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유학서 윤이상 만나 연주여행 따라다녀
난해한 곡 ‘감상의 길잡이’ 노릇 하고 싶어
난해한 곡 ‘감상의 길잡이’ 노릇 하고 싶어
[이사람] ‘어려운 음악회’ 준비하는 홍은미씨
홍은미(48)씨는 윤이상 음악 전문가다. 윤이상한테서 그의 음악세계를 직접 배운 유일한 학자다. 독일 유학 준비 전까지 홍씨에게 윤이상은 “가곡집에 나오는 옛날 가곡 작곡가” 정도였다.
“유학 가기로 한 데트몰트음대 교수님께 ‘뭘 준비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다른 건 필요없고 윤이상 음악이나 열심히 듣고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니 이 양반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알지?’ 하고 생각했었죠.”
도서관을 뒤졌더니 다행히 윤이상의 제자들(강석희·백병동 등)이 개인 돈으로 사다놓은 엘피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만큼 윤이상은 대한민국에서 금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 가보니 윤이상은 위대한 작곡가이자 저명인사였다.
“독일 전역에서 선생님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더라구요. 많은 학자들이 그의 음악세계를 연구하고 있었구요. ‘빨갱이’인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쫓아다녔어요. 서양음악을 구태의연하게 모방하는 창작이 아니라 사상이 들어있는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됐죠.”
윤이상을 직접 만나게 된 것은 독일어로 나온 〈윤이상의 음악세계〉(한길사)를 번역하면서부터였다. 독일 학자들의 언어가 너무 어려워 직접 설명을 들으려고 찾아간 것이다. 전공을 음악학으로 바꾼 그는 선생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연주여행을 따라다니며 그의 음악세계를 연구했다.
“선생님이 무척 반가워하셨어요. ‘독일사람들에게는 백마디 해야 하는 걸 너한테는 한마디만 해도 알아들으니 너무 좋다’고 하셨죠.”
서울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음악사와 미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요즘 현대음악의 문턱을 낮추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오는 19~21일 경기 파주 헤이리 커뮤니티하우스에서 열리는 ‘어려운 음악회’에서는 작곡가들의 작품세계를 청중들에게 들려주는 ‘감상의 길잡이’로 나선다.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이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악기로 표현했다고들 하는데, 그것도 현대음악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복잡한 현대사회를 반영하는 현대음악은 일정하게 난해할 수밖에 없죠. 그동안 ‘쉽게 듣는 현대음악’이다 ‘하룻밤에 듣는 현대음악’이다 해서 청중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만 했는데, 오히려 오도한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음악회 제목을 ‘어려운 음악회’라고 지은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하지만 선곡은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곡을 위주로 했다. 쇤베르크와 드뷔시(19일), 윤이상(20일), 쇼스타코비치·리게티·백병동(21일)의 곡을 연주하는데, 이 가운데 윤이상의 음악은 그가 직접 선곡한 것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영어가 어려울 수 있지만, 영어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은 아니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클래식도 어려워했잖아요. 조금만 노력하면 현대음악과도 친해질 수 있습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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