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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필진] 연영석 - 민중음악은 계속된다

등록 2006-06-01 16:44수정 2006-06-01 17:02


지난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심사위원 특별상 시상 순서.

사회자의 입에서 낮선 이름이 흘러나온다. "연영석"

자신이 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지, 시상식장을 빠져 나오다 황급히 뛰어 들어와 쑥스러운듯 잠시 수줍어 하던 그는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저에게 끊임없는 창작의 욕구를 만들어 주는 억울한 사회에 대해서 끊임없이 감사드립니다. 사회가 어두울수록 더욱 열심히 작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간절히 (작사/작곡 : 연영석)

1.
누구는 뺏고 누구는 잃는가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앞서서 산 자와 뒤쳐져 죽은 자
그 모든 눈에는 숨가쁜 눈물이
왜이리 세상은 삭막해 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2.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사람과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사람들
모두들 제각기 제 길을 가지만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만 갖는 세상

3.
누구를 밟고 어디에 서는가
왜 같은 우리가 달라야 하는가
살아 남기 위해 그렇다 하지만
그 모든 눈에는 고독한 눈물이
왜 이리 갈수록 지쳐만 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일한만큼 갖는 세상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마음만큼 갖는 세상

스스로를 '게으른 피'라 칭하는 연영석은 처음 부터 뮤지션을 지향하던 이는 아니었다.

미대 조소과에 입학해 '공부는 안하고 세상사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인해 소위 아스팔트 위의 학생이 되고 게으른 관계로 세상의 중심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졸업후 93년 '문화예술생산자연합' 창립에 참여하여 노동문화운동을 하던 중 우연히 '문화예술생산자연합' 회원 단체인 락 밴드 'may-day'에 가사를 써주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소속 단체 해산의 충격으로 인해 고뇌의 시간을 보내던 중 순전히 자기 위로의 목적으로 만든 최초의 곡 '라면'이란 노래를 시작으로 음악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락 밴드 '천지인'의 콘서트 공연 중 게스트인 '윤도현'의 펑크로 인해 얼떨결에 '역사적'인 데뷔무대를 갖게 된 연영석은 98년 남한사회 최초의 1인 조직 '문화노동자모임' 결성하고 노래를 통한 문화운동을 고민하던 중 문화노동자의 독립레이블인 '맘대로 레이블' 결성하여 '구조조정의 반 민중성과 대중의 경제적 빈곤'을 노래한 첫 노래 모음 '돼지

다이어트'를 발매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 시작한다.

투쟁 현장에서 활발한 공연 활동을 벌이던 연영석은 2001년 2집 '공장'을 발표한다. 삶과 어두운 사회 현실에 대한 진솔한 고민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 완성도의 측면에서 '안치환 4집'이후 민중음악계 최고의 명반이라는 몇몇 평론가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대부분의 음악 관계자들은 이 음반이 지니는 음악사적 의미를 무시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애당초 세상의 주목과 찬사가 아닌 현실과 투쟁을 노래하기 위해 음악을 시작한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철회투쟁 등에서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쳐나간다. 2005년에는 3집 '숨'을 발표한 그는 지금 현재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문화노동자모임'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의 노래를 삶속에 뭍고자'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영석의 음악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가사의 진솔함과 소박함이다. 지난날의 민중가요가 거대 담론에 파묻히는 감이 없지 않았다면 연영석은 현실속 삶의 평볌한 단면을, 결코 평범치 않은 사색을 바탕으로 현실의 본질을 찌르는 노래를 부른다. 이때문에 소박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음악이 완성되고에 듣는 이에게 강한 호소력

을 지니는 것이다. 이런 점은 2집에 수록된 '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밥 (작사/작곡 : 연영석)

1.
밥만 먹고 살 수가 있나요
그저 밥만 먹고 살 수가 있나요
밥도 먹고 살기가 힘드네요
그저 밥만 먹고 살기도 힘드네요

내가 세상에 살고 사는 이유
밥만 먹기 위한 건 아냐
나도 나에게도 누구 못지 않은 꿈이 있었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작지 만은 나의 꿈을 키우고 싶었어

2.
아 나도 꿈을 꾸긴 꿨었나
나에게도 꿈이란 게 있었나
아 나도 꿈을 꾸긴 꿨었나
나에게도 꿈이란 게 있었나
그래 나는 저주받은 땅에 꿈도 잊었어
한치 두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 땅에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벅차 하면서
저주받은 청춘의 시간을 보낸다

오 나의 밥
오 나의 밥
오 나의 밥
오 나의 밥

연영석의 음악의 또다른 장점은 바로 '음악적 세련됨'이다. 지금까지 민중음악들의 단점으로 지목되어온 투박함을 극복하고 프로그레시브적인 섬세함을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때 연영석은 민중음악계 내에서 똑같이 '락'이라는 형식을 사용하고 있는 '천지인'에 비해 더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고명원이다. 2집 '공장'에서 프로듀서와 레코딩/믹싱 엔지니어, 그리고 1, 2집의 기타 연주를 맡은 그는 현재 민중음악계열에서 주목할만한 편곡자이자

기타리스트이다. 고명원의 세련된 편곡과 기타연주가 있었기에 연영석의 다듬어 지지않았지만 재기넘치는 송라이팅이 빛을 발할 수 있었고 이는 고스란히 앨범의 음악적 완성도와 연결된다.

연영석에게 볼수 있는 그만의 미덕증 하나는 바로 음악과 행동의 일치라 할 수 있다.

