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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바흐가 지적이라면, 헨델은 멜로딕하죠”

등록 2023-02-05 11:41수정 2023-02-06 02:49

조성진이 여섯번째 정규 앨범 발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바로크 음악가 헨델의 곡들을 담은 음반 <헨델 프로젝트>를 발매했다. 조성진의 바로크 음반은 처음이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바로크 음악가 헨델의 곡들을 담은 음반 <헨델 프로젝트>를 발매했다. 조성진의 바로크 음반은 처음이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이번 헨델 음반을 준비할 때, 태어나서 가장 많은 연습을 했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이 이번엔 작곡가 헨델을 파고들었다.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그의 여섯번째 정규 앨범이 <헨델 프로젝트>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조성진은 4일 온라인 화상 간담회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서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조성진의 바로크 음반은 처음이다.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중에서 2번, 5번, 8번과 사라반드, 미뉴에트 등을 담았다.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 상반기엔 거의 집에서 혼자 보내야 했다. “악보를 많이 사서 쳐보곤 했는데 그때 헨델의 음악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동시대 바로크 음악가 중에서도 바흐가 아니라 헨델을 선택한 이유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바흐를 녹음하거나 연주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요.” 바흐와 헨델의 음악은 조금 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바흐가 좀 더 지적이고 복잡하다면 헨델의 건반곡은 좀 더 멜로딕한 면이 있어요. 헨델이 조금 접하기 쉬웠는데, 하면서 헨델도 만만치 않구나 생각했어요.” 수록한 곡들을 고른 기준은 “마음에 와 닿는 곡들이라서”였다고 한다. “음악이 왜 끌리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왜 좋은지를 설명하긴 어려워요. 그냥 좋아하는 곡들을 골랐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여섯번째 정규 앨범 &lt;헨델 프로젝트&gt; 표지. 유니버설 뮤직 제공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여섯번째 정규 앨범 <헨델 프로젝트> 표지. 유니버설 뮤직 제공

그는 바로크 음악을 ‘대단하고 어려운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바로크 음악은 이해하거나, 손에 붙거나, 자신감이 붙는 데 다른 장르 음악보다 더 오래 걸리거든요.” 이번 바로크 음반을 내기 위해 하프시코드 연주자에게 특별히 레슨을 받고 조언도 구했다. “바로크 음악은 해석의 폭이 넓어요. 악보에 지시 사항도 훨씬 적거든요. 이번에 저는 그냥 제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쳤어요.” 그는 “현대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는 전혀 다른 악기인데 일단 표현력은 피아노가 더 용이하다”고 했다. 그가 연주하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나 베토벤 소나타 전집은 언제 들을 수 있을까. “40살이 되지 전에는 하고 싶어요. 하겠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는 “앞으로는 ‘몇 살 때는 뭘 하겠다’라는 식의 발언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바쁘다. 2015년 쇼팽 국제콩쿠르 우승 이후 수시로 연주 여행을 떠난다. 전세계에서 앞다퉈 그를 찾는다. 그 와중에 새로운 곡도 연습해야 한다. “연주 투어를 하면서 새 곡을 익혀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고민이에요. 집에 오면 새 곡들을 연습하고 그런 생활이 재미있고 좋아요. 하루가 30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연습을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바쁜 생활이 좋다고 했다. “바쁜 게 좋아요. 뭔가 살아 있고, 쓸모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동기부여도 되고요.”

그에게도 더 큰 성공을 위해 분투해야 할 목표가 있을까. “옛날엔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협연, 뉴욕 카네기홀 연주 이런 거 말이죠. 이제 그런 건 많이 없어졌어요. 해봐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꼭 유명하지 않아도 마음에 맞는 지휘자나 연주자와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음악가와 커리어는 분리해서 봐야 해요. 좋은 음악인인데 좋은 커리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많으니까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뭔가 살아 있고 쓸모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바쁜 게 좋다”고 말했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뭔가 살아 있고 쓸모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바쁜 게 좋다”고 말했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조성진은 ‘집돌이’였다. “투어 마치고 집에 와서 쉴 때가 제일 행복해요. 새 악보 배우면서 연습도 하고요.” 최근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는 지난해 뉴욕 카네기홀에서 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꼽았다. 푸틴과 가까운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의 협연이 취소되면서 갑자기 ‘대타’로 투입된 조성진은 3년 동안 연주한 적이 없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공연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요. 긴장을 많이 해서 그저 무사히 마쳤다는 느낌만 들었지요. 그때 지휘자 야닉 네제 세갱이랑 포옹을 했는데, 연주보다 허그했을 때가 더 감동적이었어요.” 그는 이전에 “제 연주회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한 도시에 1~2천명 정도 있으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 그는 “이런 생각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에겐 이런 게 성공이요, 행복인 모양이다.

그의 음악 소비 스타일은 독특했다. 주로 집에서 음반으로 듣는다. 다른 영역의 음악은 거의 듣지 않는데, 그 이유가 “클래식 음악 들을 시간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비행기 안에서도 음악은 듣지 않고 주로 드라마나 영화 보는 걸 즐긴다고 했다. 최근 재미있게 본 드라마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를 꼽았다. 스포티파이 등 음원을 듣는 스트리밍 계정도 없다. 이제 스물아홉, 30대가 목전에 다가왔다. “좋아하는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란 노래 때문인지 30에 대한 이미지가 저한테는 무겁게 다가왔는데, 막상 돼보니까 몇 달 전이랑 비슷하더라고요.”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도 콩쿠르에 대한 생각이 복잡한 듯했다. “왜 한국인들이 콩쿠르에 많이 나가느냐고 외국 기자들이 많이 묻는데, 제가 콩쿠르 자체는 싫어하지만, 그것밖에 기회가 없거든요. 우승하면 인지도가 쌓이고 연주 기회도 많이 생겨서 매니지먼트 계약도 하게 되는 가장 쉬운 길이니까요.” 한국 젊은 연주자들이 주요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한층 주목받고 있다는 걸 국외에서도 실감하게 된다고 했다.

“한 1년 전부터 피부로 느껴요. 외국에서 인터뷰할 때마다 한국인들이 (콩쿠르에서) 너무 잘하는데 비결이 뭐냐고 묻는데 ‘원래부터 잘한다’고 답하곤 해요. 저는 유럽의 음악가들보다 뛰어난 한국인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달변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질문에 막힘 없이 비교적 진솔하게 답했다.

영향력을 지닌 음악인으로서 국내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역할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하고 싶은 역할은 없다. 그냥 역할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관객들에게 좋은 음악, 멋있고 위대한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일단 역할 이런 것엔 별로 생각이 없어요.”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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