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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아이돌 가수에서 벽사춤 전승자로…정용진의 ‘청아한’ 춤사위

등록 2023-03-03 07:00수정 2023-03-03 10:56

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서 ‘춤의 원류’ 공연
승무를 추는 정용진. 벽사춤 보존회 제공
승무를 추는 정용진. 벽사춤 보존회 제공

춤판에 내건 제목이 ‘청아한 기록’이다. ‘벽사(碧史)춤’을 글자 그대로 풀어내니 ‘푸른 역사’, 곧 청아한 기록이 된 거다. 벽사춤은 특정 장르의 춤이 아니라 승무와 학춤, 살풀이와 태평무 등을 아우르는 춤의 한 유파다. 오는 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춤의 원류’ 공연에선 여기에 선비춤과 광대무, 사랑가와 산조춤을 더해 모두 7종류의 춤사위를 펼쳐낸다. “절제와 깊이가 있어야 해요. 감정을 함축해 풍미 있게 추는 춤이죠.” 벽사춤의 명맥을 잇는 춤꾼 정용진(46)은 “사람들을 흥겹고 즐겁게 하려고 추는 춤이 아니라 신과 대화하듯 수련하는 자세로 추는 춤이 벽사춤”이라고 했다.

‘벽사류 춤’은 한국의 춤을 집대성한 ‘한국 근대 춤의 아버지’ 한성준(1875~1941)으로부터 발원한다. 서울, 경기, 충청 중심으로 발전했다.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1920~1989)은 “삼천 뼈마디를 다 움직여 춤추라”는 조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춤을 발전시켰다. 승무와 학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두 수제자 정재만(1948~2014)과 이애주(1947~2021)를 빼어난 춤꾼으로 키워냈다. 한영숙에게서 ‘벽사’란 호를 물려받은 정재만은 ‘벽사춤 아카데미’를 설립해 벽사춤 전파에 힘썼다.

벽사춤은 승무와 학춤, 살풀이와 태평무 등을 아우르는 춤의 유파다. 조선춤을 집대성한 한성준에서 발원해 한영숙과 정재만을 거쳐 정용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벽사춤 보존회 제공
벽사춤은 승무와 학춤, 살풀이와 태평무 등을 아우르는 춤의 유파다. 조선춤을 집대성한 한성준에서 발원해 한영숙과 정재만을 거쳐 정용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벽사춤 보존회 제공

벽사춤은 정재만의 아들 정용진으로 이어진다. 1996년 지금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벽사춤 내림춤판’이 벌어졌다. “굿내림처럼 무슨 특별한 의식이나 제례를 치른 건 아니었고요. 아버지와 제가 함께 공연하며 춤판을 벌였죠.” 아버지가 아들에게 춤의 핵심을 전수하며 벽사류 춤의 후계자임을 공식 선포하는 춤판이었다. 당시 영상 자료가 ‘정재만-정용진의 춤: 내림춤판’이란 제목으로 아르코예술기록원에 보존돼 있다. 1996년 정용진이 서울예술대학 1학년 때였다. 한성준-한영숙-정재만의 법통을 잇는 ‘4대 벽사’로 일찌감치 운명이 정해진 것이다. 그에겐 또 다른 기회도 찾아왔다. 당시 성행하던 ‘길거리 캐스팅’으로 6인조 댄스그룹 ‘원오원’(1.0.1.)의 일원이 됐고, 리더로 활동했다. 그룹은 앨범도 내며 2년 남짓 활동했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전통춤과 확연히 다른 다양한 춤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제 그룹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어요. 그룹 활동도 춤의 연장선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1997년 금융위기 여파로 그룹은 해체되고 말았다. 정용진은 다시 전통춤 세계로 돌아온다. 상명대, 숙명대, 세종대에서 무용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벽사춤 전승에 매진한다.

광대무를 추는 정용진. 벽사춤 보존회 제공
광대무를 추는 정용진. 벽사춤 보존회 제공

한영숙 문하의 이애주와 정재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승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두 사람은 ‘한성준-한영숙류 춤’의 양대 산맥이었다. 2년 전 작고한 춤꾼 이애주는 ‘한성준 바탕-한영숙 류-이애주 맥’이라고 자신의 춤맥을 분류했다. “한성준-한영숙류 춤은 원래 무뚝뚝하고 남성적인데 이애주 선생님은 그 춤의 원형을 이어갔어요. 반면, 아버지 정재만의 벽사춤은 시대 흐름에 맞춰 다듬고 정돈하면서 품격을 좀 높이려 했고요.” 정용진은 “벽사춤과 이애주 선생의 춤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은 춤꾼 66명에 악사까지 75명에 이르는 제법 큰 춤판이다. 승무와 살풀이춤, 큰태평무가 춤판의 주축인데, 그 사이로 광대무와 선비춤, 산조춤, 사랑가를 선보인다. 춤도 춤이지만 이번 공연에선 복식의 변천에도 무게를 뒀다. 승무와 살풀이, 태평무를 출 때 각각 착용하는 의상과 장식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시대별 흐름으로 보여준다. “승무와 살풀이, 태평무를 추는데 5종류씩 모두 15가지의 복식을 바꿔 입어요. 복식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춤판인 셈이죠.”

태평무를 추는 정용진. 벽사춤 보존회 제공
태평무를 추는 정용진. 벽사춤 보존회 제공

그는 내년에도 큰 춤판을 준비 중이다. 2014년 교통사고로 타계한 아버지 정재만의 10주기를 맞아서다. “이번에 복식을 정리하는 것도 벽사춤의 틀을 확실하게 정립하려는 겁니다. 뿌리를 튼튼히 다져놓아야지요. 그래야 벽사춤의 확장과 발전도 제대로 고민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아버님께서 늘 벽사춤을 잇되 거기에 머물지 말고 다듬어서 발전시키라고 하셨다”며 “제게 일찍 내림춤판을 해주신 것도 그런 뜻에서였을 것”이라고 돌이켰다. 그는 “아버님께서 불의의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제 어깨가 이토록 무겁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러 차례 ‘책임감’이란 말을 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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