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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아저씨들의 테크노, 기막힌 ‘부조화의 조화’

등록 2006-06-04 21:06

40·50대 남자 둘 사회비판 담긴 가사를
상큼한 댄스곡으로 불러 대중·평단에 ‘신선한 충격’
‘펫 샵 보이스’ 9번째 앨범〈펀더멘털〉

영국 출신 2인조 테크노 댄스 그룹 ‘펫 샵 보이스’는 여러모로 댄스 음악의 상식을 깬다. 쉬운 가사에 단순한 리듬, 젊다 못해 앳된 가수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펫 샵 보이스’는 댄스 음악의 정형과는 한참 멀다.

일단 이들은 댄스 음악인의 정년을 훌쩍 넘었다. 보컬을 맡은 닐 테넌트는 54년생이고, 다른 성원인 크리스토퍼 로는 59년생이다. 이들의 가사는 댄스 음악임에도 시적이면서, 동시에 강렬한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음악은 어느 나이트클럽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명쾌하지만, 꼼꼼한 감상자에게는 그 속에 깊은 결을 들려준다. 댄스 음악에는 고개를 돌리는 평론가들도 이들의 노래에는 귀를 기울인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최민우는 음반을 소개하면서 “지극히 단순하면서 절대 단순하지 않은 팝송들”이라고 평했다.

이 별난 그룹이 아홉번째 음반 〈펀더멘털〉을 내놓았다. 2002년 8집 〈릴리즈〉를 내놓은 지 4년 만이다. 여전히 신시사이저를 위주로 한 음악은 화려하고, 테넌트의 목소리는 차갑고 기계적이다. 현란한 전자음과 차가운 비트,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 사이의 균형은 감쪽같다. 첫 곡인 ‘사이컬로지컬’은 강렬한 일렉트로 비트와 묘하게 어울리는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들려주고, 두번째 곡 ‘더 소돔 앤드 고모라’는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 곡 ‘인테그럴’은 댄스 음악이면서도 대곡의 분위기마저 풍긴다.

이들은 여덟번째 곡 ‘아임 위드 스튜피드’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총리를 세게 꼬집었다.

언뜻 보면 흔한 사랑 노래로 보이는 이 노래는 실은 블레어의 입장에서 부시에게 바치는 ‘연가’다. “너를 티브이에서 보고/ 매일 전화하고/ 대양을 넘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려고/ 아무도 이해 못해/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왜 그와 어울리는지/ 그렇게 멍청한 사람과.” 이 노래의 후반부에 가면 블레어에 대한 비판은 야유를 넘어 ‘놀림’에 가깝다. “물어봐야겠어/ 다른 연인들처럼 말야/ 너 나를 속인 거니?/ 왕자님이 아니었어?”

열번째 곡 ‘트웬티스 센추리’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이들의 미묘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들은 한때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기 위한 침공을 지지했다고 한다. “혁명으로 가는/ 표를 샀지/ 동상이 쓰러질 때 나는 환호했어/ 모두가 몰려왔지/ 썩은 것을 파괴하기 위해/ 그렇지만 그들은 동시에 선한 것도 없애버렸어.”

11번째 노래인 ‘인데퍼닛 리브 투 리메인’은 제3세계 망명자의 처지에서 부르는 노래다. “길을 잃었지/ 너무 오랫동안/ 마치 반생이 걸린 것 같아/ 내가 어디 속한지 알아내는데.”


테넌트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새 앨범이 정치색이 강한 앨범은 아니다”라면서 동시에 “음반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깊이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그는 9·11 테러 이후의 서구 사회의 움직임에 호되게 비판했다.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자유를 포기하도록 종용받는 전체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영국 언론들은 돌아온 전자 음악의 대가에게 헌사를 바쳤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펀더멘털〉은 펫 샵 보이스의 음악적 강점을 확실히 확인시켜 준다”며 새 음반이 “머리와 가슴과 발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성숙하고 사려깊은 작품”이라고 보도했다. 〈선데이 타임스〉는 ‘펫 샵 보이스’가 지금까지 최소한 셋 정도의, 고전이 된 앨범을 냈는데, 새 앨범 덕택에 고전은 네 개가 되었다고 극찬했다.

‘펫 샵 보이스’는 잡지 기자 출신인 테넌트와 건축학을 전공한 크리스 로가 81년 신시사이저 상점에 우연히 만나서 결성한 그룹. 가볍고 상큼한 댄스 음악의 사운드와 건조한 테넌트의 목소리, 심각한 가사가 이루는 ‘부조화의 조화’가 청중과 비평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1986년 첫 음반 〈플리즈〉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그들은 이후 〈인트로스펙티브〉, 〈비헤이비어〉, 〈베리〉 등 음반을 내면서 테크노 음악 속에 자신들의 독특한 색을 솜씨있게 입혀왔다.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정부의 보수적인 움직임에 야유하는 노래를 잇따라 내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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