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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더 물오른 마당으로

등록 2006-03-29 20:56수정 2006-03-30 14:02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

손진책(59) 극단 미추 대표는 ‘마당’을 지향하는 문화 엘리트다. 고등학교 시절, 큰 누나(서양화가 손정숙)를 따라 명동일대 음악감상실을 드나들며 클래식과 문학에 심취했다.

“국악이 나오면 으레 담배 피우러 나가는 시간이었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피하지 말고 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수재천’이라는 궁중음악이었는데, 국악도 뭐가 있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전통예술의 현대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고 허규 선생과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저하던 허규를 부추겨 ‘극단 민예극장(민족예술극장의 준말)’을 만든 것도 그였다. 민예극장은 번역극이 주를 이뤘던 당시 연극판에서 우리 식 토종 연극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다.

그는 극단 민예극장의 대표로 있던 1986년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 등을 이끌고 극단 미추를 창단했다. 이에 대해 이윤택은 “당대 최고 극단의 최고 엘리트들이 독립한 것”이라며 “극단 미추가 중앙 중의 중앙이라면, 우리(연희단거리패)는 변방 중의 변방”이라고 말했다.

마당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극단 미추를 논하기 어렵다. “마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주객이 일체가 되는 영원한 역동성이다. 그것은 전통적 인습을 타파하는 끊임없이 새로운 전통이다.”(미추 창단선언문)

극단 미추는 관제문화행사인 ‘국풍81’의 바람이 거세던 1981년, 이와 별도로 문화방송에 ‘마당놀이’를 제안해 전무후무한 흥행을 한다. 1개월 공연에 평균 20만명이라는 경이적인 관객을 동원한 것이다. 살벌한 시대, 행간을 읽어야 하는 공연이었지만 젊은 관객들은 환호했다.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축제였다. 애초 일회성으로 기획했다가 워낙 인기가 좋아 연말마다 하게 됐다.


“마당놀이라는 이름도 우리가 붙였어요. 마당은 우리식 극장이고, ‘놀이’라는 것은 서양에서도 연극의 어원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반응이 클 줄은 정말 몰랐어요. 우리 관객들이 그런 연극을 기다려왔다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전통예술 현대화 앞장서 80년대 첫선보인 마당놀이
월 20만명 동참 경이적 기록 ‘미추산방‘ 열어 미래 육성

마당놀이는 극단 미추의 유일한 ‘캐시 카우’이기도 하다. 마당놀이가 잘 되면 다음 해 연극 공연이 풍성해지고, 반대의 경우 초라해진다. “마당놀이는 전국 순회를 하면서 1년에 300회 정도는 공연을 해요. 게다가 연극 서너 편 하고 나면 배우들은 딴 생각할 틈이 없죠.” 손씨의 부인 김성녀 교수(중앙대 음악극과)는 마당놀이에 대해 “극장에 쉽게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손진책씨의 선물”이라고 추어올렸다.

올해는 두 사람의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부인이자 연극의 동반자인 김씨는 국악인이자 배우로서, 극단의 안주인으로서 손씨를 든든하게 받쳐줬다.

1996년, 살고있던 아파트를 팔아 5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한 경기도 양주군 ‘미추산방’은 극단 미추의 연습실이자 합숙소다. 미추연극학교 학생을 포함해 평소에도 15명 가량이 상주하며, 공연이 있을 때는 40~50명이 단체생활을 한다. 매년 200~300포기의 김장을 담그는 것은 연례행사로 돼 있다. 밥은 10년이 넘은 고참을 제외하고는 당번을 맡아 돌아가며 한다.

“미추 산방이 모든 연극인들이 좋은 연극을 만들 수 있느 터전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우리 같은 연극계 커플이 또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호호.”(김성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나와 ‘미추’ 배우 손현주
“다시 무대에 선다면 당연히 미추”

영화 <연리지><라이어><BR>드라마 <장밋빛 인생><모래시계>등 출연
영화 <연리지><라이어>
드라마 <장밋빛 인생><모래시계>등 출연

1990년 대학졸업 뒤 미추연극학교에 들어갔습니다. 4기 연구생이었죠. 손진책 대표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마추어들은 무대에 설 자격이 없다. 준비된 배우만이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늘 말씀하셨죠. 춤사위 하나, 동작 하나라도 어설프면 무대에 세우지 않았어요. 관객들은 돈 내고 보러오는데 어영부영하는 꼴은 못 본다는 거였죠. 지금도 그러실 겁니다. 입단 몇개월만에 무대에 한 번 선 것 같아요. 그것도 동기 중에 몇 안되는 사람들이 무대에 섰는데, 아주 흥분된 기억이 있죠.

미추는 종합적인 마당을 표방하죠. 마당극이라는 게 주인공이 없잖아요. 1인8역이나 1인9역을 예사로 소화해야 공연이 돌아갑니다. 지금도 방송 일을 하면서 배역이나 역할을 가리지 않아요. 자존심 상해서 못하겠다, 이런 게 없습니다.

방송 생활은 후딱 지나갔지만 짧았던 미추 시절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제가 몸치였거든요. 제일 중요한 한국 춤을 잘 못췄어요. 오후 6시 일과가 끝난 다음에 선배들에게 따로 한국 춤을 배웠어요. 그때 이화동 네거리에 연습실이 있었는데, 집에 안 들어가고 거기서 잘 때가 많았죠. 연습 끝나고 종로5가 골목, 삶은 계란 파는 할머니 집에서, 선배들이 소주에 삶은 계란을 사주곤 했는데,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한 번은 마지막 전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급하게 먹다가 크게 토한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나서는 한 몇 년 동안 삶은 계란을 못 먹겠더라구요.

대학만 졸업하면 뭔가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미추 시절 그런 얄팍한 생각이 다 깨졌고, 그게 제 연기의 모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생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나쁜 행동입니다. 지금도 선배 동료들이 연극을 하고 있잖아요. 저는 연극할 때 고생했다고 얘기하는 후배들이 얄미워요. 지금도 배우는 과정이고, 그곳에 가서 연극을 하고 싶어요. 만약 다시 연극을 하게 된다면 극단 미추에서 시작하겠죠. 사실 창피해서 못하는 측면이 큽니다. 탤런트 손현주가 무대에서 저렇게 밖에 못한다고 하면 얼마나 창피합니까? 마당놀이든 뭐든 다시 한다면 미추에서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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