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엿본 5월 의정부 국제음악극축제
장르도 파괴하고 국적도 파괴한다. 요즘 유럽의 공연은 그렇다. 연극인지 무용인지, 퍼포먼스인지 구분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프랑스산인지, 체코산인지 구분해서도 안된다. 애초부터 뒤죽박죽이다. 영화와 텔레비전, 인터넷이 쏟아내는 온갖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유럽 공연계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다.
무기는 ‘날 것’으로서의 몸이다. ‘레디 메이드’와 달리, 눈 앞에서 펼쳐지는 ‘날 것’으로서의 몸을 보여주자는데, 연극이니 무용이니 하는 장르 구분은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올해로 다섯번째를 맞는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5월5일~27일)는 이번에도 앞서가는 유럽의 공연 작품을 여러 편 소개한다. 전혀 다른 개념의 연극 혹은 공연을 체험할 진귀한 기회다.
브레히트의 ‘억척어멈’ 원작
역사적 학살, 울부짖는 배우들 연옥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여인이 험악하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브레히트의 원작(<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 나오는 그 ‘억척어멈’이다. 수레를 끌고 전쟁터를 누비며 ‘억척스레’ 장사를 한다. 전쟁은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전쟁은 그의 아이들을 차례로 하나씩 집어삼킨다. 원작은 전쟁 중에 벌어지는 인간의 무지한 행동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내용이다. 물대포를 쏘는 병정과 빗자루를 들고 이에 맞서는 죄수, 그리고 나목에 매달린 알몸들. 이것은 정말 브레히트의 원작에 나온 사건과 이미지들의 장시간에 걸친 반복이다. 역사적 학살 장면에서 본 듯한 이미지, 이슬람 풍의 복장은 최근 중동에서의 비극을 떠오르게 한다. 배우들은 록과 재즈, 남미의 민속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땅바닥에 건초더미를 뿌리고 그 위에 ‘자빠져’ 뒹군다. 그리고 울부 짖는다. 대사는 거의 없다. 연출가 마우리시오 셀레돈은 우리의 삶을 연옥이라는 사후 세계로 묘사하고 있다. 단편들의 나열같지만, 신비스러운 인상을 우리 뇌리에 남긴다.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이전에 이 대단한 이벤트에 매혹당하게 된다. 셀레돈은 무용과 마임, 서커스, 연극이 복합된 연기술을 발전시켜온 첼레 출신의 연출가다. 이 작품은 그가 이끄는 칠레-프랑스-스페인 합작프로덕션이 만들었다. 아시아 초연. 5월13일~14일 오후 4시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스페인 내전대 총살당한 시인
지순한 동성애 느리게 표현 다크 러브 소네트 물이 담긴 세면대를 사이에 두고 남자 둘이 번갈아 얼굴을 닦는다. ‘슬로 비디오’처럼 느리디 느린, 무용 같지 않은 무용이다. 상반신을 벗은 두 남자는 동성 연인을 상징한다. <다크 러브 소네트>는 스페인의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기리는 작품이다. 무정부주의자이자 동성애자였던 로르카는 1936년 8월 어느날 새벽, 스페인 내전 시작과 함께 국가주의자들에 의해 총살당하고 만다. 그가 왜 사형당해야만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에 휩싸여 있다. 체코 극단 팜인더케이브는 유럽의 연극계에도 깊은 영향을 준 로르카의 시 세계와 그가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와의 관계, 그 억눌린 사랑을 스페인의 리듬에 바탕을 둔 거친 신체로 표현했다. 팜인더케이브는 2001년 ‘안달루시아로의 탐험-로르카의 자취를 따르는 여행’을 하고 난 뒤, 일명 ‘로르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로르카의 삶을 주제로 한 공연과 그의 작품 번역, 시디 제작, 그리고 이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이다. 연출가 빌리엄 도초로만스키는 “로르카와 라파엘 로드리끄즈 라푼과의 사랑은 스페인 내전 동안 시작됐으며, 둘의 사랑은 지역, 나이, 성별, 심지어 죽음도 초월한 것이었다”며 “우리 극단의 근원적인 바탕이 된 이 공연이 한국 관객에게도 영감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극단의 2001년 창단 작품으로 두번째 내한 공연이다. 극단의 요청으로 객석이 무대 위에 마련돼 있다. 아시아 초연. 5월26일 저녁 7시30분, 27일 오후 4시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관객들 머리 위 풍선 탄 돈키호테
