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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대학가요제 나가러 대학 갈래요”

등록 2006-03-22 18:21수정 2006-03-23 17:11

제1회 1977 MBC 대학가요제 1집
제1회 1977 MBC 대학가요제 1집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44) ‘캠퍼스 그룹사운드’의 비상구, 기성 음악에 대한 청량제 - 대학가요제
지난해 가을, 눈길을 끈 한 신인 그룹이 있었다. ‘익스(EX)’라는 혼성그룹과, ‘제2의 김윤아’로 추앙된 이 그룹의 보컬 이상미가 그 주인공.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 오르고 미니홈피에는 방문자들이 즐비했으며 뉴스에 오르내리는 등 간만에 대중음악계에 깜짝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어떻게 등장했는가. 그것은 전설 같은 연례행사 ‘엠비시 대학가요제’를 통해서이다.

이제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엠비시 대학가요제’가 처음 열린 현장으로 가보자. 때는 1977년 9월 3일, 서울 정동의 문화체육관. 익살스럽게 진행하는 남자 대학생 사회자는, 지금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등극한 이수만(!)이다. 이후 몇 년 동안 대학가요제 단골 진행자가 된 그가 이날 “대학 생활의 낭만과 취미활동의 무대를 제공함으로써 대학 풍토의 명랑화에 기여하기 위해서 문화방송이 마련”했다고 이 대회를 소개했다.

촌스럽게도 대학교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11번째로 등장한 서울대 농과대의 그룹사운드 ‘샌드 페블스’(6기)가 이날 히어로로 등극했다는 것은 이미 전설이다(사실 이수만도 샌드 페블스의 2기 멤버였다). 하드록 중심의 외국곡을 연주하던 ‘샌드 페블스’의 창작곡 ‘나 어떡해’ 역시 오래도록 ‘청춘 송가’로 군림했다.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샌드 페블스 6기. 왼쪽부터 최광석(키보드), 이영득(기타), 여병섭(싱어), 김영국(드럼), 김민수(기타).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샌드 페블스 6기. 왼쪽부터 최광석(키보드), 이영득(기타), 여병섭(싱어), 김영국(드럼), 김민수(기타).
이처럼 대학문화를 방송에 끌어들여 “방송의 질과 폭을 넓힐 수 있다”는 한 피디의 소박한 아이디어가 낳은 파장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혜성처럼 등장한 김창완·창훈·창익 3형제 ‘악동(樂童)’ 밴드 ‘산울림’의 탄생이다. ‘산울림’이 결성된 것이 첫 대학가요제에 ‘무이(無異)’라는 이름으로 예선에 출전한 직후의 일이었거니와, ‘나 어떡해’의 작사·작곡자가 ‘샌드 페블스’ 멤버였던 김창훈이었으니 ‘1977년 파란’의 진정한 주인공은 산울림이 아니겠는가. 그후 산울림은 90년대까지 활동하며 한국 대중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과 신화가 되었다.

한편 이듬해인 1978년 동양방송(TBC)에서 ‘엠비시 대학가요제’를 벤치마킹한 ‘제1회 해변가요제’까지 열면서 방송가의 대학생 유치 작전은 극에 달한다. 이들 행사 후에는 ‘실황 중계’라는 이름의 라이브 음반이 당도했음은 물론, 해당 가수의 독집음반이 발표되는 수순을 따랐다. 무엇보다 대학가요제를 통해 ‘캠퍼스 그룹사운드’는 학교의 공식적 인정과 후원을 받았고 해를 거듭하며 기수를 더할 수 있었다. 대학가에 신생 그룹사운드가 우후죽순 생겨났음은 물론이다. 중창단이나 솔로 가수들이 더 많았지만 캠퍼스 그룹사운드는 대학가요제의 상징과 같았다. 배철수가 있던 ‘활주로’, 조하문이 있던 ‘마그마’, ‘샤프’ 등.

물론 여기에 신선한 파격만 있던 건 아니다. 심수봉(출전시 본명은 심민경. 2회 입상)의 ‘그때 그사람’처럼 다소 대학가요제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곡도 있었고, ‘당신은 모르실 거야’(1회 은상)처럼 기성곡 출전도 있었다. 또한 ‘외래 향락문화’에 편승하는 관제 행사라거나, 방송사와 음반사를 위한 축제라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학가요제가 기성 가요와 다른, 일종의 비상구이자 청량제라는 공식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어느날 반짝 스타에 그치는 경우도,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 어정쩡하게 있다가 사라지는 이들도 부지기수였지만, 참신한 아마추어 예비 음악인들이 이 창구를 통해 가요계에 수혈됐다. 유열, 신해철, 김동률, 이한철 등 이곳을 거쳐간 스타들은 일일이 거론조차 어려울 정도. 많은 수험생들이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지원했다는 말이 괜히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영원한 것이 있을까. 해를 거듭하자 점차 대학가요제의 본연의 빛깔은 퇴색되는 듯했다. 하긴, 어느덧 그때 그시절 언니 오빠들도 쉰 줄이 넘어 추억 속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최지선/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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