? 연극 <아트>는 ‘하얀 색 줄이 쳐 있는 하얀 색 그림’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갈등을 맺고 푸는 매개체로서의 그림. 단순할 것 같은 갈등 구조는 화려한 말의 성찬과 절묘한 심리묘사로 풍성하다. 영화나 티브이 드라마가 범접할 수 없는 연극만의 경지다. 상업연극이라는 눈총에도 불구하고 연극 <아트>가 소중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작품은 남자들의 우정에 대한 상찬을 바탕에 깔고, ‘예술은 사기’라는 명제에 고전적 해석을 시도한다. 청담동 피부과 의사인 수현(송승환·오용)은 유명 화가 ‘앙트로와’의 그림을 1억8천만원에 사고, 지방대 공대 교수인 규태(김일우·김석훈)는 이를 못마땅해 한다. 매사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자기 의견을 굽히고 사는 문방구 사장 덕수(정원중·이성민)는 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수현은 ‘모던 아트’에 관심도 없고 식견도 없으면서 제멋대로 작품을 깎아내리는 규태를 경멸하고, 규태는 돈 좀 번다고 잘난 체하는 수현을 미워한다. 끝없는 말싸움의 끝에 가서야 둘이 왜 그렇게 아옹다옹 다퉜는지 알 수 있다.
월·수·금 공연을 맡은 이성민, 김석훈, 오용(왼쪽부터)
원작자 야스미나 레자(프랑스)와 연출가 황재헌은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시종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비결은 세밀한 심리묘사에 있다. 이를테면 규태는 덕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현이는 자기 그림을 우습게 생각해서 웃은 게 아니야. 둘이 같은 이유로 웃은 게 아니라고. 넌 그림 보고 웃었지? 그 놈은 네 비위 맞추려고 일부러 먼저 웃은 거야. 그 하얀 그림이 니네 전세값보다 비싸다니까. 수현이는 그걸 샀다고. 그 새끼는 그게 미안해서 웃은 거야. 순수하게 웃는 척하면서, 네 기분 맞추려고 작전부린 거라고. 으이그, 이 병신.”
객석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엔 옅은 미소였다가, 이내 박장대소가 터지며 공감이라는 화학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상황 자체가 웃기기 때문에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 더블 캐스팅 중 연장자팀(화·목·토 공연)인 송승환, 김일우, 정원중 세 배우는 찰떡궁합 콤비로 아슬아슬한 우정 게임을 펼친다. 냉소적인 어투의 김일우, 실제로도 사업에 성공한 송승환, 왠지 사람 좋아보일 것 같은 정원중이라는 캐스팅은 절묘하게 적중했다. 티브이 드라마 <신입사원>으로 두각을 나타낸 김일우는 풍부한 표정 연기와 정확한 대사,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송승환의 얄미울 정도로 오밀조밀한 말투, 정원중의 능청스런 코믹 연기도 일품이다. <아트>는 지난 2004년부터 해마다 출연진을 바꿔가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정보석, 권해효, 오달수, 박광정 등 많은 스타들이 거쳐갔다. 이 작품의 묘미는 배우가 바뀌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된다는 점이다. “연극 본 지가 얼마나 됐더라” 하고 손을 꼽아보는 분들에게 연극 <아트>를 권하고 싶다. 4월30일까지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02)764-8760.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악어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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