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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어흥! 잠자던 사자상 천년만의 봄나들이

등록 2006-04-12 20:07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에 놓였던 석사자상. 몸은 닳았어도 특유의 세련된 기품이 돋보인다.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에 놓였던 석사자상. 몸은 닳았어도 특유의 세련된 기품이 돋보인다.
삼국시대 미술 고분장식 공예품 등 70여점 한자리에
불교 전래 따라 5세기 금동불좌상 대좌에 처음 등장
‘부처와 권력’ 상징…보험가액 20억원 넘는 병향로도
국립경주박물관 국내 첫 ‘신라의 사자’ 기획전

‘어흥! 나 좀 봐줘요!’정겨운 이땅 곳곳의 옛 사자상들이 천여년만에 몸을 움직여 경주로 봄나들이를 나왔다. 표정이나 몸짓, 크기가 각양각색인 사자들이 좌대 위에서 자태를 뽐낸다. 미끈하게 쫙 뻗은 몸매와 달리 어수룩한 주먹코 얼굴을 지닌 사자 기둥장식, 강아지 같은 사자 석상, 늠름하고 용맹한 몸매의 사자입상, 위풍당당한 기와 속 사자 등이 각기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김성구) 특별전시관에서 18일 시작하는 기획전 ‘신라의 사자’는 국내 최초로 옛 사자 예술품들만 모은 기획전이다. 신라시대를 중심으로 불교미술품과 무덤 조각, 생활공예품 등에 다양하게 표현한 사자상 작품 70여점을 옹기종기 모아놓았다. ‘사자의 전래’‘불법을 수호하다’‘군주를 호위하다’‘생활 속의 사자’ 등 4부로 주제를 나누었지만, 친근하고 편안한 여러 사자 석물들을 둘러 보면서 옛 장인들의 자유분방한 미의식을 되새김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신라의 사자’ 전에 나온 경주 출토 기둥장식 사자입상(왼쪽). 늘씬하게 뻗은 몸매와 달리 180도 옆으로 돌아간 얼굴(오른쪽)은 주먹코 왕방울눈의 익살스런 표정이다
‘신라의 사자’ 전에 나온 경주 출토 기둥장식 사자입상(왼쪽). 늘씬하게 뻗은 몸매와 달리 180도 옆으로 돌아간 얼굴(오른쪽)은 주먹코 왕방울눈의 익살스런 표정이다

열대 초원에 사는 ‘백수의 왕’ 사자가 이땅에 들어온 것은 불교의 전래와 맥을 같이 한다. 원래 인도에서 방위를 지키는 수호수였던 사자는 권위의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부처에 비유되는 ‘인중사자(人中獅子)’로 인식되었다. 부처가 앉은 자리를 사자좌라고 하고, 부처의 설법을 사자후라고 했던 것도 이런 사자의 상징성 때문이다. 불교 화엄종파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삼매의 순간을 사자의 포효에 비유하기도 한다. 옛 조상들은 불탑의 받침 장식, 무덤의 호위석, 향로, 기와, 건물 기둥 부조 등 옛 석조 미술품에 사자를 즐겨 표현했다. 특히 아득한 삼국·통일신라 시대 돌조각에 유난히 사자가 많은 편인데, 사사자 석탑, 쌍사자 석등 따위는 외국에 전례가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먼저 눈에 띄는 유물이 국내 최고의 불상이자 처음 사자상을 표현한 작품인 5세기 서울 뚝섬 출토 금동불좌상이다. 마멸은 심하지만 대좌 좌우에 이빨을 드러낸 사자상을 볼 수 있다. 가장 도드라진 사자상들은 역시 석물상. 기둥을 받치는 장식 사자인 경주 출토 사자 입석은 고개를 180도 돌린 왕방울 눈 사자의 익살스런 모습이 일품이며, 대통사터 석사자상은 세련된 품격을 갖춘 백제 사자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의성 관덕동 석사자상은 관덕동 탑을 재현해 그 위에 원래대로 직접 설치해 작품 이해를 도왔다. 또 경북 안강 안계사터의 장방형 대석에 새겨진 사자는 공양자상, 부처 등과 함께 사면에 새겨져 있어 그 도상의 의미를 둘러싸고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유물이다. 경주 월정교 다리 앞에 놓여졌던 신라시대의 사자상은 머리는 없으나 날렵한 몸매와 웅크린 뒷다리의 모습에서 금새라도 불쑥 튀어오를 듯한 힘이 느껴진다. 기골이 장대한 태백산 불적사 출토의 사자기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사자향로 뚜껑 등도 나왔고,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가져온 사자 손잡이 달린 병향로는 보험가액만 20억이 넘는 이번 전시 명품 가운데 하나다.

(왼쪽)안압지 출토 사자 향로뚜껑. 통일신라 시대 유물로 코와 입, 귓구멍 등을 통해 연기가 나오게 되어있다. (오른쪽) 경주 월정교터에서 나온 머리 없는 석사자상. 늠름한 몸매, 뒷발의 역동적 동세가 일품이다.
(왼쪽)안압지 출토 사자 향로뚜껑. 통일신라 시대 유물로 코와 입, 귓구멍 등을 통해 연기가 나오게 되어있다. (오른쪽) 경주 월정교터에서 나온 머리 없는 석사자상. 늠름한 몸매, 뒷발의 역동적 동세가 일품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서역문화와의 영향관계를 보여주는 사자상들이다. 서역 무사상과 함께 새겨진 경주 구정동 방형분 모서리 기둥의 사자상이나 이란 문양의 영향을 받은 경주 출토 공작·사자무늬석 등이 보인다. 곱돌십이지상이나 사천왕사 출토 녹유전에 보이는 사천왕 어깨의 사자장식은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에서 파생한 산물이란 점이 흥미롭다. 전시를 기획한 권강미 학예사는 “부처와 권력자의 상징이었던 사자상을 불상의 부속물이 아닌, 그 자체의 도상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의미를 풀어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5월13일 일반인을 위한 기획자 특별강연회도 열린다. 5월28일까지. (054)740-7518.


경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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