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얍 판츠베덴 “음악은 영혼의 양식, 사회적 약자도 누려야죠”

등록 2023-03-07 07:00수정 2023-03-07 14:36

뉴욕필 음악감독, 내년 서울시향 취임 예정
7일 사회적 약자 위한 공연…공민배와 협연도
자폐 아들 여섯살 때 음악으로 첫 말문 열어
1997년 자폐아 지원 ‘파파게노 재단’ 설립
지휘자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제공
지휘자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제공

“사회적 약자들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돼요. 1년에 한 번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연을 열려고 합니다.” 내년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야프 판즈베던·63)이 지난 1월 국내 언론과의 첫 간담회에서 한 얘기다. 그가 다음달 7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이 약속을 지키는 음악회를 연다.

‘아주 특별한 콘서트’라는 이름의 이 연주회를 미국에서도 ‘몸값’ 비싸기로 유명한 그가 무보수로 지휘한다. 모든 좌석의 티켓 가격은 1만원. 네덜란드 출신의 이 세계적인 지휘자가 서울시향을 지휘해 빚어내는 음악을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수익금을 모두 장애 아동을 돕는 데 쓰는 ‘기부 콘서트’다. 그는 "음악은 영혼의 음식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영혼의 풍요가 닿아야 한다"며 서울시와 서울시향 쪽에 “모두를 위한 오케스트라가 돼야 한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츠베덴이 취임도 하기 전에 이 공연에 의욕을 보이는 데는 사연이 있다. 아들이 여섯살이 되도록 말을 못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였다. 츠베덴 부부는 그 아이에게 늘 동요를 불러줬다. 어느 날 가사 일부를 빠트리고 부르자 아들이 갑자기 흥분했다. 아이가 노래 내용을 이해한다는 걸 직감했다. 다음에 또 일부러 가사를 빼고 노래했더니 아들이 다시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가 뭔가 말하고 싶어한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다음 가사를 아이가 말해보도록 했다. 그러자 6개월 만에 아이 입에서 가사가 튀어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말문이 터진 순간이었다. 이 방식을 이어가자 아이의 어휘가 늘어갔고, 나중엔 말을 하게 됐다. 이런 사연이 라디오 방송을 타고 소개되자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을 둔 수많은 부모한테서 연락이 왔다. 바이올린 연주자이던 츠베덴이 네덜란드의 명문 악단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 일을 계기로 츠베덴 부부는 자폐아와 그 가족을 돕기 위한 재단을 설립했다. 1997년 출범한 ‘파파게노 재단’이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새잡이꾼(파파게노)의 이름에서 재단 명칭을 따왔다. 이 재단엔 현재 38명의 음악치료사가 일하고 있다. 네덜란드 각 지역의 전문 음악치료사들과 연결해 가정에서 음악치료를 할 수 있도록 이어주기도 한다. 자폐 조기 진단과 치료 , 음악치료도 병행한다. 재단은 각종 스포츠 시설도 갖췄다.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전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이 재단의 일원이다. 츠베덴과 히딩크는 부부 모임을 자주 할 정도로 친분이 깊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 서울시향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 서울시향 제공

뉴욕필과 함께 홍콩필하모닉 음악감독도 겸하고 있는 그의 별명은 ‘오케스트라 조련사’다. 홍콩필은 2012년부터 음악감독으로 재직한 그의 손길을 거쳐 명문 악단으로 발돋움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클래식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이 선정한 ‘올해(2019년)의 오케스트라’에 아시아 악단으로는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내년이면 뉴욕필과 홍콩필 두 오케스트라를 모두 떠난다. 2025년부터는 오로지 서울시향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선 ‘음악계의 우영우’로 불리는 발달장애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19)가 협연자로 나서 눈길을 끈다. 화성나래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서울시향과 몇 차례 협연한 바 있다. 다섯살에 자폐 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치료 차원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한 분야에 몰입하고 파고드는 자폐 장애아 특성이 ‘음악적 재능’으로 발현한 경우다. 처음엔 피아노를 치다 열한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이번 공연에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을 츠베덴과 협연한다. 그와 서울시향의 인연은 ‘행복한 음악회, 함께!’에서 시작됐다. 2017년 서울시향 정기공연 도중 객석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이 일으킨 소란을 계기로 출발했다. ‘음악엔 장애도 편견도 없다’는 기치 아래 장애 관객들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획 공연이다. 공민배는 이 연주회를 위해 오디션을 통해 뽑은 여섯 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서울시향이 드리는 아주 특별한 콘서트’ 포스터.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향이 드리는 아주 특별한 콘서트’ 포스터. 서울시향 제공

이번 공연은 중간 휴식 없이 85분 안팎으로 이어진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라벨의 ‘볼레로’,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등을 연주한다.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곡들로 선곡했다고 한다. 특히 ‘로마의 소나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2000>에서 하늘을 나는 고래에 대한 내용으로 재해석한 곡이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했던 혹등고래가 하늘과 우주를 유영하며 꿈과 희망을 찾아 함께 떠나는 환상적인 감동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공연 장소인 이화여대 대강당은 세종문화회관 건립 이전엔 클래식 공연의 명소였다. 1956년에 들어선 이곳에서 세계적인 유명 연주자들이 내한 공연을 펼쳤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이 이곳 무대에 올랐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