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에 맞추어 이미 다양한 음반이 쏟아졌다. ‘붉은 악마’의 공식 응원 음반부터 국악 음반까지, 피파의 공식 음반인 〈보이시즈〉부터 축구 스타 호나우지뉴가 고른 브라질의 인기가요 음반까지, 각양각색이다. 싱글까지 합하면 30가지가 넘는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알차게 꾸며진 음반 두 개를 살펴본다.
〈사커록〉, 풀로 엮은 집
인디 밴드 11개팀이 의기투합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음반이다. 월드컵과 관련해 출시된 대부분의 음반들이 응원단의 흥을 돋우려는 것이라면, 이 음반은 축구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수록된 13곡은 축구 경기의 시작과 끝까지 극적인 국면들을 하나씩 주제로 잡았다. 경기 초반 중원 몸싸움, 오프사이드, 벌칙차기, 역전, 반칙, 골 등이다. 각 밴드들은 각자의 음악적 색깔에 맞는 주제를 골라서 노래를 뽑아냈다.
인디밴드 11개 의기투합 극적인 장면 주제로 노래
혼성 4인조 모던 록 밴드 ‘엔엔에스’는 ‘댄스 댄스’란 노래에서 통통 튀는 목소리로 분주히 움직이는 수비수를 그렸다. 재기가 넘치는 6인조 그룹 ‘슈퍼키드’는 ‘반칙이 웬 말입니까’에서 축구 방송 해설과 랩을 재치있게 뒤섞었다.
일렉트로닉 개라지 밴드 ‘스타보우’는 패널티킥의 긴장된 상황을 노래했다. “나는 골을 넣는 키커/ 나를 보는 시선 너머로/ 성공하면 나는 본전/ 실패하면 나는 세상의 역적.”
1인 밴드인 ‘해파리소년’은 혼자서 골대 앞을 지키는 ‘골키퍼’를 관찰하면서 극적인 긴장과 외로움을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 속에 담았다. ‘신촌 블루스’의 보컬 출신인 강허달림은 음반의 11번째 노래인 ‘라커룸’에서 패배의 아픔을 블루스 풍으로 그렸다. “지금쯤 당신은 텅 빈 라커룸에 혼자 남아서/ 지금쯤 당신은 믿을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꿈을 꾸듯 힘겨움에 짓는 웃음꽃들”.
물론 그늘진 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악과 펑크를 솜씨 있게 버무려 온 ‘와이낫?’이 부른 ‘어기어차 대한민국’은 응원가로 흔히 불리는 ‘뱃노래’를 편곡해서 담았다. ‘황신혜밴드’와 ‘드라이브 샤워’는 후반 역전골과 응원단의 열정을 묘사했다. 2인조 크로스오버 밴드 ‘애덤즈 애플’이 부른 음반의 마지막 노래 ‘소리가 멈춰섰다’는 시합이 끝나고 경기장을 떠나는 모든 선수들에게 바치는 노래. “모든 것을 지우려 울음을 선택하지도 말자/ 이제까지 해 왔던 전부의 조각”
인디 밴드들의 독특한 상상력을 축구라는 주제 속에 담은 이 음반은, 다 듣고 나면 마치 극적인 축구 경기 하나를 본 느낌을 준다. 밴드들의 재기 넘치는 가사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음반을 기획한 ‘풀로 엮은 집’에서 말하기를, 음반에는 원래 아무개 인디 밴드의 ‘축구가 밥 먹여주냐’라는 독특한 노래도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고심 끝에 음반의 통일성을 고려해서 뺐다고 한다. 이 음반은 독일의 음반사 ‘리버만 레코드’에서도 발매할 예정이다.
〈아이 러브 풋볼〉, 포니 캐년 코리아
축구는 같아도 나라마다 응원은 제각각이다. 이 음반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브라질, 일본, 한국 등 6개국의 개성 넘치는 응원가들을 시디 두 장에 갈무리했다.
일본에서는 ‘더 월드 사커 송 시리즈’로 다섯 장에 담겼던 노래들을 이번 한국판에서는 일부만 추려 담았다. 대신 일본판에는 없던 한국의 응원가 6곡을 더했다. 모두 31곡. 영국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응원가 ‘위 러브 유’와 함께 라이벌 리버풀의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을 담았다. 영국 축구 응원가들이 라이벌 팀에 대한 야유와 욕설로 악명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이 음반에 소개된 노래들은 차라리 ‘건전가요’에 가깝다. “네가 걸을 때/ 폭풍 속을/ 고개를 들어/ 어둠을 두려워 마”로 시작되는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은 리버풀의 팬들이 축구장에서 합창하는 소리를 함께 담았다.
영국·독일·한국 등 6개국 개성 강한 응원가 시디로
독일편에서는 개성적인 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축구팀 상파울리의 응원가를 담았다. 함부르크에 연고를 둔 상파울리 축구팀의 응원단은 반나치즘과 반인종주의를 공공연히 내세우고, 그 중 일부는 펑크 차림으로 축구장을 찾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들의 응원가는 독특하게도 축구장에 배치된 경찰을 비속어를 쓰며 야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짭새들은 또 떼 지어 축구장 자리들을 비워두네/ 그래도 경기장에 짭새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네” 노래의 선율도 펑크 록의 스타일을 따랐다.
이탈리아의 유명 축구 구단 유벤투스의 응원가 ‘아이다’는 그 유명한 동명의 오페라에서 ‘개선행진곡’의 선율을 따왔다. 음반을 낸 포니캐년 쪽은 이탈리아에서는 베르디의 아리아들이 축구장에서 다양하게 개사되어 불린다고 설명한다.
유럽의 응원가들이 느리고 장중한 반면, 브라질의 응원가는 경쾌하고 가볍다. 대표팀 응원가인 ‘프라 프렌테 브라질’이나 명문 축구단 코리티안스의 응원가 ‘힌노 도 코린티안스’의 삼바 리듬은, 몸을 뒤흔들며 춤추는 브라질 응원단을 단박에 연상시킨다.
일본편에는 다섯편의 대표팀 응원가가 실렸는데, 세 편이 영어가사로 돼 있다.
한국편에서도 마찬가지로 클럽 축구팀 응원곡이 없다. 축구 클럽 응원곡 음원을 쓰려면 고액의 축구발전기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음반사의 설명이다. 대신 ‘엠시 스나이퍼’ ‘락타이거즈’ 등 밴드들의 응원가가 실렸다. 2002년도에 사랑받았던, ‘크라잉넛’의 ‘필살 오프사이드’도 함께 실렸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그림 풀로엮은집·포니캐년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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