우리나라 처음 소개되는 야외극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헬륨으로 가득찬 풍선을 타고 시종일관 공중에 떠 다닌다. 그렇게 돈키호테는 관객들의 머리 위에서, 창을 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관객들은 극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며 모든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 관객들은 극의 중심에서 모든 움직임을 지켜본다. 풍선은 풍차도 만들고 성문도 만들고, 용가리 같은 괴물도 만든다. 풍선은 바람결에 흔들리고, 둥근달과 취주악대는 배우들과 관객들의 행렬을 뒤따라온다. 불꽃은 끊임없이 하늘로 발사되며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유럽의 야외극 무대를 평정한 프랑스 극단 ‘플라스티시앙 볼랑’(날아다니는 풍선)이 선보이는 초대형 야외극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다. 몽환적이면서도 정열적인 분위기는 어린이날 선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5월5일~6일 저녁 7시30분 의정부 시청 앞 광장. 무료. 031-828-5841.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제공
역사적 학살, 울부짖는 배우들 연옥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여인이 험악하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브레히트의 원작(<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 나오는 그 ‘억척어멈’이다. 수레를 끌고 전쟁터를 누비며 ‘억척스레’ 장사를 한다. 전쟁은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전쟁은 그의 아이들을 차례로 하나씩 집어삼킨다. 원작은 전쟁 중에 벌어지는 인간의 무지한 행동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내용이다. 물대포를 쏘는 병정과 빗자루를 들고 이에 맞서는 죄수, 그리고 나목에 매달린 알몸들. 이것은 정말 브레히트의 원작에 나온 사건과 이미지들의 장시간에 걸친 반복이다. 역사적 학살 장면에서 본 듯한 이미지, 이슬람 풍의 복장은 최근 중동에서의 비극을 떠오르게 한다. 배우들은 록과 재즈, 남미의 민속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땅바닥에 건초더미를 뿌리고 그 위에 ‘자빠져’ 뒹군다. 그리고 울부 짖는다. 대사는 거의 없다. 연출가 마우리시오 셀레돈은 우리의 삶을 연옥이라는 사후 세계로 묘사하고 있다. 단편들의 나열같지만, 신비스러운 인상을 우리 뇌리에 남긴다.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이전에 이 대단한 이벤트에 매혹당하게 된다. 셀레돈은 무용과 마임, 서커스, 연극이 복합된 연기술을 발전시켜온 첼레 출신의 연출가다. 이 작품은 그가 이끄는 칠레-프랑스-스페인 합작프로덕션이 만들었다. 아시아 초연. 5월13일~14일 오후 4시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스페인 내전대 총살당한 시인
지순한 동성애 느리게 표현 다크 러브 소네트 물이 담긴 세면대를 사이에 두고 남자 둘이 번갈아 얼굴을 닦는다. ‘슬로 비디오’처럼 느리디 느린, 무용 같지 않은 무용이다. 상반신을 벗은 두 남자는 동성 연인을 상징한다. <다크 러브 소네트>는 스페인의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기리는 작품이다. 무정부주의자이자 동성애자였던 로르카는 1936년 8월 어느날 새벽, 스페인 내전 시작과 함께 국가주의자들에 의해 총살당하고 만다. 그가 왜 사형당해야만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에 휩싸여 있다. 체코 극단 팜인더케이브는 유럽의 연극계에도 깊은 영향을 준 로르카의 시 세계와 그가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와의 관계, 그 억눌린 사랑을 스페인의 리듬에 바탕을 둔 거친 신체로 표현했다. 팜인더케이브는 2001년 ‘안달루시아로의 탐험-로르카의 자취를 따르는 여행’을 하고 난 뒤, 일명 ‘로르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로르카의 삶을 주제로 한 공연과 그의 작품 번역, 시디 제작, 그리고 이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이다. 연출가 빌리엄 도초로만스키는 “로르카와 라파엘 로드리끄즈 라푼과의 사랑은 스페인 내전 동안 시작됐으며, 둘의 사랑은 지역, 나이, 성별, 심지어 죽음도 초월한 것이었다”며 “우리 극단의 근원적인 바탕이 된 이 공연이 한국 관객에게도 영감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극단의 2001년 창단 작품으로 두번째 내한 공연이다. 극단의 요청으로 객석이 무대 위에 마련돼 있다. 아시아 초연. 5월26일 저녁 7시30분, 27일 오후 4시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관객들 머리 위 풍선 탄 돈키호테
우리나라 처음 소개되는 야외극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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