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불상·자기·고문서 등 일제 피한 명품 100여점 엄선
‘훈민정음’ 등 국보 수두룩…간송 문인화 현판글씨도 일품
‘훈민정음’ 등 국보 수두룩…간송 문인화 현판글씨도 일품
탄생 100돌 특별전
‘간송이 한국 미술사의 전부는 아니지만 간송 없이 한국 미술사는 성립할 수 없다.’ 우리 문화사의 보루라는 간송미술관(02-762-0442)이 낳은 불변의 진리다. 세태와 가치관이 표변하는 지금 이땅에서 성북골 들머리의 이 작은 미술관은 문화의 가치를 변함없이 지켜왔다. 그 이면에는 ‘꽃이 늘 피게 하려면 누군가는 꽃을 가꾸어야 한다’는 최완수 연구실장의 굳은 신념이 있었다. 21일부터 풀꽃 내음 가득한 이 미술관에서 명품 잔치가 한창이다. 일제시대 금쪽같은 전통 서화와 고문서들을 수집해 미술관의 터전을 세운 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탄생 100돌을 기리는 봄 특별전(6월4일까지)이다. 간송이 평생 모은 명품들을 영역별로 엄선한 최고 수준의 작품 100여점을 내놓았다. 녹음 속의 전시장은 개막 첫날부터 관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응접실 크기의 1층 공간은 조선시대 서화 공간이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이 일궈낸 18세기 문화중흥기 진경 그림의 걸작들과 글씨들을 중심으로 서화 명품들이 내걸렸다.
선조의 딸인 정명공주가 사방 크기 73㎝나 되는 대폭으로 쓴 ‘화정(華政:빛나는 정치)’ 글씨가 눈을 휘어잡는다. 안평대군의 유려한 친필 글씨, 추사의 걸작 ‘명선(茗禪)’, 백하 윤순 시첩, 동국진체의 대가 이광사의 〈서결〉 등을 보고 나서 전시실 둘레를 돌며 18세기 대가인 단원, 혜원, 겸재, 관아재 조영석의 그림들을 본다. 떨어지는 버들잎을 보며 인생무상을 깨닫는 선비의 모습을 담은 〈마상청앵도〉, 벼루와 붓이 흩어진 방 안에서 생황을 부는 선비의 모습을 담은 〈월하취생도〉는 분명 단원 김홍도의 자화상 격이다. 웃는 듯, 홀기는 듯 여인의 신비스런 표정이 〈모나리자〉를 능가하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도 시선은 한참 머물러야 한다.
잠겼던 시선은 전시장 후면에 걸린 겸재 정선의 대폭 그림 〈청풍계〉와 금강산 내금강 경치를 파노라마처럼 압축해 놓은 〈풍악내산총람〉, 낚시꾼과 나무꾼의 대화 모습을 담은 이명욱의 저 유명한 〈어초문답도〉에서 풀린다. 그 아래 조선후기 최고 수장가인 김광국의 석농화첩이 다수 공개되어 있다. 안견·석경·강희안 같은 조선초 화인들의 관념산수화부터 조영석의 꼬장꼬장한 노승 그림(아래 왼쪽)과 최북, 이광사의 산수그림에 이르기까지 화첩 감상은 조선 미술사 소품 기행이나 다름 없다.
2층은 불교미술의 아련한 세계를 엿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6세기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은 뚝섬 출토불상과 더불어 우리 불상사의 시원이 된다. 아낙네 얼굴 같은 금동보살 입상의 정겨운 표정, 금동삼존불감이 눈을 흐뭇하게 한다. 도자기는 간송이 36년 일본까지 날아가 영국인 수장가 개츠비로부터 사들인 청자오리 모양 연적과 원숭이 모양 연적(아래 오른쪽 위)이 압권이다. 연꽃잎 줄기를 물고 있는 오리나 어미의 볼을 손바닥으로 비비는 새끼 사이의 모정이 엿보이는 원숭이 연적은 잡티 없이 맑고 푸른 발색으로 매혹한다. 상감청자의 최고봉 운학문매병과 풋풋한 진홍빛 국화문을 머금은 청화백자 양각진사채 난초국화무늬병도 빼놓을 수 없다.
전시의 끝맺음은 정갈하다. 국보 중의 국보라는 〈훈민정음〉(아래 오른쪽 밑), 〈동국정운〉 등의 한글 고문헌과 혜원의 풍속도첩, 겸재의 경교명승첩, 긍재 김득신의 풍속도를 보고 나서 19세기 대가 김수철의 펜화 같은 꽃그림, 간송의 빼어난 문인화(맨 위)와 친우들에게 써준 현판 글씨를 보고서야 동선은 갈무리된다.
‘우리 문화유산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사설 컬렉션’이라는 강관식(한성대 교수) 연구위원의 자부처럼 출품작들은 대부분 분야별로 미술사 연구의 기준이 되는, 이야깃감이 넘치는 유물들이다. ‘문화광복’을 염원한 간송의 수집 열정을 바탕으로 60년대 이후 최완수 연구실장을 비롯한 후학들의 연구성과가 아롱져 있는 셈이다. 71년 첫 전시 이래 집중 연구한 겸재, 단원의 진경 화풍 작품들을 전시장 곳곳에 내걸어 민족미술사에 대한 집념을 내비친 것도 그러하다. 한편 간송과 절친했던 혜곡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성북동 옛집(미술관 아래쪽·02-3675-3401~2)도 28, 31, 4일 나들이 길목으로 개방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제공 간송미술관
‘우리 문화유산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사설 컬렉션’이라는 강관식(한성대 교수) 연구위원의 자부처럼 출품작들은 대부분 분야별로 미술사 연구의 기준이 되는, 이야깃감이 넘치는 유물들이다. ‘문화광복’을 염원한 간송의 수집 열정을 바탕으로 60년대 이후 최완수 연구실장을 비롯한 후학들의 연구성과가 아롱져 있는 셈이다. 71년 첫 전시 이래 집중 연구한 겸재, 단원의 진경 화풍 작품들을 전시장 곳곳에 내걸어 민족미술사에 대한 집념을 내비친 것도 그러하다. 한편 간송과 절친했던 혜곡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성북동 옛집(미술관 아래쪽·02-3675-3401~2)도 28, 31, 4일 나들이 길목으로 개방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제공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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