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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20돌 맞는 FM ‘전영혁의 음악세계’

등록 2006-03-29 20:09

[100도 강추] 자본·상업성에 휘둘리지 않는 문화적 해방구

오는 4월26일 한국방송 쿨에프엠(89.1㎒)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20주년을 맞는다. ‘수호천사’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의 열성팬들은 ‘20주년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뛴다. 발품과 쌈짓돈을 모아 <전영혁의 라이너 노트> <시가 있는 음악세계 애송시집> 등 기념책을 내놓는다. 8일 케이비에스홀에선 ‘블랙홀’, 박선주, 이수영 등이 나오는 콘서트도 연다. 전영혁도 나서 애청곡을 시디 4장에 담고 기념앨범 1000장을 찍었다.

이 프로그램이 대단한가? 전영혁은 기념앨범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던 나에게 음악만이 삶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썼다. 숨은 보석 같은 음악을 캐내는 ‘전영혁의 음악세계’는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현실에서 버틴 이상이며 대안이다. 귀퉁이에 놓인 이 ‘문화적 해방구’에서 한국의 청취자들은 겨우 ‘메탈리카’, 팻 메스니, ‘주다스 프리스트’ 등을 만났다.

‘어둠 속 명곡’ 불밝히는 한밤의 음악전령

새벽 두시 한국방송 쿨에프엠(89.1㎒)은 다른 세계를 향한 문이다. 한국의 다른 매체에선 들을 수 없는 광활한 음악이 너울댈 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눈 부릅뜨고 한 시간의 항해를 기다리며 가슴 뛰는 새벽을 맞는다.

음악은 질주하되 디스크자키 전영혁(54)의 목소리는 냉정하다. 누구의 무슨 노래라는 정보 정도만 전달한다. 가끔 시도 읽는데 전달자의 감정은 삭제한 채다. 전영혁은 “평가는 듣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어떤 해석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마그나 카르타’가 1971년 암스테르담에서 벌인 공연이 되살아나 그 실황앨범으로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지직거림까지 묻어나는 엘피의 이어달리기 끝이다. 전영혁은 때때로 ‘슈퍼 아날로그의 부활을 꿈꾸며’라는 이름으로 엘피판을 올린다. “음폭이 넓어 따뜻하고 인간적입니다.” 아니면 시디를 한 장씩 끼워 넣어 튼다. 음악파일로 만들어 멘트만 하는 법은 없다. 음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오롯이 음악이며 그는 전령 구실에 몰두한다. 록, 뉴에이지, 국악, 클래식, 재즈 등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그의 기준은 단순하되 까다롭다. “죽기 전에 대곡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만든 게 좋은 음악이죠. 나쁜 음악은 몇 장 팔릴까 생각하고 내놓는 거예요. 스타를 더 띄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죠. 저는 알려지지 않은 불운한 천재를 찾아내요.” 방송국 자료실은 그에겐 빛 좋은 개살구다.

말은 아끼되 음은 아낌없다
한달 음반 사는데 300만원
‘골수팬’ 사이트도 수두룩
“음악만이 삶의 유일한 대안”

어떤 사람에게 음악은 그저 흥을 돋우는 도구일 뿐이지만 그는 음악이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음악이 없었으면 저는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는 의미 없는 삶을 견딜 수 없었을 테죠. ‘이렇게 좋은 음악이 있는데 그래도 살만하지 않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꺼이 자기 주머니 털어 한달에 300만원어치 앨범을 사고, 일본이고 어디고 찾아가며, 모은 곡들 가운데 고르고 골라, 듣는 사람들과 나눈다.

음악은 오랜 친구로 되갚았다. “제가 기억하기에 오늘은 ‘수호천사’ 박아무개의 결혼기념일입니다.” 지난 20일 방송에서 그는 그 냉랭한 목소리로 축하곡을 띄웠다. ‘수호천사’는 1967년생 골수팬들이다. 고3 때 라디오 끼고 듣던 이들이 아직도 애청자의 주축이다. “10년 이상 애청자는 집으로 초대해 1000만원짜리라도 가지고 싶어 하는 앨범을 줘요. 아깝지 않아요.” 이밖에 유니텔, 네이버, 에프엠24(fm24.org)에도 동우회 사이트가 있다. 20여년 동안 헤비메탈만 파온 ‘블랙홀’의 주상균은 전영혁에게 ‘새벽의 디제이’라는 곡을 헌정했다. “여행자가 별을 보고 방향을 잡듯, 음악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저를 다잡아주는 프로그램이죠.”

하지만 이 ‘별’을 보려면 밤 샐 각오를 해야 한다. 전영혁은 방송 시간을 당겨주겠다는 말에 에스비에스로 한국방송으로 옮겨 다녔지만 결국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나마 수도권에서만 전파를 탄다. 음악저작권 문제 때문에 인터넷 다시 듣기도 안된다. 전영혁은 자신의 음악프로그램이 최고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이 홀대엔 체념한 듯하다. “제 잘못은 아니니까요.” ‘전영혁의 음악세계 20주년 기념사업회’ 이승영 회장은 “올해야 한국방송프로듀서상도 받고 주목을 끌지만 기념행사가 끝나면 또 잊혀질지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글·사진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전영혁은 누구

1952년생인 전영혁은 집안 분위기를 타고 어릴 때부터 클래식·재즈를 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비틀즈’의 앨범을 접하고 목표를 정했다. 대학 시절엔 기타 치고 노래했지만 자신의 실력이 좋아하는 그룹들과는 크게 차이 난다는 사실을 27살에 깨달았다.

시인, 영화감독, 기타리스트 사이 저울질 하다 첫 직장은 태창영화사 수입부로 잡았다. 30살 때 <월간팝송> 편집장으로 옮겼다. “운명이라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 라디오에선 쉽사리 들을 수 없는 음악을 소개해 마니아 팬을 이끌었다. 1980년 라디오 <박원웅과 함께>에 초대 손님으로 나와 존 레넌 추모 방송을 했다. <황인용의 영팝스>에서 고정 꼭지를 맡아 청취율을 띄웠고 1986년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전신인 ‘25시의 데이트’를 맡았다. 1986~96년 주요 앨범 해설지를 거의 다 써가며 생활비를 벌고 방송 수입은 앨범 사는 데 썼다. 그는 “인간 전영혁은 0점이지만 디제이 전영혁에게는 100점 주고 싶다”고 말한다.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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