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예술상’ 거부 파문 2년만의 무대 “루쉰에게서 영감”
한국사회 혼돈 비판적 조망하는 ‘악의 미학’ 기대
한국사회 혼돈 비판적 조망하는 ‘악의 미학’ 기대
파란의 현대무용 안무가 홍승엽 새 작품 ‘아큐’
한국 현대무용의 정상급 안무가 홍승엽이 2년 만에 신작 〈아큐〉를 무대에 올린다.
루쉰의 〈아큐정전〉은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아큐의 우매함과 그를 둘러싼 허황한 소문의 사회를 풍자한 문학이다. 소문이 미신을 유포하는 사회에서 미신은 근거 없는 믿음이며, 반쯤은 두려움에 가깝다. 여기서 홍승엽은 줄거리를 버리고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모티브만 취했다고 한다. “어리석음 때문에 고통이 전이되고 죽음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죽음의 혼란스러움까지. 다소 부담을 덜고 재미를 추구했다. 동시에 어리석음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해보길 원했다.”
원작이 지닌 비판과 풍자가 홍승엽 안무의 밑바닥으로 스며들자, 그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꽃, 고깔, 칼의 뾰족한 이미지를 통해 어리석음을 다채롭게 재현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홍승엽이 재작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 거부를 통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 떠올랐다. “비디오로는 무용을 심사할 수 없다.”(무용 월간지 〈몸〉 2005년 3월호)
공연예술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는 일회성의 시간이 갖는 가치를 묻고, 춤의 시간과 관객의 삶의 시간이 일치하는 가치를 다시 물었다. 이로 인해 그가 대표인 직업무용단 댄스씨어터 온은 주류 무용계에 의해 불이익을 당했지만, ‘올해의 예술상’은 실제로 공연을 본 사람들이 심사하는 보완책을 강구했다. 수상 거부 파문을 겪고 오랜 침묵 끝에 발표하는 작품인지라 홍승엽은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오해의 소지가 일 것 같은 염려가 있다”며 “루쉰은 좋아하는 작가이고 이 작품은 오래전부터 구상해 왔다”고 선을 그었다.
예술가의 내면은 사회적 내면이다. 지금까지 홍승엽 안무는 극도의 세련미, 음악을 완벽히 통제하는 춤 구성, 독특한 유희 감각 같은 유미주의의 성격이 짙었다. 〈아큐〉는 거기에 더해 현대 한국사회의 혼돈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시야가 결합되는 느낌이다. 지난 8일 아차산역 지하연습실에서 공개된 장면은 좀더 확장된 사회적 비전을 엿보게 했다. 꽃은 날카로운 무기였고, 칼 꽂힌 시체는 타자의 명령을 받는 물풀 같은 존재였다. 깊은 상처 주고받는 사회에서 수동적인 개인은 이제 고깔조차 까마귀 무리처럼 착용하고 혼자만의 환상 현실에 갇힌다. 칼자루를 잃고 칼날 아래 놓인 존재의 어리석음이란 것이다. 그 사육하고 통제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짐짓 홍승엽은 “큰 울타리는 선명하게 주어지지만, 해석의 여지는 열어두었다”고 말한다. 이전 〈두 개보다 많은 그림자〉에서 폭력의 암시나 〈말들의 눈에 피가…〉의 핏물 은유가 취향적인 의미의 위악이었다면, 이제 사회적 관심을 담아낸 악의 미학이 전면화하고 있는 셈이다. 질문을 던진 삶의 여파가 반영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꽃, 고깔, 칼의 3개 장이 어떤 공연문법으로 다가올지, 그리고 우리가 선호하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우리를 흔들어놓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공연은 6월9일(금) 저녁 8시, 10일(토) 오후 4시 엘지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글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사진 댄스씨어터 온 제공
글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사진 댄스씨어터 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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