그의 홈페이지(http://www.lazyblood.com/)에 올라온 그의 글을 살펴보면 그에게 있어 현실에 대한 인식과 투쟁 그리고 음악적 창작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닌, 삶속의 하나로 수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자동차운전학원. 파업31일차라 한다. 이천역에서 30-4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사업장이다. 도심에 있는 운전면허학원과 달리 주변에 건물이 거의 없는 숲에 둘러 쌓인 곳이라 무척 고요해 보였다. 입구에 다가가자 내 눈을 먼저 끄는 것은 위장폐업분쇄하자라는 글씨였다. 그리고 처음 대면하는 조합원들... 여주, 이천 민주노총지구협의회 권오영의장님은 열심히 음향을 설치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거의 음향하는 아저씨다. 하여간 어려운 조건에서도 무척 열심이다. 그래서인지 동지를 보면 왠지 머리가 숙여진다.

'파업투쟁문화제' 13명의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사업장이라 주목받지도 못하고 조합원 스스로가 학예회 수준도 안 되는 공연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있을 건 다 있었다. 조명 3개. 그 동안의 어려운 조건과 투쟁을 말해주듯 너무도 낡아버린 지구협의회의 음향. 작지만 정성이 깃든 무대.

사전 집회가 진행되고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사회를 보는 문화부장님의 입담이 무척 분위기를 즐겁게 했다. 연대를 온 농협에서 율동공연이 있었고... 나에게 관심을 이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13명의 조합원들이 2개조로 나누어 준비한 짧은 두 편의 연극이었다. 두 편 모두 실제 상황을 표현한 것이라 하던데..

하나는 사장의 엽기적 행각을 그린 것이고 또 하나는 이에 맞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위장폐업이 진행되기까지를 그린 것이었다. 황당하다 못해 엽기적인 사장의 행각. 이천 시장까지 출마했었다는 사장놈의 행각은 보고 있자니 욕지거리가 절로 나온다. 뻑하면 임금 체불에 직원들이 쉬는 걸 보지 못하는 심보 때문에 개벼룩 잡는 일 시키기, 자기차 세차시키기, 눈오는 날 새벽에 집합시키고 눈치우기, 동생 이사간다고 이삿짐 나르게 하기, 선거에 출마하고 강제로 선거운동 동원하기, 연료비 아낀다고 땔깜 나무 해오기, 개 뛰쳐나갔다고 개 잡아오게 하기 등등 한마디로 개판이었다고 한다. 노동자가 자기 머슴정도로 밖에 안보였는지. 헉, 오죽하면 그런 일들 때문에 수강생들을 교육할 인원이 부족했었다니. 나아가서 아예 토요일날은 퇴근 안 시키고 그런 잡다한 일들을 하는 날로 정해버렸다나.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할 줄 아나 씨벌놈아"

그래서 참다못해 노조를 만들었는데 개버릇 남 못 준다고 배울 건 다 배워 가지고 위장 폐업까지. 누군가 지도해준 것 같지도 않고 연극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연극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랜만에 신선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율동까지. 한마디로 전조합원이 다 참여한 연극과 율동. 공연을 다니다 보면 가수 초청해 놓고 모든 걸 다 때우려는 조합 보다 파업 기간 동안 자신들이 여러 가지로 해보려는 조합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게 노동문화 아닌가! 조합원들도 매우 밝아 보이고 그래서 인지 오랜만에 내게 힘을 주는 연대가 되었던 것 같다. 요즘 투쟁도 많고 공연도 많아졌지만 왠지 내가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기억은 더욱더 줄어가는 것만 같다.

3부 내 차례가 되었다. 멀리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과 나 같은 사람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만 공연하는 줄 알았는데 이곳까지 와줘서 너무도 고맙다는 내겐 좀 과분한 소개를 받으며 무대위로 올라갔다. 그래서인지 모르는 노래인데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부분을 따라 부르려고도 하고 박수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내 입 속으로 하루살이가 계속 돌격을 해 들어오는 게 아닌가! 노래 부르며 내 뱉을 수도 없고 거참!! 먹을 수 밖에...

모든 행사가 끝나고 조촐한 뒷풀이가 진행되었다. 돼지고기에 김치. 막걸리 그리고 수박... 뒤풀이하는 동안 야간(?) 물풍선 던지기가 진행되었다. 문화부장님이 타격대상이 되고 사람들은 저마다 미운놈(?)들을 부르며 풍선을 던졌다. 옆에 있던 지구협의회 의장님이 음향이 좋지 못해서 내게 미안하다고 한다. 음향이 좋으면 노래부르기엔 좋기야 하겠지만 그게 어디 탓해서 될 일이던가. 다음엔 좀더 나은 음향을 가지고 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고 한다.

하여간 내겐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 공연이었다. 여느 파업장에서도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그들이 파업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 저 깊고도 질퍽한 일상의 늪에 빠져드는 게 아니라 지금의 에너지와 같이 일상을 딛고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자 하는 참 노동자가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하루에도 수십장의 음반이 찍히는 한국 대중음악계이지만 그 많은 음반들 중에서 진정 가치있는 판은 정말 드물다. 그리고 형식적 완성을 넘어 진정 창작자의 진실한 감정이 절절히 묻어나는 음반은 이제 희귀할 데로 희귀해져 거의 '국보 수준'의 희소성을 지니고 있는게 현실이다. 제 아무리 외국의 인기곡을 표절 혹은 셈플링하여 현란한 구성과 무대를 통해 선보인다 하더라도 창작자의 진솔함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결코 듣는이의 가슴을 울릴 수 없는 법이다. 연영석의 음악이 더욱 가치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노

찾사, 꽃다지 등 지난 시대를 풍미했던 민중가수들이 별다른 창작 활동을 하지 않는 실정이기에 연영석이 지니는 의미는 더욱 큰 것이다. 불의한 현실을 살아가기에, 가슴을 울리는 진솔한 음악이 더욱 그리운 때이기 그의 노래가 귀하게 느껴진다.

연영석이 부르는 '해방의 소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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