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은 소리 들어보시겠소?”
국악이라고 다 같은 국악이 아니다. 중요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돼 있는 종묘제례악이 봉건체제에 의해 뒷받침된 봉건체제 유지의 수단이었다면, 판소리는 민중의 사랑을 먹고 자란 민중의 예술이었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것이 더 민주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더불어 현재에 유효한 예술이 어느 것인가도 말할 수 있다. 이웃집 가락 듣다 소리에 빠져
전주대사습놀이 등 큰상 휩쓸고
‘박유전제 보성소리’ 계승
올 ‘국립극장 판소리’ 개막장식 “판소리는 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요. 꺼져버릴 것 같으면서도 요즘 어린 아이들에게서 좋은 재목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여전히 생명력이 있는 겁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외면당할 것 같지는 않아요.” 윤진철(41) 명창은 이른바 ‘판소리 명가’ 출신은 아니다. 목포가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장복례(당시 목포시립국악원 소속 무용수)의 집에서 흘러나오던 가락이 좋아 그 집을 기웃거리다 국악원에 출입하게 됐고, 그 길로 소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제24회 전주대사습놀이 장원(대통령상), 제25회 한국방송대상 국악인상, 2005 한국방송 국악대상을 받아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으로 이어지는 ‘박유전제 보성소리’의 계승자다. 그의 스승 정권진은 보성소리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정응민의 외아들이다. 박유전 소리를 강산제라고 부르는데, 정응민이 동편제와 중고제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낸 게 보성소리다. 임방울을 비롯해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모두 정응민에게 배웠다. “서편제에서 시작했지만 동편제 소리를 받아들인 소리입니다. 정응민 선생이 동편제의 춘향가를 받아들여 동편제와 융합하게 됐죠. 섬세하면서도 무게 있고 남성다운 소리를 구사하는 게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25일 국립극장에서 2시간 40분동안 <적벽가>를 완창한다. 지난 1985년 이후 21년째 이어오고 있는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의 2006년 개막 공연이다. 올해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공연은 “흔히 들을 수 없는 귀한 소릿제들”을 모았다. 악보없이, 사람에 의해서만 전승되는 판소리는 멸종의 위기에 전면적으로 노출돼 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그의 <적벽가> 역시 거의 끊어질 뻔한 소리였다. 그와 정권진의 막내 아들 정회석, 두 사람만으로 전승되고 있다. 장단의 부침과 기교가 뛰어나고, 다른 유파와 달리 조조를 하나의 영웅으로 무게감 있게 다룬다. “특히 젊은이들이 적벽가를 좋아해 깜짝 놀랐어요. 다섯바탕 가운데 하기도 어렵고, 듣기도 제일 어려운 소리거든요. 중국 고사가 많은 데다, 숨쉴 구멍 없이 몰아치며 소리를 질러야 하기 때문이죠. 전쟁 얘기라서 여자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아요. 박진감 넘치고 속도감있는 내용이 젊은이들의 감성에 맞나봅니다. 이에 비하면 <춘향가>나 <심청가>는 여성적이고 슬프죠.” 판소리의 거칠고 탁한 소리는 썩고 병든 소리를 연상케 한다. 그런 소리를 판소리에서는 ‘곰삭은 소리’라고 한다. 썩고 병들었는데도 부패하지 않는, 발효의 경지다. “무대에 서면 항상 스승님이 하셨던 말씀을 생각합니다. 정심정음. 바른 마음으로 소리를 해야 관객들이 감동한다는 겁니다. 인기를 좇지 말고 바른 마음을 좇으란 말씀이죠.” 25일 오후 3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2280-4115~6.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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