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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상상력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등록 2006-05-11 20:37

안창홍 ‘얼굴’전 사진 해체와 덧칠로 불러낸 죽음의 이미지
김을 ‘잡화’전 일상의 잡스런 파편 모은 기억의 회로도
두 중견 작가 나란히 근작전

화단의 40~50대 작가들은 예전엔 한창 화랑의 전시 주문을 받기 바빴을 연배지만 요즘은 휘몰아친 젊은 작가 바람 속에 쪼그러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중견은 여전히 살아있다! 늦봄 서울 인사동 화랑가에 나타난 녹록지 않은 두 중견들의 근작들이 이런 항변을 하는 듯하다. 사비나 미술관에 ‘얼굴’전(6월7일까지·02-736-4371)을 차린 작가 안창홍(53)씨와 인사동 갤러리 쌈지에 회심의 유화전 ‘잡화’(29일까지·02-736-0088)를 꾸린 목수 출신의 작가 김을(52)씨다. 막역한 두 작가의 근작들은 인간, 죽음, 일상에 대해 여전히 불온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번뜩거리면서도 그림 형식에 대한 노련한 숨고르기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도발적 원색과 악마적 취향의 인간, 동물 군상들을 주로 그렸던 안씨의 전시장은 마치 납골당이나 거대한 무덤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일으킨다.

근작들은 덧없는 시간의 흐름과 죽음 등과 결부된 이미지들을 무당처럼 불러들이고 있다. 익명의 인물 증명사진과 빛바랜 유년기 소풍 기념 사진들에 잉크를 뿌려 덧칠한 〈봄날은 간다〉 〈사이보그의 눈물〉(왼쪽 위) 〈사이보그〉(왼쪽 아래) 등 일련의 연작들이 그렇다. 관 속의 망자들을 부르듯 그는 사진 속 사람들의 눈을 주검의 감은 눈처럼 바꿔버리거나 인형의 눈 같은 의안을 박아넣어 바싹 마른 엄숙한 표정을 한 고대 그리스, 이집트 시대 인물상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가족이나 자신의 자화상 사진을 잘게 조각내어 다시 붙이는 방법으로 해체된 얼굴상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어느 것이든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상념, 그리고 영원한 휴식이자 시간의 정지상태인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표현한다.

80년대 초 그의 기념비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눈과 입에 검은 구멍 뚫린 가족 그림의 변주된 형태라고도 할 이런 작업들은 정작 그렇게 매끄럽지는 못하다. 강렬한 원색과 도발적 이미지로 승부해온 화가는 시간을 화석화시킨 산물인 사진매체쪽에서 새 영감을 길어 올리려 했지만 천상 화가인 그의 장점을 넘어선 외도에 더욱 가깝게 비친다. 사실 사진매체 작업보다도 더욱 솔깃하게 다가오는 것은 지하의 인도 인상과 양귀비 꽃밭 그림들이다.

2002년부터 쉼없이 자기 주변 일상을 드로잉해온 김을씨의 유화 근작은 그의 그림 이력의 한부분을 아퀴짓는 작업이다.

그가 여행한 외국 정경이나 조야한 광고지의 이미지, 이전에 전시했던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 등을 그린 작업들은 전시제목처럼 잡스런 그림이다. 요사이 젊은 작가들이 흔히 쓰는 키치적 이미지, 혹은 메마른 사실적 풍경화처럼 간단해 보이지만 붓질과 구도, 화면의 구성 등을 눈여겨 보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임을 알게 된다. 4년 가까이 일기쓰듯 일상을 드로잉인 해온 작업들이 조금씩 모이고 집적되어 쌓여 특정한 주제 대신, 그림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머릿 속 회로도를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사람의 관계,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이 모노톤의 유화작업(오른쪽 아래)에 드러난다. 드로잉 파일을 확대한 풍경연작, 락카 스프레이를 뿌려 마치 조잡한 판화광고물처럼 보이게 한 팔 없는 알몸의 여성상(오른쪽 위) 등은 팝아트 같지만, ‘화개운류(꽃 피고 구름은 흐른다)’ 등의 한자조어와 어울려 작가의 혼재된 상상력을 풀어낸다. 두 작가의 전시는 나이의 벽을 넘어 여전히 미술의 동시대성을 고민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에 반영하려는 집착과 고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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