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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70년대말 언더그라운드 아지트 ‘서라벌’

등록 2006-04-26 18:17수정 2006-04-30 13:25

1978년에 발표된 정태춘의 데뷔 앨범
1978년에 발표된 정태춘의 데뷔 앨범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49) ‘서라벌 레코드’의 미스터리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1975년과 이전’과 ‘1976년 이후’를 칼로 무 자르듯 가르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해서 면구스럽기는 하지만, 하는 김에 밀고 나가 보기로 하자. 오늘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음반’에 대한 이야기다.

1975년 이전에 나온 엘피 음반들을 서가에 꽂아놓으면 무슨 음반인지 잘 알아볼 수가 없다. 이유는 레코드 표지의 옆면이 얇디얇아서 세월이 흐른 뒤에는 거의 닳아 없어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드물게는 좋은 종이를 사용한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당시로서는 음반을 ‘소장가치가 있는 문화상품’으로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도 1976~7년께부터는 음반 표지의 옆면도 꽤 도톰하게 나오기 시작해서 서가에 꽂아놓아도 무슨 음반인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정책 목표였던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천불 달성”이 1977년 말에 달성된 현상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제작자들은 음반을 정성스럽게 만들기 시작하고 소비자들도 나름대로 ‘컬렉션’을 갖추기 시작한 현상의 방증일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이라고 뽑히는 음반들 가운데 1975년 이전에 나온 것이 별로 없는 현상은 산업적 환경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개인적 견해이지만 나는 ‘명반 뽑기’에 시큰둥한 편이다. 상이한 환경에서 나온 작품들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정태춘의 앨범에서 편곡을 맡은 유지연의 데뷔 앨범
정태춘의 앨범에서 편곡을 맡은 유지연의 데뷔 앨범

어쨌든 ‘명반’으로 뽑히는 음반들을 죽 훑어보면 1975년 이전에는 ‘유니버어살 레코드’라는 상호(레이블)를 달고 나온 음반들이 유난히 많은 반면, 1976년 이후에는 ‘서라벌 레코드’라는 상호를 달고 나온 음반들이 유난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1980년대까지 한국 음반업계의 ‘첩혈쌍웅’이었던 지구 레코드와 오아시스 레코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양사에서 발표한 음반들이 대체로 ‘주류’에 속했다면, 유니버어살과 서라벌은 ‘비주류’에 속한 음반들을 많이 발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니버어살 레코드에 대한 이야기는 실기한 것 같으니 생략하고 서라벌 레코드에 집중해 보자. 1970년대 말까지 발표된 음반들과 대표곡들을 간략히 열거해 보면, 산울림(‘아니 벌써’), 사랑과 평화(‘한동안 뜸했었지’), 김태화(‘안녕’), 벗님들(‘또 만났네’), 휘버스(‘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이은하(‘아리송해’), 최백호(‘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산이슬(‘이사 가던 날’), 윤정하(‘찬비’), 하수영(‘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정태춘(‘시인의 마을’) 등이 모두 서라벌 레코드의 레이블을 달고 있다.

이들의 음악이 ‘이질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이른바 대명제작(代名製作)이라는 당시의 관행 때문이다. 말 그대로 (상호의) 이름을 빌려서 음반을 제작하는 관행인데, 음악적 콘텐츠를 제작할 능력은 있지만 녹음 설비와 배급 능력이 없는 제작자(프로덕션)가 기존 음반사의 상호를 ‘빌려서’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서라벌의 상호를 달고 나온 음반들의 제작자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시점을 연장해 보면 들국화, 김현식, 이문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음반도 모두 서라벌의 상호를 달고 나왔다. 이 점에 대해서는 깊숙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런 연구에 대한 물심양면의 지원이 없는 이상 당분간은 미스터리가 걷히기는 힘들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서라벌에서 직접 제작했든, 서라벌을 통해 대명제작을 했든, 서라벌 레코드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렀던 음악적 흐름의 아지트였다는 사실이다(물론 언더그라운드에 속하는 음악인들 가운데 서라벌 레코드를 통하지 않은 경우도 있기는 하다). 1980년까지 발표된 서라벌제(製) 음반들 가운데 위에 언급한 히트 음반들 말고 유지연, 양병집, 한돌, ‘참새를 태운 잠수함’, 최성원·이승희·이영재 등의 음반도 있다고 하면 ‘아하’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신촌파’니 ‘명륜동파’니 등등 마치 조폭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지하세계’로 들어가 보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족을 붙이면, 절대로 조폭 같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신현준/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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