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기념음반 ‘대한민국 국악 응원가’ 만든 김영일씨
사진가인 김영일(45·사진)씨는 운명처럼 국악에 빠져들었다. 인물 사진을 찍어달라는 한 잡지사의 청탁을 받고 소리꾼 채수정(36)씨를 스튜디오에서 만난 것이 지난 1994년. “어색하게 서 있지 말고 소리나 하나 하죠.” 사무적으로 한마디 하고 카메라에 눈을 갖다 댄 김씨는 결국 사진을 찍지 못했다. 생전 처음 육성으로 들어보는 판소리의 오묘함에 몸이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저도 원래는 라디오 듣다가 국악 나오면 돌려버리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수정씨의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죠.”
소리꾼 찍으러 갔던 사진가
판소리에 ‘운명처럼’ 빠져 국내 유일 국악 음반사 차려 “기록하고 싶은 본능”이 발동했다. 이동식 고성능 녹음기 ‘나그라’를 사들여 전국의 명창들을 찾아다녔다. 지난 6년 동안 녹음한 원본 테이프만 300여개나 된다. 지난해에는 국내 유일의 국악 전문 음반사 ‘악당(樂黨) 이반’을 설립했다. 이를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사진·영상회사 그루비주얼의 대표직을 후배에게 물려줬다. 대신 그루비주얼에서 번 돈을 십일조처럼 떼어 음반사에 투자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그의 집안은 17대째 계동에서 살아왔다) 회사 건물 옆에 ‘소리재’라는 이름의 한옥을 지어 소리꾼들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지금은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송희(79)씨가 2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강습실로 쓰고 있다. 한 달에 한번, 소리꾼들끼리의 작은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회사 안에 역시 국내 유일의 국악 전문 녹음실을 차렸다. 그는 ‘퓨어 리코딩’ 방식을 고집한다. 판소리든 산조든 한 호흡으로 끝까지 녹음을 마친다. 중간에 삐끗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소리를 따다가 이어붙이거나 하지 않는다. “국악도 점점 라이브를 못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꼴통’ 소리를 듣더라도 이런 고집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판소리로 시작한 그의 국악 사랑은 산조와 정악으로 ‘진화’하고 있다. 120여개에 이르는 국내 가야금 산조를 모아 전집을 만드는 게 첫번째 목표다. 가야금이 끝나고 나면, 거문고, 해금, 대금, 피리, 아쟁 등의 산조를 정리할 계획이다.
“산조는 19세기에 탄생한 엄연한 현대음악입니다. 지금도 당대와 호흡하면서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요. 그런데 누구도 정리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산조 정리는 저희 회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다음은 “세상에서 가장 미니멀한 음악”인 ‘가즌 회상’(정악의 하나로 왕의 행차에 사용한 음악)을 음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뇌호흡 등의 배경음악용으로 수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6년간 전국 명창소리 채록
“돈 못벌지만 문화 지키는 ‘꼴통’도 하나쯤 있어야죠” 물론 돈은 벌지 못한다. 가야금 산조 음반은 1년 동안 20개도 팔지 못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죠. 이 땅의 문화가 어딘가에 모여 있어야 후학들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죠. 그게 한 나라의 문화 저력이구요. 그 사이 저는 서서히 망해가겠지만 말이죠.(웃음) 메이저급 음반사들도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최근 〈대한민국 국악 응원가〉라는 월드컵 기념 앨범을 냈다. 아드보카트 감독을 위한 헌정곡 ‘파랑새’, 연극배우 출신인 또랑광대 슈퍼댁의 ‘아줌마 월드컵’, 가야금과 북, 랩과 힙합이 어우러진 ‘대한민국 응원가’ 등 12곡을 실었다. 토고와의 경기가 열리는 13일 광화문에서는 음반제작에 참여한 소리꾼들이 국악 응원가를 부르며 한판 푸지게 놀 작정이다. 8개의 비보이팀과 가수 한영애도 동참한다. (02)745-6111.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판소리에 ‘운명처럼’ 빠져 국내 유일 국악 음반사 차려 “기록하고 싶은 본능”이 발동했다. 이동식 고성능 녹음기 ‘나그라’를 사들여 전국의 명창들을 찾아다녔다. 지난 6년 동안 녹음한 원본 테이프만 300여개나 된다. 지난해에는 국내 유일의 국악 전문 음반사 ‘악당(樂黨) 이반’을 설립했다. 이를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사진·영상회사 그루비주얼의 대표직을 후배에게 물려줬다. 대신 그루비주얼에서 번 돈을 십일조처럼 떼어 음반사에 투자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그의 집안은 17대째 계동에서 살아왔다) 회사 건물 옆에 ‘소리재’라는 이름의 한옥을 지어 소리꾼들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지금은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송희(79)씨가 2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강습실로 쓰고 있다. 한 달에 한번, 소리꾼들끼리의 작은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회사 안에 역시 국내 유일의 국악 전문 녹음실을 차렸다. 그는 ‘퓨어 리코딩’ 방식을 고집한다. 판소리든 산조든 한 호흡으로 끝까지 녹음을 마친다. 중간에 삐끗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소리를 따다가 이어붙이거나 하지 않는다. “국악도 점점 라이브를 못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꼴통’ 소리를 듣더라도 이런 고집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판소리로 시작한 그의 국악 사랑은 산조와 정악으로 ‘진화’하고 있다. 120여개에 이르는 국내 가야금 산조를 모아 전집을 만드는 게 첫번째 목표다. 가야금이 끝나고 나면, 거문고, 해금, 대금, 피리, 아쟁 등의 산조를 정리할 계획이다.
“산조는 19세기에 탄생한 엄연한 현대음악입니다. 지금도 당대와 호흡하면서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요. 그런데 누구도 정리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산조 정리는 저희 회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다음은 “세상에서 가장 미니멀한 음악”인 ‘가즌 회상’(정악의 하나로 왕의 행차에 사용한 음악)을 음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뇌호흡 등의 배경음악용으로 수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6년간 전국 명창소리 채록
“돈 못벌지만 문화 지키는 ‘꼴통’도 하나쯤 있어야죠” 물론 돈은 벌지 못한다. 가야금 산조 음반은 1년 동안 20개도 팔지 못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죠. 이 땅의 문화가 어딘가에 모여 있어야 후학들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죠. 그게 한 나라의 문화 저력이구요. 그 사이 저는 서서히 망해가겠지만 말이죠.(웃음) 메이저급 음반사들도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최근 〈대한민국 국악 응원가〉라는 월드컵 기념 앨범을 냈다. 아드보카트 감독을 위한 헌정곡 ‘파랑새’, 연극배우 출신인 또랑광대 슈퍼댁의 ‘아줌마 월드컵’, 가야금과 북, 랩과 힙합이 어우러진 ‘대한민국 응원가’ 등 12곡을 실었다. 토고와의 경기가 열리는 13일 광화문에서는 음반제작에 참여한 소리꾼들이 국악 응원가를 부르며 한판 푸지게 놀 작정이다. 8개의 비보이팀과 가수 한영애도 동참한다. (02)745-6111.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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