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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탄호이저’ 막가는 파리귀족들에게 모욕당해

등록 2006-03-29 22:46수정 2006-03-29 22:50

노승림의무대X파일 - 바그너
19세기 파리는 발레에 중독되어 있었다. 수많은 발레 작품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초연되었고 오페라 작곡가들조차 극중 줄거리와 상관없이 작품에 발레를 끼워넣기 시작했다. 오페라 극중 2막에 발레 장면이 등장하는 관례는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행이 반드시 ‘발레’의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한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발레 붐을 주도했던 세력은 ‘조키 클럽’이었다. 프랑스 정치권의 부유한 귀족들로 구성된 이들은 발레리나들을 정부로 거느리고 다녔다. 파리 오페라극장은 당시 유럽의 가장 화려한 무대였지만 동시에 가장 정치적이었으며, 타락의 온상이었다. 조키 클럽은 자신의 정부를 이 무대에 세우며 세를 과시하곤 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작곡가는 작품의 질적 가치와 상관없이 그들로 인해 퇴출당하거나 최소한 모욕을 감수해야 했다.

그 모욕의 당사자 가운데에는 바그너도 포함되어 있었다. 1849년 드레스덴에서 시위에 가담한 죄로 독일로부터 추방되어 현상금까지 걸려있던 바그너는 스위스에 망명해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파리는 1845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된 <탄호이저>에 대단한 호감을 보였고, 결국 나폴레옹 3세는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이 작품을 공연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는 왕당파 위주로 구성된 조키 클럽의 비위를 심하게 거스르는 일이었다.

초연까지의 과정은 멀고도 험난했다. 당시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되는 모든 작품은 프랑스어로 불러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세 명의 대본 번역가의 작업은 작곡가의 마음에 썩 들지 않았고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저작권 관련 소송까지 제기했다. 또한 당시 신작 지휘를 맡은 지휘자는 귀도 제대로 잘 들리지 않는 형편없는 노인이었다. 그와 두 번의 연습을 마친 뒤 바그너는 유력인사에게 남은 연습과 처음 세 번의 공연은 자신이 지휘하도록 해달라고 청원했지만 거절당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갈등은 발레의 삽입 여부에 있었다. 드레스덴 초연 당시 <탄호이저>에는 발레 장면이 없었다. 극장 쪽은 2막에 발레를 삽입하자고 요청했지만 바그너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결국 조키 클럽의 협박과 사방팔방의 간청과 탄원으로 인해 2막이 아닌 1막에 발레 장면을 삽입하고 그에 맞추어 음악을 편곡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순진했던 바그너는 아무리 젊은 방탕아들일지라도 오페라를 일단 보고 전개가 부자연스럽다는 사실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무리한 기대였다.

1861년 3월13일 나폴레옹 황제 부부를 위시한 파리 사교계 명사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탄호이저>의 파리 초연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단 3번의 공연만에 바그너는 무너져 더 이상의 상연을 포기했다. 조키 클럽은 자신의 발레리나가 무대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호루라기를 가지고 와서 온갖 소음과 야유를 일삼으며 오페라를 방해했다. 그들의 훼방에 화가 난 다른 청중들이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는 사태가 매일같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흥행에 극장 쪽은 계속 공연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이미 겉잡을 수 없이 상처를 받은 바그너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노승림/공연 칼럼니스트 alephi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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