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왜 그리고 ‘해변’ ‘바다’ 노래 많았을까?

등록 2006-04-05 23:43수정 2006-04-06 10:27

〈제1회 해변가요제〉실황음반의 앞면. 배철수, 구창모, 왕영은, 주병진, 이명훈, 김성호 등 뒤에 스타가 된 인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1회 해변가요제〉실황음반의 앞면. 배철수, 구창모, 왕영은, 주병진, 이명훈, 김성호 등 뒤에 스타가 된 인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46) 해변의 추억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한 장면에는 이른바 ‘해변 고고장’이란 게 나온다. 여름철 해변 백사장에 ‘아시바’를 설치하고 천막을 두른 뒤 입장료를 받고 ‘영업’을 하던 곳이다. 무대에는 ‘그룹 사운드’가 출연하여 ‘고고 리듬’의 곡을 연주하고, 베니어판을 깔아놓은 플로어에서는 피서지를 찾은 청춘군상들이 춤을 춘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연과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다. 혈기방장한 젊은애들이 바닷가에서 풀어질 때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때 정말 그랬느냐? 영화에만 나오는 거 아니냐?”라고 묻는다면 “애들은 모를 거다”라고 답변해 주고 싶다. 피서지의 ‘한 철 장사’ 중 하나인 셈이었는데, 한때는 꽤나 쏠쏠한 장사였다. 물론 1970년대 후반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생음악을 들으면서 춤추고 노는 문화’가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해변의 추억’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니 1970년대 그룹 사운드나 포크송에 ‘해변’이나 ‘바다’가 왜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지 알 수 있다. 키 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4월과5월의 ‘바다의 여인’, 템페스트의 ‘파도’ 등등....

이런 ‘해변의 추억’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시각을 휘어잡은 사건은 1978년 7월22일에 연포 해수욕장에서 열린 <동양방송(TBC) 주최 제1회 해변가요제>일 것이다. 1년 전 쯤 문화방송(MBC) 대학가요제의 성공을 벤치마킹해서 열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행사가 이후에 미친 파장은 넓고도 깊었다. 무엇보다도 ‘아마추어의 숨은 고수’인 대학생 그룹 사운드들이 대거 참여하여, 캠퍼스 그룹 사운드 열풍이 한 해 전 샌드 페블스의 ‘가을의 전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본선에 오른 참가팀 가운데 다섯 팀이 그룹 사운드였을 뿐만 아니라(참고로 뒤에 그룹 사운드로 활동하는 벗님들은 이때는 2인조로 참여했다), ‘구름과 나’(블랙 테트라),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활주로/런웨이), ‘바람과 구름’(장남들), ‘그대로 그렇게’(휘버스), ‘내 단 하나의 소원’(블루 드래곤) 등의 곡이 모두 히트를 기록하고 몇몇 곡은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참여한 면면들 가운데 징검다리의 일원으로 참여한 왕영은과 정금화, 주병진·주선숙이라는 듀엣으로 출전한 주병진처럼 의외의 인물을 찾는 재미도 있다. 이들을 포함하여 구창모, 김정선(이상 블랙 테트라), 배철수(런웨이), 이명훈(휘버스), 김성호(블루 드래곤) 등은 1980년대 컬러 티비 시대가 개막되면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므로 나중에 차근차근 다룰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포에서 동양방송 주최로 개최된 대학생 가요제’는 1978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1973년 7월 ‘전국 대학생 보컬 경연대회’라는 대회가 개최되었다. “참가 팀은 각 대학별로 17개팀에 이르렀고 1주일 동안 열전을 벌였었다”라든가 “전체 분위기도 그런대로 즐겁고 낭만스런 것이었다”(‘TBC 주최 대학생보컬그룹 경연서 스푸키스 영예의 1위’, <일간스포츠> 1973.7.26.)라는 한 신문기사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캠퍼스 음악이 연포 및 TBC와 맺는 인연은 꽤나 오래된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4개 대학 연합그룹’인 박성원과 스푸키스나, 2위를 차지한 서울대 공대 에코우즈(Echoes)는 잊혀져 버렸다. (혹시나 1970년대 초중반 ‘꽃만두 시리즈’로 개그계의 돌풍을 몰고 왔다가 연예계의 관행에 적응하지 못해서 자살로 비운의 경력을 마친 박성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기억이 새삼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그룹은 다름 아니라 항공대학교 캠퍼스 그룹 사운드인 런웨이(Runway)였고, 배철수(1953년생, 72학번)는 이 대회에서도 그룹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아 출전했다. 이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파일럿 복장’으로 무대에 오른 것도 물론이다. 그렇다면 5년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을까. 다름 아니라 1973년의 대학생 그룹들은 ‘팝송 원곡’을 연주했지만, 1978년에는 ‘가요 창작곡’을 연주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엊그제까지 써클룸에서 ‘시끄럽다’는 주위의 눈총을 받으면서 연주하던 곡이 어느날 갑자기 전파를 타면서 ‘젊음의 송가’가 된 것이다. ‘가요제 실황음반’ 외에 음반이라곤 없고 정식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해본 경력도 없던 아마추어들이 말이다. 프로페셔널 그룹 사운드가 이런저런 이유로 활동의 제약을 받고 있을 때 ‘세상 모르고 살던’ 아마추어 그룹 사운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 세상이 그리 멋지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글 / 신현준 (대중음악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