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중 작가 위한 회고전…‘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갤러리 현대·두가헌 4월2일까지
‘기타치는 승려 고은’·누드자화 드로잉 등
미공개작 220여점 첫 선 국9내 화단의 대표적 여성 화가인 천경자(82)씨는 그림과 삶이 정확히 일치하는 보기 드문 미술장인이다. 이글거리는 눈과 잔혹할 정도로 강렬한 색조가 아롱진 그의 채색화들은 평생의 화력을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애욕과 환희, 두려움, 고독 속에 섭렵해온 자신의 인생 풍경이기도 하다. 그렇게 싫어하는 뱀떼들의 징그러운 무더기를 어쩔 수 없이 그렸다는 대표작 <생태>(1952)는 작가에게 붓질이 숙명적인 신내림과도 같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녀의 운명처럼 그림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예인의 감수성과 끼를 절박하게 채워야하는 그릇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예술을 하는 사람’(미술사가 최순우)이었던 천씨는 지금 기력을 잃고 미국 뉴욕의 딸 집에서 투병하고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와 두가헌에 마련된 천씨의 회고전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는 절박한 욕망으로 그림을 그렸던 이 여성 화인의 80평생을 주요 대표작과 풋풋한 드로잉, 살 냄새 나는 소지품 등을 통해 되돌아보는 자리다. 특히 50∼60년대 초기 채색화 6점과 70~90년대 수채화·펜화·연필화 180점, 미완성작 40여점이 처음 공개되어 전성기 대표작 30여점과 함께 천씨의 그림 인생을 새롭게 되살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전시장은 이제 작품활동을 접고 병석에 누은 그를 마치 추모하는 듯한 ‘추억록’ 같은 분위기로 장식되어 있다. 50년대작 <가족의 행복>부터 60년대 대표작 <가족> 등의 파스텔톤 그림, 70년대 끓어오르는 정염으로 그의 독창적인 여인화와 꽃그림이 정립되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공개작 가운데는 시인 고은의 승려시절 풍류객 면모를 보여주는 60년대작 <기타치는 시인>과 드로잉 등도 보인다.
1층에는 자화 누드라고 할 수 있는 육감적이면서도 왠지 슬퍼보이는 자신의 누드상 드로잉들이 공개되어 눈맛을 자아낸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감수성을 닦은 흔적인 기행화, 60년대 대표작인 파스텔톤의 <가족>, 둘째딸의 누드를 소재로 그린 대표작 <왜 울어>, 72년작 <꽃무리>, 야생의 생태를 담은 대표작 <내 생애 아름다운 49페이지> 등의 여러 수작들을 볼 수 있다. 명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인상적인 흑백 드로잉, 월남전 참전 병사를 꽃과 어울린 환상적 터치로 묘사한 드로잉 등도 나와 있다. 또 작품 사이 곳곳에 그가 세계 여행 때 구입했던 여러 의상이나 다양한 인형, 엽서 등을 늘어놓아 그의 체취를 맡는 듯하다. 마릴린 먼로의 가방, 프리다 엽서, 우피치 미술관의 여성 반신상 엽서, 비즈 달린 검은 상의, 인도 코브라 악사들과 같이 찍은 사진, 의자, 한복 저고리, 항아리, 숱한 꽃 패널들이 보인다.
이번 전시는 천씨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자택에 있던 그의 미공개 드로잉을 미술관 등에 매각하고 싶다는 큰 딸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와 세차례의 단독전을 개최한 바 있는 갤러리 현대는 작품 선정은 물론 전시장 구성 등에 세심한 신경을 썼다. 천씨의 작품은 경매시장에서 높은 값을 받는 우량상품인만큼 그의 작품 주가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 전시의 이면에는 대형 경매사의 주주인 이 화랑 박명자 대표의 노련한 계산 또한 내비친다. 전시품은 일반인들이 살 수 없다. 대신 갤러리 현대쪽은 동산방 등 다른 화랑 4곳과 함께 천씨의 판화작품 14종을 찍어 일반에 판매하기로 했다. 4월2일까지. (02)2287-3515, 3517
‘기타치는 승려 고은’·누드자화 드로잉 등
미공개작 220여점 첫 선 국9내 화단의 대표적 여성 화가인 천경자(82)씨는 그림과 삶이 정확히 일치하는 보기 드문 미술장인이다. 이글거리는 눈과 잔혹할 정도로 강렬한 색조가 아롱진 그의 채색화들은 평생의 화력을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애욕과 환희, 두려움, 고독 속에 섭렵해온 자신의 인생 풍경이기도 하다. 그렇게 싫어하는 뱀떼들의 징그러운 무더기를 어쩔 수 없이 그렸다는 대표작 <생태>(1952)는 작가에게 붓질이 숙명적인 신내림과도 같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녀의 운명처럼 그림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예인의 감수성과 끼를 절박하게 채워야하는 그릇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예술을 하는 사람’(미술사가 최순우)이었던 천씨는 지금 기력을 잃고 미국 뉴욕의 딸 집에서 투병하고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와 두가헌에 마련된 천씨의 회고전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는 절박한 욕망으로 그림을 그렸던 이 여성 화인의 80평생을 주요 대표작과 풋풋한 드로잉, 살 냄새 나는 소지품 등을 통해 되돌아보는 자리다. 특히 50∼60년대 초기 채색화 6점과 70~90년대 수채화·펜화·연필화 180점, 미완성작 40여점이 처음 공개되어 전성기 대표작 30여점과 함께 천씨의 그림 인생을 새롭게 되살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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