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수난곡’ 공연에 나선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연주자들.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제공
“떨려요. 저도 마태수난곡 연주엔 참여해봤지만 지휘는 처음이거든요.” 국내 바로크 음악 분야의 독보적인 지휘자인 김선아(53)에게도 이 곡은 첫 지휘라는 게 놀랍다. 바흐가 살던 당시의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마태수난곡>을 국내에서 만나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18세기 관현악기 모두를 국내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최초 공연이다. 오는 3월2일 김선아 지휘자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2시간40분에 이르는 이 대곡을 원곡 그대로 공연하는 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 18세기 바로크 목관악기를 다루는 국내 연주자를 찾기 힘들어서다. 이번 공연에선 오보에 다모레, 오보에 다 카차, 트라베르소(바로크 플루트) 등의 옛 관악기 모두를 국내 연주자들이 담당한다. 건반악기인 쳄발로는 네덜란드 연주자가 담당한다.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으로 제작하는 바로크시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베이스도 가세한다. 쳄발로와 오르간까지 모두 32대의 바로크 악기가 섬세하고 고졸한 소리를 들려준다. 김선아 지휘자는 “유럽에서 마태수난곡은 대부분 시대악기로 연주하는데, 국내에서도 이게 가능해졌다”며 “바로크 연주자들의 저변이 넓어지고 수준이 높아진 덕분”이라고 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인류 유산’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원래 예배음악으로 만들어졌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감동과 울림을 줘 여러 세대를 관통하며 사랑받아왔다. 바흐가 모든 기악 지식과 성악 기법을 녹여내 만든 필생의 역작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장대한 독창곡과 합창곡을 독일어로 공연하는데, 한글 자막으로 가사를 이해할 수 있다. <마태수난곡>은 이중합창 구조여서 지휘자 양쪽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각각 자리한다. 현장에선 서라운드 스피커처럼 입체적인 음향을 들을 수 있다. 김선아 지휘자와 호흡을 맞춰온 카운터테너 정민호와 정장권, 테너 홍민섭, 바리톤 안대현, 소프라노 윤지·임소정이 독창자로 나선다.
‘마태수난곡’ 공연에 나서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연주자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제공
“거트현을 쓰는 옛 현악기는 음량이 조금 작지만 훨씬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악기 본연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어요. 관악기도 지금과 다른 소리가 나요.” 김선아 지휘자가 전하는 시대악기 연주의 장점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선 조금 빠르고 선동적으로 갈 것”이라고 말해, 처지지 않고 역동적인 연주가 될 것을 예고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고전시대 작품도 당시 악기로 연주하고 싶어요.” 그가 은퇴 이전의 목표로 삼은 사명이자 소망이다.
바로크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2007년)과 시대악기 연주단체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2017년)을 그가 만들었다. <요한수난곡> 연주(2018년)에 이은 <마태수난곡> 연주로 국내 시대악기 연주의 새 지평을 열게 됐다. 부천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인 그는 연세대와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음대에서 오르간과 지휘를 공부했다.
<마태수난곡>엔 사연도 많다. 바흐가 라이프치히 성토마스교회 칸토르(합창대장·음악감독)로 재직하던 1727년 초연하는 등 몇차례 공연했지만 바흐 사후엔 잊힌 곡이 되고 만다. 워낙 방대한 곡이라 바흐 생전에도 라이프치히 이외의 도시에선 연주된 적이 없다. 100년 뒤인 1829년 스무살의 멘델스존이 베를린에서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이 곡을 화려하게 ‘부활’시킨다. 공연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바흐의 다른 작품들까지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2007)을 보면, 멘델스존이 정육점에서 고기 포장지로 쓰인 마태수난곡 악보를 발견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오지만, 특별한 근거는 없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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