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미술관 ‘한국미술 100년전’ 2부…교과서식 진열 ‘흠’
1950년대 이후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아는 일반인들은 드물다. 그 역사가 궁금하다면 지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지난 2일 개막한 ‘한국 미술 100년’전 2부(9월10일까지)는 한국 현대미술사 알기에 나름대로 길잡이 노릇을 하는 교육용 전시다.
전시장 진입 통로벽에 있는 작가 신학철씨의 20m짜리 대작 〈한국 현대사-갑돌이와 갑순이〉는 이 전시가 원래 지향했던 역사적 의미를 상징한다. 근현대사의 온갖 질곡과 사건, 문화적 현상들을 잡탕해 기념비적인 덩어리로 그려넣은 이 그림은 서구사조의 짙은 그늘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투해온 우리 현대미술사의 뒤안길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후 전시는 무색무취한 교과서풍의 시기별 작품 배열을 고집한다.
20세기 초부터 한국전쟁 때까지를 다룬 지난해 1부 전시에 이어 한국전쟁 뒤부터 90년대까지를 다룬 이 전시는 특유의 관점 대신 관객의 미술사 학습을 위한 배려와 계몽에 줄곧 애쓴 듯한 인상을 준다. 전후 일어난 50~60년대 초반의 앵포르멜 모더니즘 미술운동,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후반기 퍼포먼스 등의 전위미술과 단색조(모노크롬) 그림, 80년대를 풍미한 민중미술, 90년대 들어 본격화한 포스트모던과 국제화 흐름 등 상식적으로 각 시기를 구분하고 그 시기마다 전통, 인간, 예술, 현실의 네 영역으로 나누어 작품들을 백화점 품목처럼 분류하고 설명한다.
추상조각 최초의 대통령상 수상작인 박종배의 〈역사의 원〉, 신문지를 잘게 해체한 최태신의 전위작업, 밀가루 뿌린 바닥에 닭의 발놀림 흔적을 남긴 이강소씨의 해프닝 작업, 60년대 말 전위 작가들의 퍼포먼스 비디오 영상 등 60~70년대 미술의 흔적이 등장한다. 이승택씨의 69년작인 나부끼는 붉은 천 설치작업 재현물과 80년대 민중미술 대표작인 최병수의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오윤의 대표작 〈통일대원도〉, 90년대 미술 국제화를 상징하는 작가 이불의 애드벌룬 작품 〈히드라-모뉴먼트〉(사진) 등도 나란히 전시장에 놓였다.
미술관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해방 이후 우리 현대미술사의 각 시기를 조명하는 기획전을 치렀다. 때문에 교과서적 정리와 계몽에 치중하는 이 전시는 이전 기획전과 비교해 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구한말, 일제 때를 주로 다룬 1부 전시에서 당대 간판이나 인쇄물, 심지어 영화관, 카페의 분위기까지 재현하면서 입체적 연출을 시도한 데 비해 평이한 진열 중심의 2부는 전시 기획의 흐름이 단절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1부가 끝난 지 1년이 지나도록 전시도록조차 안나왔다는 사실(필자들이 원고를 다 냈는데도) 또한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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