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 한국공연 마이크 박과 제니 최
5월 초에 열리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은 처음으로 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계 음악인 초청공연을 벌인다. 초청자들은 일본의 동포 그룹 ‘나인’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중인 마이크 박과 제니 최다. 미국 매디슨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대중음악 평론가로 활동하는 김필호씨가 이들 중 마이크 박과 제니 최를 소개하는 글을 보내왔다.
‘아메리칸 드림’과 ‘청운의 꿈’은 어딘가 맞닿아 있다. 엘에이 폭동과 재미 한인 문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책 제목이 〈푸른 꿈(Blue Dreams)〉인 것도, 미국 이민의 악몽을 그린 최인호의 소설이 〈깊고 푸른 밤〉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국에서 재미 한인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 푸른 미국의 꿈을 이루었는가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다. 하인스 워드와 토비 도슨이 하루아침에 자랑스런 한국의 아들들로 거듭난 데서 보이듯, 성공 신화의 위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래도 이들의 경우 ‘혼혈인’과 입양아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각성의 계기를 가져온 면이 있다.
미국 내 한인2세 대표 음악가
‘하이 서울 페스티벌’서 공연
‘이민자 정체성’ 돌아볼 기회 미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인 제니 최와 마이크 박의 경력은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 소수인종의 존재를 음악을 통해 알려온 이들의 활동은 대략 30만~40만명 정도로 짐작되는 미국 내 한인 2세 또는 이후 세대의 일상적인 삶에 좀더 근접해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푸른 꿈의 신화에서 눈을 돌려 이민과 이산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갖는 의미를 반추할 기회를 제공한다. 시카고에서 자라난 여자 음악인 제니 최는 아직껏 할머니와 어머니의 땅에 와볼 기회가 없었다. 삼촌들과 힘을 모아 철물점을 낸 제니의 부모는 항상 바빴고, 제니가 어느 정도 크고 난 다음에는 한국에 몇 차례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가게를 봐야만 했기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로부터,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과거와 현재를 통해 겪어온 한국 여성들의 고초를 듣고 본 대로 제니는 다음과 같은 가사를 써내려갔다. “우리 눈 속 시련은 눈썹 위에 새겨지고/ 향그런 백합은 우리의 역사에만 하늘거리네/ 누구도 쉬울 거라 말하진 않았어/ 하지만 우리는 밟아 간다네/ 시린 뼈 속에 스민 삶의 리듬을 따라/ 새벽 네 시 이슬진 풀밭을 맨발로/ 결코 울진 않아, 항상 목이 마를 뿐”(‘거친(Coarse)’) 마이크 박은 제니와는 달리 이미 여러 번 한국을 찾아왔다. 태극 마크 선명한 로고의 ‘아시안 맨 레코드’를 경영하면서 미국 언더그라운드 스카-펑크 운동을 주도해 온 마이크는 이미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 및 음반 발매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혈기왕성한 인디 음악인 겸 사업가에게 한국은 단지 어머니의 나라만이 아니라 ‘기회의 땅’으로도 받아들여진 듯하다. 그러나 몇 년 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눴을 때, 그는 한국에서의 다소 뜨악한 반응에 실망한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과거의 스카-펑크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스타일을 전환하면서 낸 최근 앨범 중 ‘한국은 너무 멀어’ 같은 제목에서 그런 느낌을 읽어낸다면 지나치게 넘겨짚는 것일까. 그래도 그는 이제 일흔이 다 되신 어머니와 함께 다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먼 길에 오른다.
마이크와 제니의 한국 공연은 지금 미국에서 진행 중인 ‘아시안스 인 록’이라는 3년차 연례 순회공연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5월6일 ‘하이 서울 록 페스티벌’에서 첫 무대가 마련되고, 그 다음날에는 홍대 앞 소극장 ‘쌤(SSAM)’에서 공연이 열린다. 재일동포 다케나리가 이끄는 밴드 나인(Nine)도 합류할 예정이다. 이처럼 곳곳으로 뻗어나간 이민과 이산의 역사는 한 세대를 돌아 출발점에서 다시 만난다. 김필호/한국대중음악학회 회원
‘하이 서울 페스티벌’서 공연
‘이민자 정체성’ 돌아볼 기회 미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인 제니 최와 마이크 박의 경력은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 소수인종의 존재를 음악을 통해 알려온 이들의 활동은 대략 30만~40만명 정도로 짐작되는 미국 내 한인 2세 또는 이후 세대의 일상적인 삶에 좀더 근접해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푸른 꿈의 신화에서 눈을 돌려 이민과 이산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갖는 의미를 반추할 기회를 제공한다. 시카고에서 자라난 여자 음악인 제니 최는 아직껏 할머니와 어머니의 땅에 와볼 기회가 없었다. 삼촌들과 힘을 모아 철물점을 낸 제니의 부모는 항상 바빴고, 제니가 어느 정도 크고 난 다음에는 한국에 몇 차례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가게를 봐야만 했기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로부터,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과거와 현재를 통해 겪어온 한국 여성들의 고초를 듣고 본 대로 제니는 다음과 같은 가사를 써내려갔다. “우리 눈 속 시련은 눈썹 위에 새겨지고/ 향그런 백합은 우리의 역사에만 하늘거리네/ 누구도 쉬울 거라 말하진 않았어/ 하지만 우리는 밟아 간다네/ 시린 뼈 속에 스민 삶의 리듬을 따라/ 새벽 네 시 이슬진 풀밭을 맨발로/ 결코 울진 않아, 항상 목이 마를 뿐”(‘거친(Coarse)’) 마이크 박은 제니와는 달리 이미 여러 번 한국을 찾아왔다. 태극 마크 선명한 로고의 ‘아시안 맨 레코드’를 경영하면서 미국 언더그라운드 스카-펑크 운동을 주도해 온 마이크는 이미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 및 음반 발매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혈기왕성한 인디 음악인 겸 사업가에게 한국은 단지 어머니의 나라만이 아니라 ‘기회의 땅’으로도 받아들여진 듯하다. 그러나 몇 년 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눴을 때, 그는 한국에서의 다소 뜨악한 반응에 실망한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과거의 스카-펑크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스타일을 전환하면서 낸 최근 앨범 중 ‘한국은 너무 멀어’ 같은 제목에서 그런 느낌을 읽어낸다면 지나치게 넘겨짚는 것일까. 그래도 그는 이제 일흔이 다 되신 어머니와 함께 다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먼 길에 오른다.
마이크와 제니의 한국 공연은 지금 미국에서 진행 중인 ‘아시안스 인 록’이라는 3년차 연례 순회공연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5월6일 ‘하이 서울 록 페스티벌’에서 첫 무대가 마련되고, 그 다음날에는 홍대 앞 소극장 ‘쌤(SSAM)’에서 공연이 열린다. 재일동포 다케나리가 이끄는 밴드 나인(Nine)도 합류할 예정이다. 이처럼 곳곳으로 뻗어나간 이민과 이산의 역사는 한 세대를 돌아 출발점에서 다시 만난다. 김필호/한국대중음악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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