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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훈 사진집 ‘산골분교 운동회’…새달 27일까지 전시회도
운동회 펼침막이 걸린 교문. 지팡이 짚은 노인과 손주일 법한 취학전 아이가 들어간다. 긴 그림자와 텅 빈 운동장으로 미루어 운동회 시작 전이다(표지사진).
사진집 <산골분교 운동회>(가각본 펴냄), 강재훈의 두번째 분교 이야기다. 분교와 16년째 정분 난 한겨레신문 사진부 강재훈 선임기자의 카메라에 잡힌 그곳 운동회. 청명한 가을의 하루 흥성스러운 표정 너머 나머지 나날들이 슬프다. 전교생이라야 10명이 안 되고 이골저골 사람들 다 모여도 사오십 명밖에 되지 않는 분교마을. 운동회날만은 참깨들깨, 무배추 밭을 뿌리치고 아이들과 함께 온마을 사람들이 함께 뛰고 달리고, 웃고 떠드는 날이다.
청군백군으로 나누어 뛰고 달리고, 목 터져라 하는 응원은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높은 산, 느티나무 배경이 다르고, ‘산넘고 물건너’ ‘굴렁쇠를 굴려라’ ‘비석치고 달리기’ 등 시골스런 경기 이름이 다르다. 뭐니뭐니 해도 규모가 작다. 달포를 준비한 부채춤에는 남자애들이 여자한복을 입고 끼어야 하고, ‘지게 지고 아이 지고’ ‘앵두나무 우물가에’ ‘터질 때까지’ ‘책보를 싸자’에는 주민들이 합세해야 성사된다.
운동회를 찍으러 온 기자도 ‘손님 찾아 달리기’ 종목에 불려나가고, 때로 부모가 오지 않은 아이의 ‘하루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일 거다. 사진집에는 어린이가 반, 청년은 없고 노인과 여인네가 반이다. 강 기자는 “필름을 정리한 자연스런 결과”라면서 “분교 운동회에 농촌 현실이 고스란히 비친다”고 말했다. 사진집 말미, 무슨 경기를 앞둔듯이 한줄로 늘어선 노인들. 이른 아침 손주와 함께 온 노인장도 끼어있을 터이다. 우거지국이 끓는 가마솥에는 지난 밤부터 불을 지켜온 남정네의 정성이 담겼고, 점심녘 붐볐던 느티나무 아래는 어스름녘 뒤풀이장이 되어 고달픈 산골살이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1999~2005년 6년동안 강원, 경기북부 9개 분교를 돌았다. 강 기자는 반짝 열리는 운동회 취재를 위해 밤을 도와 차를 몰고 오갔다고 전했다. 사진작업을 15년 넘게 해온 탓일까. 찍힌 사람들 모습에는 틈입자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다. 전시회는 6월1~27일(월요일 제외) 갤러리 온에서 열린다. (02)733-8295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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